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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ang Sep 07. 2024

Chapter Two  비 밀 공 간


수아의 방은 넓은 공간에 삼면이 책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과 잠을 자는 공간 둘로 나뉘어 있다. 잠을 자는 방 옆에 있는 문으로 마당을 나갈 수 있고 책으로 가득한 공간의 한쪽 벽면은 커다란 창이 나 있어, 뒷마당이 훤히 내다 보인다. 창 앞에 길고 네모난 책상이 있고 그 앞에 의자 네 개와 동그란 탁자가 놓여 있다. 

밧세는 동그란 탁자 앞 의자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더니 탁자 위에 놓인 바둑판을 보고, 수아에게 묻는다.

“알까기를 혼자서도 연습하는 거야?” 

수아에게 알까기를 매번 지는 그가 입을 비죽 거리며 말하자, 창문 앞에 있는 낮은 책장 위에 걸터앉아 창밖을 보고 있던 수아는 밧세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손가락으로 바둑알을 튕기는 손짓을 하며 대답한다. 

“그럼, 너한테 매번 이기는 알까기 실력이 어디서 왔을까?  밤낮으로 멈추지 않은 연습 때문이지.” 

“하여간, 허세는. 그런데 이건 뭐야? 바둑 아니야?” 

밧세는 탁자 위에 알까기가 아닌 바둑 대열로 있는 하얀 돌과 검은 돌을 보며 묻는다 

“응. 맞아. 책 보면서 해 봤는데 하얀 돌, 검은 돌이 서로 공격하고 수비하는 것이 꽤 재밌더라. 이거 봐봐.” 

수아는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어 밧세가 앉은 탁자 앞 의자에 앉으며 책을 건네자, 그는 책의 앞부분과 안의 내용을 훑어보고는, “이건 꽤 난도가 있는 건데, 언제부터 바둑을 한 거야?”라고 묻는다. 

“그래? 어쩐지 너무 어렵더라. 뭔가 시작 단계의 설명이 빠진 듯했어. 바둑 시작 한지는 6개월 정도 됐나. 그런데 너도 바둑 좀 아나 보다? “ 

“난 글 읽기보다 바둑을 먼저 배웠지. 어머니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하갈 수장님이?” 

“응. 엄마는 놀이란 놀이는 다 좋아하시거든. 짝꿍이 나밖에 없으니까 둘이서 하는 건 뭐든 일찍부터 가르쳐 주셨어. 그래서 바둑도 엄마한테 배웠고.” 

“바둑도 알면서 여태 나랑 알까기만 한 거야?” 

“네가 이렇게 전략적으로 치밀한 작전을 세워야 하는 명석함이 필요한 바둑 같은 건 모르는 줄 알았지. 친구의 수준을 고려한 우정 모르냐?”

“알까기도 마찬가지거든요. 전략도 있어야지. 이 튕기는 기술과 힘 조절도 해야지. 얼마나 어려운데.”

“알았어. 그럼 오늘은 바둑으로 한 판 붙어 볼까?” 

밧세는 그동안 알까기에서 진 것을 바둑으로 이겨볼 생각이다. 

그의 말에 수아는 신이 나서 말한다. “좋았어. 내가 바둑도 이겨주지.”  


둘이 검은 알과 하얀 알을 정리할 때, 여람이 방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오늘 왜 모인 거래?” 

밧세는 여람을 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묻는다. “너? 괜찮아?” 

수아도 일어나 여람에게 다가가서, 그를 한 번 죽 훑어본다. 

“응.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버지가 집에 며칠 있으라고 하셔서 그냥 집에만 있었어. 답답해 죽는 줄 알았잖아.”

셋은 탁자 앞 의자에 둘러앉는다. 

수아가 말한다. “나도 아버지께서 며칠 집에 있으라고 하셨어.” 

밧세도 말한다. “너네들도? 나도.”

“나는 오늘 너희 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도 몰랐어. 밧세가 먼저 왔길래. 그냥 놀러 왔나 보다 한 건데.” 

“아니야. 엄마가 오늘 너네 집에서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하셔서 온 거야.” 

여람은 밧세와 수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 나도 그런데. 아버지가 오늘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하셔서 왔는데. 아니 그 보다 사엘 소식은 좀 들었어? 깨어났을까?” 

