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개답게”라며 구분 짓는 이들, 개에게만 그럴까
사람들은 개털을 쓰다듬으며 포근함을 느끼고,
개의 충성심은 인간들의 이기심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준다.
사례 1. 멕시코의 ‘듀랑고’라는 지역에서 지금으로부터 1,000여년 전 사람들이 살던 유적이 발견됐다. 그 유적에는 누구 것인지 모르는, 천년 된 똥들이 있었다. 그 똥들 중 일부에서 다음과 같은 기생충의 알이 나왔다. 개구충, 개회충, 개조충. 무슨 의미일까? 그 똥들은 바로 개의 똥이라는 뜻이다. 대략 20% 정도가 개똥이고 나머지는 사람 똥이었는데, 이는 그 당시 사람들이 개와 더불어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 조사를 했던 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너무도 평범해서 굳이 학자가 아니어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아마도 개들은 집을 지킬 목적, 그리고 사람과 교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길러졌을 것입니다.”
사례 2. 기원전 1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엘 데이르(El-deir)에서 수백개의 개 미라가 발견됐다. 이집트는 사후세계를 믿어서 파라오와 귀족들을 미라로 만들었는데, 개 미라 역시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왜 이들은 개를 미라로 만든 것일까? 사후세계에서 부활할 때 외롭지 않으려고 그랬으리라. 심지어 신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개의 모습을 취한다는 믿음도 있었으니, 그 오래된 옛날에도 개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던 것은 확실하다.
물린 기억 때문에 개가 싫다?
이밖에도 개와 인간의 친분을 드러내는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개는 어떻게 인간이 가장 선호하는 동물이 됐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뒤 개가 보여준 행동은 그 선택이 꽤 괜찮은 것임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개털을 쓰다듬으며 포근함을 느끼고, 개의 충성심은 인간들의 이기심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준다.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의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여기에 개를 아꼈던 역사와 전통까지 합쳐진다면, 보신탕 논쟁에서 늘 등장하는 ‘소, 닭, 돼지와 개는 도대체 뭐가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기 충분하리라.
새로운 환경에서 개의 역할은 과거와 달라졌다. 개한테 옷을 입히거나 염색을 해주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개는 개답게’를 외치는 분들에게 눈꼴 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개를 특별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분들이 개한테 관심을 끄고 자기 갈 길을 가는 대신, 개 관련 기사마다 찾아와서 개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는 데 있다.
그들이 다는 댓글에선 개에 대한 엄청난 증오감이 느껴져 섬뜩할 때가 많다. 이분들-여기서는 ‘개혐’이라 부르겠다-들은 도대체 왜 그리 개를 미워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이나 아끼는 지인이 개한테 물렸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사람한테 맞은 적이 있다고 모든 사람을 다 미워하진 않는 것처럼, 이것이 모든 개를 미워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게다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물어본 결과 한 번이라도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2 때 머리를 심하게 물렸던 내 경우를 봐도, 물린 경험이 있다고 다 개혐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개혐들이 자주 하는, ‘개는 개답게 길러야 한다’는 말에 힌트가 있다. 사람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개를 마당에서 길렀다. 하지만 아파트가 주요 거주 공간이 되면서 개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개의 역할은 과거와 달라졌다. 우선 개는 더 이상 집을 지키지 않는다. 내가 기르는 개들만 해도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경계하기보단 예뻐해 달라고 그 앞에 드러눕기 일쑤다.
둘째, 바깥에서 풍찬노숙을 하던 개는 이제 따뜻한 실내에서 잔다. 개를 침대에서 재우는 집도 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개들은 사람이 먹다 남은 밥 대신 잘 정제된 사료를 먹는다.
셋째, 개 주인들은 개를 더 예쁘게 꾸미려 한다. 개한테 옷을 입히거나 염색을 해주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산책을 할 때 신발을 신기기도 한다.
넷째, 개를 자기 자식에 준해서 키우는 집이 많아졌다. 개를 차에 태우는 것은 물론이고 품에 안고 공공장소에 다니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런 것들은 ‘개는 개답게’를 외치는 분들에게 눈꼴 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뭐야 이거. 개 주제에 사람인 나보다 더 대접받잖아?” 그게 기분이 나쁘다보니 개가 싫어지고, 결국 개혐이 된다. 길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특히 그 견주가 여자인 경우, 눈을 한번 부라리고, 인터넷에 접속해 개 관련 기사에 개를 혐오하는 댓글을 다는 개혐의 시작은 바로 그 지점이다.
‘개혐’은 부끄러운 일
개는 사람보다 열등하므로 사람에 준하는 대접을 받아선 안 된다는 개혐들의 생각을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보다 훨씬 존귀하다고 믿는 그들은 실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제대로 대접해 줄까? 그게 아니니까 문제인 것이다.
개를 사람과 구별하며 개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은 인간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를 들이댄다. 성별, 외모, 나이, 직업, 사는 곳 등에 따라 사람을 나누고, 그 중 만만한 이들을 차별하고 증오한다. 개가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인간 역시 대접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반면 개가 고귀한 생명으로 취급받는 나라라면 인간의 값어치는 훨씬 더 높아진다. 개가 나름의 권리를 누리는 프랑스가 인권 선진국인 것도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개혐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갑자기 개혐에서 탈출하긴 힘들겠지만, 일단 개한테 무관심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보길 권한다. 대상이 무엇이든 혐오는 나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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