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당신의 혐오가 절대 정당화될 순 없어요.
토리를 입양하고 나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흙을 밟을 일이 늘었다는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토리는 흙 위의 풀 냄새, 그리고 거기에 묻어있는 다른 강아지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실외에서 배변을 보고 싶어 한다. 우리도 덩달아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이나 화단을 밟는 일이 많아졌다.
정말 놀란 것은, 그런 흙길에 치우지 않은 강아지 배설물이 매일 같이 있다는 거다. 인도로만 다닐 때야 알 수가 없었는데 방심하지 않으면 밟을 뻔한 일도 종종 생긴다. 배설물을 치우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으로 동물보호법이 강화되었지만 아직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길고양이 똥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봐도 강아지 응가다. 슬프지만 책임감도 개념도 없는 반려견주들이 정말 많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개를 키우고 있는 격이다. 자격이 있는 사람만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심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강아지들이 냄새를 맡기 좋은 화단이 있다. 화단이라고 하지만 단풍나무 외에는 밟으면 안 되는 꽃이 심어져있지 않고, 잡초가 많은 평평한 곳이라 반려견주들의 인기 장소다. 오늘 아침에 산책을 하러 갔는데 황당한 팻말이 붙어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공식적으로 붙인 동물보호법 관련 안내문과, 그 위에 누군가 따로 써붙인 [강아지 출입 금지]라는 글씨다.
관리사무소에서 붙인 안내문이야 이해가 간다. 나 역시 펫 샵에서 당당하게 강아지를 사거나, 오프 리쉬를 하거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무개념 견주들에게 몹시 분노하는 사람이다. 성숙한 반려견 문화가 정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누구보다 크기에, 뉴스에서 알려주어도 여전히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공식 안내문은 환영한다. 하지만 저 파란색 글씨는 다른 의미로 할 말을 잃게 한다.
사유지가 아닌 이상 일개 아파트 입주민이 아파트 공용 공간에 출입 금지라는 권리를 요구할 근거는 없다. 추정컨대 해당 화단 앞에 사는 1층 주민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이 거실이 보일 수 있는 화단에서 산책하는 것에 프라이버시면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불편하오니 조금만 배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배설물은 반드시 치워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예의와 개념을 갖춰 요청했어도 될 일이다. [출입 금지]는 명백한 반려견 혐오다. 지레 겁먹는 일이길 바라지만, 최근 사회에 만연한 혐오 범죄를 보건대 해로운 살충제라도 치지 않을까 무섭다.
파란색 팻말을 덧붙인 그, 혹은 그녀의 혐오가 무개념 견주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도 그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자신의 반려견의 배설물을 방치하는 사람이 몸이 불편한 노인이라도 이해를 해주어야 할까? 무개념 반려견주와 혐오를 성숙하지 못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사람 사이에서 나는 어떤 편도 들 수 없다. 하지만, 대신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서 해당 [출입금지] 팻말은 내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빠르게 반영된 것을 확인했다. 관리사무소의 빠른 대응에 감사하며.
저기요, 똥 좀 치우고 다닙시다.
그렇다고 그쪽의 혐오가 정당화될 순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