여람의 질문에 수아와 밧세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잠시 후, 수아가 말한다. “그런데, 나는 좀 궁금해서, 이틀 전에 리만투어에 갔다 와 보긴 했어.”

밧세가 묻는다. “또 담을 넘은 거야?” 

수아는 라함 수장의 말을 어기며, 이전에도 종종 담을 넘어 집을 나오 곤 했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사엘한테는 연락도 없지. 궁금은 하지.” 

여람은 수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잘했어. 지금까지 네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했어. 그래 그럴 때 넘어 다니라고 있는 게 담이야. 그런데 가보니 어땠어? 사엘은 봤어?”  

“좀 이상 하더라고.” 

“사엘이?”

여람이 놀라 묻자, 수아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사엘은 못 봤고, 리만투어가 좀 이상했어.”라고 말하자, 밧세와 여람이 몸을 탁자 앞으로 바짝 대며, 동시에 묻는다. ”뭐가?”  

수아도 몸을 탁자 앞으로 가까이 대며 말한다. “너네 리만투어 갔을 때 하늘이 흐린 거 봤어?”

여람이 대답한다. “여기 마을도 리만투어도 늘 맑았지. 그날 내가 물에 빠진 날도 흐렸다기보다는 맑은 하늘에 구름이 좀 있고 바람이 불었잖아. 사엘이 파도가 다른 날보다 높다면서 그만하자고 했는데 내가 한 번만 더 하자고 했다가 그런 일이 생긴 거고.” 

여람이 그때 일을 생각하며,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내 쉬자, 밧세는 여람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준다. 

수아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그동안 마을은 계속 맑았지?” 

밧세가 대답한다. “맑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땅이고 식물이고 바짝바짝 마르고 있잖아. 우리도 책에서만 읽은 그 비라는 걸 지금까지 본 적 없지 않아?”

“그런데 리만투어는 마을과는 전혀 다른 세상 같았어. 바다뿐만 아니라, 사엘네 집까지 온통 흐리고, 하늘은 회색빛이다 못해 낮인데도 까맣고, 파도가 산 높이만큼이나 정말 높게 일고 있어서, 파도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여. 게다가 또 이상한 것은.”

놀란 얼굴의 여람이 묻는다. “왜? 이상한 게  또 있었어?”

"우리가 거기 갔을 때 병사들 본 적 있어?”  

수아의 물음에 여람과 밧세는 대답 대신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렇지? 나도 본 적 없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병사들이 리만투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더라고.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리만투어와 그 주변을  다 둘러볼 정도의 숫자였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냥 돌아왔어.”


셋은 무슨 일일까 생각하며 침묵한다. 

잠시 후 밧세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리만투어 쪽만 흐렸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원래 육지 안쪽과 바닷가는 날씨가 다를 수 있다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그러니까 바다는 흐리고, 육지는 맑을 수 있는 게 아주 없는 일은 아니야.”

여람도 말한다. “그리고 병사들은 저번에 나랑 사엘이 빠져서, 또 그런 일이 생길까 봐 안전을 위해서 그런 거 아닐까?  또 파도도 굉장히 높고 거칠었다며?” 

둘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수아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생각이 많은 표정이다.  

여람이 다시 고개를 떨구며 말한다. “사엘은 어떻게 됐을까? 그냥 사엘이 말 듣고 되돌아 나와야 하는 건데, 내가 더 하고 싶다고 해서 바다에도 빠지고 우리 다 같이 만나지도 못하고.”

밧세는 여람의 어깨를 다시 잡아주며 말한다. “그래도 너도 무사하고, 사엘도 괜찮았었어. 네가 괜찮은 거 보고 난 후 쓰러진 거니까.” 

수아도 말한다. “요 제사장님이 말씀하셨잖아. 기를  많이 써서 그런 거라고. 그리고 진짜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어.”

밧세도 수아의 말을 거든다. “그래. 수아 말이 맞아. 다 괜찮을 거야. 사엘도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거고.”

그렇게 괜찮은 거라며 말 하지만 이들은 오늘 어른들이 모이라고 한 것이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수아가 밧세의 어깨를 치며 말한다. “그런데 그날 사엘이 정말 신기하지 않았어?” 

