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곳, 발디딘 곳을 사랑하는 일
나는 자칭 신도시 키즈다. 서울의 주택에 살던 적도 있지만, 경기도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평하게 잘 닦여진 길, 주거지와 상업지의 명확한 구분, 다닥다닥 붙어있는 학원들, 자연의 흉내를 낸 인공 호수나 공원 같은 것들이 내겐 편안한 풍경이었다. 정신 없는 도심과 한 발자국 떨어져 있지만, 생활하기에 있을 건 다 있는 베드타운. 대학에 입학하며 처음 마주한 신촌 대학가와 대흥역 주변은 좀 낯설었다. 마구 지은 것 같은 건물들, 갑자기 좁아지는 골목, 정확히 구획되지 않은 구역들. 학교 바로 앞의 방석집이나 모텔, 고치고 고쳐 아슬아슬한 아주 오래된 건물들, 지하철역 입구의 노숙자들은 오랫동안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빨간색 경기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 것이 힘들다는 핑계로, 나는 학교 근처에 2년간 살게 되었다. 생활권은 학교와 근처의 마포 일대가 되었고, 어느새 동네에 대한 생각은 천천히 바뀌어갔다. 상수동이 아직 힙한 동네라고 불리던 때다. 어지러운 난개발 속에서 자연스러운 멋을 알아보게 되었다. 규칙과 틀을 벗어나 사는 젊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가게를 열었다.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그 곳에만 존재하는 공간들이 있었다. 옆에는 오랜 세월을 버텨 온 토박이 가게들이 있었다. 아주 가끔은 오래된 공연장에서 밴드 공연을 보기도 했다.길에는 누군가 자신을 좀 쳐다봐주길 바라는 듯 한껏 특이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생소했던 서울 2사분면의 지도가 점점 뚜렷하게 그려져갔다. 어쩌다 본가에 가면, 안정감을 주던 나의 신도시가 영 재미가 없었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 우리는 주로 광화문 일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수동, 내자동, 무교동, 효자동과 팔판동으로 이어지는 그 길에서 만남을 시작하고, 수없이 걸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시끄럽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주말의 평온한 오피스 일대가 좋았다. 어쩌다 내가 그 뺀질나게 다녔던 광화문에 있는 회사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야근이 많다는 핑계로, 회사 앞 오피스텔에 방을 얻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 남편의 회사도 같은 건물로 오게 되면서, 한동안 나의 생활권 전체가 광화문 일대가 되었다. 밤이면 청계천을 걷고, 주말이면 서촌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집으로 퇴근한 텅 빈 광화문 광장을 내 것처럼 점유하는 기분이 좋았다. 주말마다 집회를 하는 통에 오피스텔 내 방까지 웅웅대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에게는 참 의미가 많은 동네였다. 결혼식도 그래서 광화문에 있는 식장에서 진행했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부족한 예산에 꼭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매매할 요량이었기에 선택권이 많이 없었다. 도심과 가깝지만 아찔한 산 위에 있는 아파트, 교통이 좋지만 아파트 바로 앞으로 시끄러운 고가차도가 지나다니는 곳, 주변에 공업사가 즐비한 아파트도 가봤다. 그때 내안에 있던 신도시 키즈의 모습이 불쑥 튀어나왔다. 도심과는 떨어져있지만 깨끗하고 한적하며 소위 말해 ‘아이 키우기 좋은’ 뉴타운을 발견했을 때 여기다 싶었다. 결국 살아온 환경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는구나, 그래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북한산이 늠름하게 감싸안고 있어 강원도인지, 서울인지 싶은 고요한 평화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고, 아무래도 재미 없고 따분한 프랜차이즈만 가득하지만 주거환경과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진 동네라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첫 집은 이곳이 되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동네에 터를 잡은지 3년째다. 신기하게 매 계절, 매일 이곳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 이 다음엔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익숙한 선택지를 고를까,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까. 어디에 있든 나는 발 닿은 곳을 사랑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멋진 일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