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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ang Sep 14. 2024

Chapter Three 카야, 수양버들

여람, 밧세, 수아는 하인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 지금 이들에게는 음식을 먹는 것 보다, 빨리 수아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수아의 서재로 온 이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크게 숨을 내쉰다. 

여람이 말한다. “오늘 나만 정신이 나간 거니?” 

수아가 말한다.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비밀 통로는 뭐야. 나는 우리 집에 저런 게 있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어.” 

여람이 말한다. “사엘이랑, 제사장님 이야기는 또 뭐고? 그것 보다 아까 말하려다 만 이야기는 뭐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약 열흘 전, 사엘, 여람, 밧세, 수아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리만투어에 모였다. 
밧세와 수아는 모래사장 위에 담요를 깔고 바둑알로 알까기를 치열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모래사장 위에 앉아 있기에는 꽤 괜찮은 정도로 바람이 살살 불고, 커다란 구름이 하늘에 군데군데 둥둥 떠있어, 그늘이 져 좋지만, 파도는 다른 날과 달리 제법 높게 인다. 

남은 검은 바둑알 한 개로 어떻게 수아의 하얀 바둑알 두 개를 제거해야 하는지, 치밀하게 작전을 구상 중이던 밧세가 말한다. “그런데 오늘 파도가 너무 높지 않아? 사엘이는 괜찮은데, 여람이는 괜찮나?” 

“애들 걱정하지 말고, 한 개 남은 너의 검은 알이나 걱정해. 야, 그리고 그만 뜸 들이고 빨리 좀  할래? 시간 끈다고 되겠냐? 센다. 하나, 둘.” 

“조용히 좀 해봐. 집중을 해야 한단 말이야.” 

수아가 세던 수를 멈춘다. 

밧세에게는 이번 공격이 마지막 기회 일지도 모른다. 왼쪽 모서리 쪽에 있는 수아의 하얀 알을 가볍게 튕겨 밀어 뜨리고, 그 자리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하얀 알을 다시 밀어 넘기거나, 아니면 한번 더 수비와 공격의 기회를 갖는 것이 그의 작전이다. 

밧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손가락으로 검은 바둑알을 하얀 바둑알을 향해 튕긴다. 

검은 바둑알이 힘차게 굴러가,  "딱" 소리를 내며, 하얀 바둑알을 맞힌다. 

명중이다. 

하얀 바둑알이 바둑판 밖으로 굴러  떨어지고, 검은 바둑알도 같이 또르르 굴러가더니, 바둑판 밖으로 톡 떨어진다.

밧세는 머리를 감싸고, “앗” 하며 담요 위에 엎드린다. 

수아는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껑충껑충 뛰며 말한다. “작전이 뭐가 중요해. 알까기는 감각과 힘 조절이지.” 

밧세가 일어나며 말한다. “작전은 진짜 좋았었단 말이야. 아깝다. 한 번 더 할 거지?.”

수아는 대답 대신 바다를 보며, 기지개를 쭉 켠다.  

바다를 바라보던 수아가 놀라, “밧세야. 저기 좀 봐봐.”라고 소리치자, 밧세도 고개를 돌려 쳐다 보고는,  둘이 동시에 바다를 향해 뛰어간다. 


사엘과 여람은 각자의 나무판에 앉아 바다 위에 둥실 떠서 파도를 바라본다. 한동안 너무 잔잔 해서 리만투어 바다 인가 싶었는데, 오늘은 파도가 제법 높고 거칠다. 
사엘은, “여람아. 오늘은 파도가 너무 높아. 그만하고 들어가는 게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여람은 아쉬운 듯,  “그래도 바다에 들어왔는데, 한 번만 더 타고 나가자. 그리고, 나 저런 파도에서는 처음 해봐. 한번 해보고 싶어. 응?”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것조차도 무서워하던 여람은 이제는 나무판 위에 여유롭게 앉아 파도를 즐기고, 오래는 아니지만 나무판 위에 일어서서 제법 파도도 탈 줄 안다.

사엘이 바다를 보더니, “그러면, 파도가 더 높아지기 전에, 한 번만 더 타고 나가는 거야.” 라고 말하자, 여람은 좋다는 듯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일어서라고 크게 말할 게 너는 일 소리에 일어서면 돼. 알았지?” 

“알았어.”

