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차이지만, 여전히 비혼주의를 긍정합니다.
내 인생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진짜로 진지하게 들리기 시작한 건 이십 대 중반, 여섯 살이나 많은 남자 친구와 교제한 지 2~3년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때의 나는 비혼 주의가 점점 확고해지던 참이었다. 사실 비혼으로 살겠다는 건 오랜 생각이었다. 우리 집이 어린이 드라마 속 이상적인 단란한 핵가족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도 있고, 나는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 평등 이슈에 굉장히 민감했다. 여성으로서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메갈리아 사건, 강남역 10번 출구와 같은 여성 혐오 사건들은 젠더 민감도를 더 높여주었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자, 사실은 결혼 제도는 불평등한 요소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결혼을 한다는 건 여성 인권에 등을 돌리고 전통적인 불평등한 제도 안으로 몸을 던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소위 말하는 요즘 시대의 결혼 적령기보다도 이른, 28세에 결혼을 한 건 나도 주변 사람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나를, 아닌 척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평범하고 안정적인 것을 택해버리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 스스로의 모순된 사고에 괴로워하는 사람이라, 어느 순간엔 좀 힘들기도 했다. 여성에게만 향하는 외모에 대한 속박을 늘 비판하던 내가, 웨딩드레스 입는 순간을 너무 행복해했던 건 합리화가 잘 되지 않는다. '평등한 결혼식'의 세 가지 요소는 겨우 만족했지만, 전반적으로 하객의 편의를 우선으로 생각한 아주 평범한 식을 치렀다. 가장 좋아하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남편이다 보니, 회사에서도 "남편이~" 하고 무척 자주 말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가끔 놀란다. 평등을 외치던 비혼주의 페미니스트는 어디로 갔나, 하고 말이다.
기혼자가 된 지 3년째인 나는 생각보다 꽤 결혼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래서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남편과의' '이 결혼 생활'이 잘 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주 모순적으로 들릴진 모르겠지만 여전히 비혼 주의를 긍정하고 응원한다. 내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결격이라 생각할 이유가 없다. 내게 잘 맞는다는 이유로 다른 이에게 결혼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경험한 것은 오로지 나만의, 단 한 사람과의 단 한 가지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구시대적인 관습에 힘없이 편승하진 않는다. 대신, 오히려 전통적인 며느리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려 정말 애를 쓴다. 한편으로는 촌스럽고 버겁게 느껴졌던 '가족 간의 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는 한결 느슨하게 생각하려 한다. 가령 '고부관계'라는 전형적인 틀이 아닌 나를 지지해주는 좋은 어른과의 관계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결혼은 별로인 것, 비혼은 쿨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좀 흐려졌나고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선택이 괴롭지 않다. 기혼이냐, 비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관점이 중요한 것일 테다. 나는 내 자리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