수아의 말에 여람이 묻는다. “왜? 내가 바다에 빠진 것 말고도 무슨 일 있었어?”

여람의 말에 밧세와 수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여람을 바라본다. 

수아가 여람에게 묻는다. “기억 안 나?” 

“나는 파도가 갑자기 너무 몰아 쳐서, 중심을 잃고 물에 빠졌고,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잃은 거 같아. 눈을 떠보니 너네들이 나를 부축하고 있었고, 사엘이는 쓰러졌고. 나는 그때부터만 기억하는데. 왜 무슨 일이 더 있었어?”

여람의 말에 수아가 묻는다. “리만투어 안에서의 일은 전혀 몰라?”

“응. 뭔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


수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려고 하는데, 남자 하인이 수아의 방으로 들어온다.

“수아님. 라함 수장님께서 모두들 서재로 오시라고 하십니다.” 

남자하인의 말에 앉아 있던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을 따라 서재로 향한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지파답게 긴 복도에는 그동안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과 장식품들이 놓여 있다. 박물관도 같은 긴 복도를 지나니, 복도 맨 끝에 나무 결을 그대로 잘라다가 만든 아주 오래된  문이 있다. 남자 하인이 문을 밀자, 문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듯  “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무겁게 열린다. 


라함의 서재는, 긴 복도의 박물관처럼 넓은 방안도 여러 가지 그림이 벽에 걸려 있고 오래된 장식품들이 놓여 있다. 왼쪽에 창문이 넓게 나 있어서 마당이 보이고 넓은 창으로 햇볕이 잘 들어 방 안이 환하다. 문과 마주 보이는 곳에 문처럼 나뭇결을 그대로 잘라다가 만든 듯 아주 오래돼 보이는 라함의 책상이 놓여있다. 그 책상뒤 벽에는 커다란 책장이 있는데, 이것 또한 나뭇결과 색을 그대로 사용했다. 한 칸 한 칸에 책 대신, 모두 다른 모양의 찻잔들이 족히 100개는 넘을 정도로 빼곡히 장식되어 있고 비어 있는 칸도 있다.  그리고, 책상 앞, 방 한가운데에는 스무 명 정도는 앉을 만한 기다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그곳에 2지파 수장 하갈과  3지파 수장 마하살 그리고 이 방의 주인인 1지파 수장 라함이 차를 마시고 있다.  

이들이 들어오자 라함이 말한다. “어서들 와. 이리 와 앉아서 차 좀 마시렴.” 

기다란 탁자 위에는 이미 세명을 위한 찻잔과 차 주전자가 놓여 있다. 

세 명이 나란히 자리에 앉자, 라함이 말한다. “연꽃잎 차 란다. 향이 아주 좋아.” 

마하살이 말한다. “애들이 무슨 차 맛을 알겠어요. 그냥 시원한 과일이나  주시지.” 

하갈이 말한다. “애들이 아니라 마하살 수장님이 드시고 싶으신가 보네요.” 

마하살이 그렇다는 듯 하갈을 보며, 웃는다. 

이들 셋은 영문도 모른 채 모여, 어른들이 계시는 서재로 불려 와,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차를 홀짝 거리며 마신다.

마하살 수장의 말대로 시원한 과일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잠시 후, 라함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뒤에 있는 찻잔들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가서 그중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오래된 나무 잔을 꺼내 모인 이들에게 보여 주며  말한다. “여기 있는 모든 잔들은 우리 지파의 수장님들이 쓰셨던 것들을 대대로 모아둔 곳입니다. 이 잔은 이 땅의 첫 선조 이신 하라셀님께서 쓰셨던 잔입니다. 하라셀님은 신전을 지으시면서, 이곳도 처음으로 터를 잡으셨고 집을 지으셨지요. 그분은 처음부터 제사장의 역할과 수장의 역할을 나눌 계획을 이미 세워둔셨 던 거 같습니다. 1지파로 갈라져 나오면서, 첫 수장님이셨던, 아람 선조님은 하라셀 님이 이미 이 찻장에 가져다 놓은 이 잔을 처음으로 사용하셨지요. 그 뒤로 1지파 후손들은 이곳에서 대대로 살면서, 그들이 원하는 모양이나 재질의 찻잔을 쓰면서 이 찻장을 채웠습니다. 집도 세대가 지나면서, 좀 넓히기도 하고 낡은 곳은 보수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은 저 문과 이 책상 그리고 찻잔들이 놓인 이 찻장입니다. 저는 첫 선조이신 하라셀 님과 같은 오동나무 재질로 된 잔을 쓰고 있습니다. 하라셀님이 처음 이 땅에 터를 세우셨을 때의 정신을 이 잔을 사용할 때마다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어서입니다. “