“그리고 혹시 파도가 너에게 너무 높거나, 일어나기도 전에 뒤에 파도가 계속 밀려오면, 그냥 나무 판 잡고 엎드려 있어. 해안가로 밀려가게. 알았지?”

“알았어.” 

둘은 밀려오는 파도의 반대 뱡향으로  나무판을 돌려, 엎드린 후 팔을 젓는다. 

사엘은 파도와 여람을 동시에 지켜보다 외친다. “준비해. 지금이야. 일.”

그녀의 말을 들은 여람은 몸을 들어 나무판 위에 서고, 사엘도 나무판 위에 일어선다. 계속해서 파도가 빠르게 밀려오니 나무판의 속도가 다른 날보다 빠르고, 파도도 꽤 높게 일지만, 여람의 파도타기가 안정적으로 괜찮아 보인다. 

저대로 유지하면서, 해안가까지 가면 된다고 사엘은 생각한다. 

그때, 여람의 몸이 잠시 휘청 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가 균형을 잡는 것 같더니, 몸이 다시 휘청 하면서, 균형을 잡기도 전에 이전 보다 더 큰 파도 두어 개가 동시에 밀려와 그를 덮친다. 그가 보이지 않아, 사엘도 바다로 뛰어든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바다가 거세게 움직이며 만드는 물보라 때문에 앞도 보이지 않고 움직이며 나아가기도 힘들다. 

사엘이 입을 벌려 숨을 내 쉬자, 바다가 그 모양 대로 정지하고 그녀 만이 물에서 움직인다. 사엘은 정신을 잃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여람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헤엄쳐 가, 그를 안고 바다 수면 위로 나오려 하자 바다가 다시 움직이면서, 파도가 높이 솟구쳐 사엘을 물 위로 끌어낸다. 

파도 위에 여람을 안은 사엘이 서있고, 파도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구부러 지더니 천천히 사엘을 해안가로 내려놓는다.


수아와 밧세는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뭘 잘못 봤나 생각한다. 게다가 사엘이 여람을 안고 있어, 무슨 일까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둘에게 서둘러 달려간다. 

수아와, 밧세가 여람을 받아 안으려고 하자, 사엘은 여람의 얼굴에 대고 입을 열어 천천히 숨을 들이시자, 그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숨을 들이쉬던 그녀가 그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숨을 내 쉬자, 여람이  “컥컥” 소리를 내며 눈을 뜬다. 사엘은 그제 서야 안고 있던 여람을 놓고, 밧세와 수아가 여람을 받아서 부축한다. 그녀는 그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안심하는 표정을 짓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진다. 

수아가 쓰러지는 사엘을 잡으려다, 같이 바닥에 넘어진다.

잠시후, 사엘을 안고 일어나는 수아가, “내가 사엘이 안고 갈 테니, 밧세 너는 여람이 좀 부축해 줘.”라고 말한다.

밧세는 여람을 부축하며, ”너는 괜찮아?”라고 묻자, 여람은 놀라서 그런 건지,  몸이 안 좋은 그런 건지, 부들부들 떨며, “나. 나. 나는 괜찮아. 사엘이 어떡해. 왜, 왜, 갑자기 쓰러진 거야?”

사엘을 안은 수아와 여람을 부축한 밧세는 사엘집으로 달려간다. 그녀의 집은 리만투어 바닷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문 앞에 서 있던 카야가 뛰어 오는 그들을 보고 달려와 사엘을 받아 들고 뛰어가면서, 그의 최 측근 무사에게 주변을 조용히 시키라는 눈짓을 한다. 

셋은 카야를 따라 사엘 방으로 간다. 

카야가 사엘을 이불 위에 눕히자, 그때 요 제사장과 요의 새 부인 후난이 사엘 방으로 들어온다. 

분명 카야가 주변을 조용히 시키라고 했고, 그 말은 요 제사장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었는데, 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 

여람, 밧세, 그리고 수아가 어릴 때 한번 보고 커서는 처음 보는 요 제사장과 그의 새 부인에게 정중하게 목례를 한다.

요 제사장도 인사하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다들 집에 가보게. 호위 대장이 타고 갈 것과 하인들을 준비해 줄 거야. 그런데…  오늘 무엇을 보았는가?”  라며, 이상한 질문을 한다. 

서로 안부를 물어볼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고, 그리고 아무리 사엘에게 종종 있는 일이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당연한데, 그는  놀라거나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이 마치 그들을 내쫓는 것처럼 보인다. 

