패디큐어를 그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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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내내 샌들을 신기 위해 꼭 패디큐어를 했다. 맨발을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었고, 왜 남의 맨발 톱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에 모두가 맞장구를 치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옷을 벗은 느낌이랄까. (남자의 맨발톱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래서 발톱이 약한데도 여름만 되면 패디큐어를 했다. 너덜너덜해진 발톱을 양말 속에 숨기며 보내는 가을 겨울이 그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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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년부터 처음으로 패디큐어 없는 여름을 보냈다. 맨발톱에 대한 공포가 꽤나 긴 시간 나를 지배해와서인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적응이 필요했다. 아직도 발톱 예의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내 발톱에 대한 예의를 우선으로 하기로 한다. 아주아주 최소한, 발톱이라도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부쩍 지하철에 맨발톱의 여성들이 많이 보여 반가웠다.
언젠가는 외모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외모로 나와 타인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고, 이를 위한 가장 첫 번째가 스스로 꾸밈 노동을 내려놓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아 몇 년째 주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그냥 남자들 하는 만큼만 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남자들은 잘 씻고 단정하게만 입어도 깔끔하다는 소릴 듣는데, 여성에게는 요구되는 게 너무 많다.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예쁜 옷이나 신발을 보면 갖고 싶고,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는 나를 마주한다. 작은 피부 트러블에도 울적해지고, 오랜만에 신경 써서 꾸미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해낼 수 있을까 싶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핑계를 대곤 하지만, 결국 아직 완전히 내려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발톱에게 자유를 주기로 한 것은 그 작은 시작이다. 얼마 전에는 치렁치렁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잘랐는데 그것 만으로도 좀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조금씩 실천의 영역을 넓혀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용기를 더 낼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는 내게 무얼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외모를 가꾸는 것도 여성의 자유가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주체적인 것처럼 보이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욕망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쁜 내 모습을 좋아하고, 꾸미는 건 자유다. 하지만 여성에게만 과하게 요구되는 외모에 대한 기준은 긴 여성 억압의 역사와, 현재의 여성 인권 문제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 여름에도 깨끗한 발톱으로 샌들을 신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