라함이 말을 마치고는 들고 있는 찻잔을 찻장에 다시 놓고, 의자로 돌아와 앉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신다. 

하갈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한다. ”하라셀 님은 우리 모든 지파의 첫 선조님 이 시죠. 처음엔 하나의 지파였다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세 개의 지파로 나누어졌지만, 결국 우리는 한 뿌리의 지파이지 않습니까?” 
마하살이 동의하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말한다. “맞습니다. 그러다, 훗날 4지파가 생겼고, 지금은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사울진이라는 자가 5지파를 만들고, 그걸 본 어떤 이들은 여기저기 사람만 모으면 지파라고 만들어 대니, 지금까지 내려오는 지파의 이념과 역사 그리고 전통이 어떻게 될지 참 걱정입니다. 게다가 제단의 불은 아직도 꺼져 있고,  요 제사장님은 저렇게 운둔자처럼 계시니 그것도 걱정입니다. 그런데 라함 수장님,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아이들 까지 다 부르셨습니까?"

라함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마하살의 질문에 대답 대신 침묵하더니, 잠시 후  입을 연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지요? 우리에게 예언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말입니다. 제단에 불을 밝힌 자.”

모두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 이야기를, 지파의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믿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단의 불을 왜 밝혀야 하며, 어떻게 밝혀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00년 전 꺼지지 않은 제단의 불이 사라지면서, 그 뒤로 사람들은 제단의 불이 다시 밝혀지겠구나라고, 믿거나 바라거나 혹은 여전히 신화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다음 전해 내려오는 말은, 왜? 누구를? 어떻게? 그리고 언제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라함은 오늘 이들을 갑자기 불러 놓고, 이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마하살이 말한다.  “제단에 불을 밝힌 자, 왕을  지명할 것이다. 그걸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라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정말 일어날 일인지 아니면, 그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지, 알 수 없지만 저희 지파는 이 예언을 자손 대대로, 유지하고 받들고 있습니다.”

하갈이 의문이 들어 묻는다. “어떻게 유지하고 받들고 계신가요? 혹시 구전이 아니라 어디 문서 에라도 적혀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역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전해 들었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마하살이 말한다. “그러니, 이 전해 오는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날 이야기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라함의 말에 다들 놀라서 아무 말이 없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여기 모인 이들이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전해 내려오는 그 예언이 실제로 성취될 것이라고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라함이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제사장님 댁도 그렇게 대대로 전해 듣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몇 세대 동안 지파와 제사장과의 교류가 점점 없어져 가고 있는 상태고, 게다가 요 제사장님 댁에는 대를 이을 자가 현제는 없으니 지금처럼 사람들이 지파를 만들 듯, 제사장도 반드시 제사장 집안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는 예상합니다.  게다가 불을 밝힌 자가 왕을 지명할 것이라고만 전해 내려올 뿐, 내용을 보면 제사장 가문이나 지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지 않습니까.”

마하살이 라함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라함 수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누구인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아요.” 

라함이 말한다. “하라셀님께서는 첫 지파의 수장이자, 제사장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라셀 님께서 사라지시기 전, 제사장 가문을 지명하셨고 그 가문은 대대로 신전을 지키고 경전의 신을 섬기며 신을 위한 의식을 주관하고, 지파와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지요. 훗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하라셀님의 뜻대로, 지파를 나뉘었지만, 제사장 가문은 하라셀님께서 지명하신 그대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가문은 하라셀 님이 명하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았고 그래서 제단의 불도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지금은 제사장 가문을 이을 자도 아직 없으니 새로운 지파가 생기 듯, 제사장 가문에서도 새로운 자가 지명되어 제사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신가요?.”

