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시작해 눈이 내리고 나서야 다 읽은 책. 다 읽기가 아쉬워 아껴가며 페이지를 넘기다 지금에서야 끝냈다. 나의 마흔 즈음에는 이 정도로 생각하고 쓸 수 있고, 스스로에 더 잘 아는 내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또, 글이든 일이든 행동이든, 어떤 방식으로 나의 도화지가 타인으로, 그리고 세상으로 좀 더 넓어졌으면 한다. 내향적이고 생각이 많아 마음이 자주 힘든 사람이라면 나처럼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제목을 보고는 대학 때 들었던 전공 수업이 생각났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서였나 본인의 장래희망을 ‘예쁜 할머니’라고 한 선배를 기억한다. 인상 깊었던 그 말 덕분에 아, 나도 언젠간 할머니가 되는구나 하는 자각을 처음으로 했다. 결혼이라는 인생 장기 프로젝트를 마주하며 한번 더 진지하게 노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고민 끝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많이 웃고 사랑하며’라는 문장이 나왔다. 그래서 청첩장에도 이 문구를 적었다. 나이 듦을 떠올리면 기대와 불안의 감정이 교차하지만 튼튼한 관절로 여유롭게 웃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작은 용기가 생긴다. 어쨌든, 어떤 할머니가 될 까를 상상하는 일은 꽤 가치 있는 노력인 것 같다.
가장 좋았던 글 중 하나는 <고양이라는 이름의 문>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난 뒤, 어딜 가든 고양이가 보였다고, 고양이가 이렇게 세상에 많았는지 그제야 알았다며 ‘고양이의 문’ 이 열렸다고 쓴 표현이 너무너무 좋았다. 올해는 내게 그것이 채식이었고, 토리를 입양한 일이자, 소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내년엔 또 어떤 문을 열어 나의 세계가 어떤 모양이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바라건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사람들을 덜 판단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0년 12월
밑줄 긋기
“경험은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며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그러니 고양이를 향해 ‘저리 가!’라고 소리치는 이에게 마음이 솟아날 때마다 생각한다. 모르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게 다 쓸데없는 짓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동안에도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계속 생겨났고, 오래된 삽질의 결과로 뜻밖의 기회들이 속속 찾아왔다. 다시 덮은 구덩이 곳곳에 어떤 씨앗들이 나도 모르게 심어졌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증명할 길은 없으나 분명 오래전 내가 판 구덩이에서 난 싹임을 나는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대화의 깊이는 관계의 거리가 아니라 경청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지중해 따가운 햇볕 아래서 무럭무럭 자랄 올리브 나무에게 남서향 베란다에서의 삶이란 딱 그 정도의 상태가 최선인 것이다. (중략) 가장 좋은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것보다 어쩌면 지금 여기에 잘 어울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내가 먹는 행위가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먹는 일은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그 행위 안에서 나를 배제하기가 힘들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개해 생각할 때 식생활을 분리할 수가 없다. 작고 약한 것들도 저마다의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면서 해치는 일에 기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골몰하는 가난은 부자가 될 수 없어서 서글픈 가난이 아니라, 가난해서 괜찮아서 가난하기로 마음먹은 그런 가난이다. 후쿠오카 켄세이가 말했던 덜 벌고 덜 쓰는 자급자족적 삶이고, 헬렌 니어링이 살았던 단순하고 풍요로운 자발적 가난이다. 자칫 금욕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삶은 사실은 아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욕망이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
“그렇게 이어진 1년 반의 시간은 두고두고 아쉬울 만큼 짧은 기간이었지만 몸 어딘가에 새겨 넣은 작은 문신처럼 또렷한 흔적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 하나를 살아본 경험이라는 흔적이었다.”
“우선은 좋은 습관을 지닌 노인이 되고 싶다.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습관인 것은 성과보다 반복되는 리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내가 그 이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중략) 습관이 곧 한 사람의 고유성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