마하살은 라함의 말에 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전 제사장님 댁 까지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라함 수장님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제사장 가문이 걱정입니다. 딸 사엘이 하나고, 후난 부인이 아이를 잉태는 했지만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없으니 지금 현재로서는 제사장 가문도 다음 세대에 대한 대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정말, 타락한 제사장 가문에 대한 경전의 신의 벌일까요?” 

마하살의 말에 여람, 밧세, 수아는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그동안 사엘을 만났지만, 그녀의 집에 이런 일들이 있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갈이 말한다. “경전의 신의 벌 이라니요. 그저 사람들이 제사장 가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싶어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라함이 말한다. “사라진 제단의 불, 그리고 다음 세대를 이를 자가 없는 제사장 가문이니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법도 하지요.”  

수아, 밧세, 여람은 지파의 수장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한 앞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그들의 소명이자 숙명으로 담고 있었지만,  오늘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이 짊어질 일들은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무겁고, 그 무거움에 두렵기까지 하다. 


수아, 여람, 밧세 그리고 수장들은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 그들 사이에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라함이 침묵을 깨고,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한다.

“오늘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우리 지파에게만 비밀처럼 내려온, 비밀 통로를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다들 비밀 통로라는 말에 또 놀란다. 모두들 오늘은 놀랄 이야기들을 들으러 모였나라고 생각한다. 

하갈이 묻는다. ”비밀 통로요?” 

“네. 1지파에게만 전해 오는 비밀통로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맞나 하며 며칠 고심 했지만, 이런 혼돈과 혼란의 시기에, 여러분들과 공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갈이 묻는다. “라함 수장님은 지금이 이 세대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저는 지금 이 세대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하살이 말한다. “제단의 불이 사라진 지 400년이 흘렀습니다. 사실 그 이후로 마을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았고, 원인 모를 질병이 매년 생겼습니다. 사실 400년 동안 늘 위기와 혼란의 시대였지요.”

라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제사장 집안의 명맥이 이어오고 있었고, 그 400년 사이에 정말 신실한 제사장님도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제단에 불을 밝힐 자는 당연히 제사장 가문에서 나올 것이라고도 생각했지요. 그런데 지금  제사장님 댁은  대 가  끊어질 위기에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제단에 불을 밝힐 자가 누구일까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세대가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요.”

다들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말없이 있지만, 하갈과, 마하살은 라함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잠시 후, 하갈이 묻는다. “그럼, 라함 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이 세대의 위기와, 1지파에 전해오는 비밀 통로와는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라함은 설명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찻장으로 다시 걸어가서는 조금 전 들어서 보여 주었던, 첫 선조 하라셀의 찻잔을 들어 찻잔이 놓였던 곳에 작게 움푹 파인 부분을 손가락을 넣어 누르자, 찻장이 반으로 나누어 열리면서, 한 사람정도 들어갈 정도로 벌어진다.

이를 보고, 또 다들 놀라, 할 말을 잃는다. 오늘은 정말, 놀랄 일들을 듣고 보는 날인가 생각한다. 

라함이 반으로 갈라진 착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 명씩 차례대로 들어가세요.”라고 말한다. 


라함이 말한 대로, 반으로 갈린,  찻장 사이로 들어가니, 돌을 그대로 가져다가 쌓아놓은  열개 정도 되는 돌층계가 있고, 어른 다섯 사람 정도가 함께 서 있을 정도의 넓이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길이 나 있다.

모두들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라함이 안쪽에 걸린 줄을 잡아당기자, 찻장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불을 밝힐 만한 것이 없는데, 드문 드문 벽 쪽에서 어둠 정도만 가실 정도의 밝기의 빛이 있다. 

밧세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수아에게 말한다. “횃불도 없고, 양초도 없고, 어디 구멍도 없어서 밖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밝지?”

밧세의 말을 들은 라함이 말한다. “밧세가 잘 봤어. 벽에서 꺼지지 않은 불이 새어 나오는 거야.”

밧세는 라함의 말을 듣고 더욱 신기하여, 불이 새어 나오는 벽이라 하여 손을 살짝 가져다 대 보지만, 뜨겁지도 않다. 

그것을 본, 여람과 수아도 신기한 듯 벽을 만져 본다. 

라함이 말한다. “이곳은 하라셀님께서 마을을 처음 일구실 때부터 땅 아래에 만들어 놓은 비밀 통로입니다.”

마하살이 묻는다. “어디까지 연결된 통로입니까?” 

“여러분들 집과 템말 산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갈이 말한다. “저희들 집까지요?” 

“네. 이 비밀통로는, 세 지파의 집과 연결되어 있고 네 갈래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왼쪽 길을 따라가면 템말 산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길들이 복잡하게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요. “

수아가 묻는다. “아버지, 그럼 지도도 있나요?”

라함은 수아의 말에, 오른쪽 벽 쪽으로 간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작은 돌이 볼록하게 나와있는 것이 보인다. 

라함이 말한다. “벽에 있는 이것이 길잡이 돌입니다. 이 돌은 5걸음 정도 갔을 때마다 만져집니다. 하지만 꼭 같은 높이에 위치해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길잡이 돌을 찾으며 가야 합니다. “

여람이 묻는다. “수장님께서는  어디까지 가보셨어요?” 

“너네들 나이만 할 때, 아버지께서 이곳에 나를 데리고 오셔서 보여 주셨어. 그리고 이 길을 돌을 찾으면서 가지 않고도 갈 만큼 여러 번 와 봤단다. 템말 산 중턱까지도 가보고, 다른 수장님 댁 통로 앞 까지도 가 봤어.”  


첫 선조 때부터 만들어진 비밀 통로, 왜 만들어졌으며 이 비밀통로가 어떤 이유로 쓰여 질지 예상도 되지 않는 지금 이 통로를 서로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 이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라함이,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하고 일단 나가시죠.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하인이 식사 준비가 되었다고 전하러 올 거예요. 그전에 방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하자, 모두들 서둘러 비밀 통로를 나온다. 


모인 여섯 명이 라함의 서재의 긴 탁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남은 차를 마시자, 수아의 방에 왔던 남자 하인이 다시 들어오며 말한다. 

"수장님 저녁 식사 준비 다 되었습니다. 마당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라함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모두들 출출했는데, 잘 됐군. 이제 이 오래된 역사 이야기는 그만 나누고 식사들 하러 가시지요.” 

하갈이 빠르게 눈치를 채고 말한다. “그러게요.  뭐 맛있는 거 좀 준비하셨어요?”

“네. 통돼지 구이를 준비했습니다. 귀한 분들 오셨는데 돼지 한 마리 정도는  잡아야지요.” 


모두들 서재에서 나와 긴 복도를 지나 뒷마당으로  나가니, 지파들의 다른 식구들도 와 있다.  

불에 구워지고 있는 통돼지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가 마당에 가득하다.

하인들이 식사를  나르는 동안 라함이 모인 이들에게 말한다. 

“오늘 오랜만에 세 지파 식구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니 참으로 즐거운 날입니다. 넉넉히 준비했으니, 천천히 맛있게, 많이 드시면서, 좋은 시간들 보내세요.”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소리 웃음소리가 마당에 가득하다. 


모인 이들의 웃음 사이로, 밧세, 수아, 여람은 그저 먹고, 웃고 떠들 수 많은 없다. 

그들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져서이다. 그들이 지켜야 할 비밀통로라는 것이 하나 또 생겼고, 그동안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제사장 집안, 그리고 사엘에 대한 걱정도 생겼다. 제사장 집안에서 딸로 태어난 사엘, 제사장의 새 부인, 뱃속에 있는 아기, 그녀의 엄마,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저주, 경전의 신의 벌, 이 모든 환경에서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혼자서 힘들고 외로웠으며, 여자 애라는 말에도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가 된다. 그날 요 제사장과 그의 부인의 태도도 쓰러진 사엘에게 왜 그렇게 싸늘하고 무관심했는지도 알 것 같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다. 이들은 세상이, 가족이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화도 나고 또 혼자 있을 사엘을 생각하니 마음도 아프다.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할 그들의 운명이라면 이제는, 제사장이나 지파 수장이 아닌 서로에게 친구로서 동료로서 협력자로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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