수아는, 그가 본 것과 여람과 사엘이 리만투어에 들어가 나무 판을 탔다는 것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직감하고는,  “모래 위에 같이 앉아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사엘이가 전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말해 준 적이 있어서, 쓰러진 후, 집으로 급하게 데려 온 것입니다.”라고, 요 제사장이  더 추측하거나 혹은 그들이 무엇을 봤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안심시키 듯 말한다. 

“그랬군.” 

여람은, 걱정이 되어 사엘이  깨어나는 것을 보고 가도 되냐고 묻지만, 요 제사장은,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며칠 누워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그만들 가보게.” 라며, 그들을 다시 서둘러 내쫓듯 말하자, 요의 옆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싸늘한 표정의 후난이 입가에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제가 나가시는 길을 안내해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셋은 할 수 없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후난을 따라 방을 나온다. 

후난의 안내로 방을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뒷마당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나가자, 바닷가 반대 방향의 더 큰 마당이 보이고 카야와 들것을 들은 하인들이 서 있다. 

후난이 이들에게 잘 가라는 듯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사엘 방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임신한 배를 잡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저는 늘 걱정이 됩니다. 며칠씩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못하시고, 저렇게 누워만 계시다가 깨어나시는데, 그게 하루 이틀 걸릴 때도 있고, 더 걸린 적도 있어요. 이번에는 얼마나 누워 계실지 걱정입니다.” 

카야와 마찬가지로, 걱정이 가득한 그들도, 들것에 앉아 각자 집으로 갔고, 열흘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사이, 요 제사장은, 라함 수장에게 연락을 해, 아이들이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알렸다. 라함 수장은 무슨 일인데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이미 아이들이 리만투어에서 사엘을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요 제사장은 그들과 사엘이 만나는 것을 꺼려한 것일 것이다.  제사장 집안의 역할과, 의미가 점점 사라져 가고, 사람들이 제사장 집안에 저주 혹은 경전의 신의 벌이 내린 것 이라며, 흉흉한 소문이 돌면서 요 제사장은 점점 더 운둔 생활을 하고 있고, 사엘뿐만 아니라, 요 제사장의 모든 식솔들은 지파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 

라함은 다른 수장들에게도 별 다른 이유 없이, 아이들이 요즘 너무 만나고 노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 같으니 잠시 서로들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집에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고 마하살과 하갈도 이에 동의했다. 그  사이 라함은 생각이 많았고, 오늘 2지파와 3지파 수장과 그들의 자녀들을 부른 것이다. 세 지파가 동등하게 지파들을 다스린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1지파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면서, 지파들의 여러 일들을 앞장서서 처리해 왔다. 라함도, 누구의 권유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의 선조들이 한 대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엘 님.” 

방을 나와 마당으로 걸어 나오는 그녀를 부르며, 카야가 황급히 달려간다.  

5일 만에 일어난 사엘의 모습이 퀭하니 힘이 없이 축 쳐져 있다. 

카야는 사엘을 부축하며 말한다. “이제 일어 나신 거예요?” 

“한 3일 전에 눈은 떴는데, 일어나지는 않았어.”

“왜요? 왜 또 그러셨어요? 정신이 돌아오셨으면, 일어나서 식사도 하시고 그러셔야죠. 하디에게 지금이라도 음식 좀 내어 오라고 할게요. 아니다. 일단 여기 좀 앉으세요.” 

카야는, 사엘의 일이라면 늘 걱정과 염려가 앞서, 그 답지 않게 분주하고 두서없이 말한다. 

“아니야. 카야. 나 괜찮아. 먼저 리만투어에  데려다줄 수 있어?” 

“네? 안 돼요. 지금은 식사부터 하셔야 해요.” 

사엘이 말없이 카야를 바라보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말을 가져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황급히 마구간으로 뛰어가 말을 가져온다. 

사엘을 말 위에 앉히고, 카야도 말위에 앉자, 그녀는 그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 안으며 말한다. 

“카야. 빨리 달려 줄 수 있어? 아주 빨리.” 

집 마당을 나온 카야가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자, 말이 힘껏 달려, 금세 해안가에 도착한다. 여전히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으로 가득하고 회색빛 파도는 성난 듯이 몰아 친다. 카야는 사엘이 원하는 대로 말을 몰아 해안가를  빨리 내 달린다. 

그녀는 눈을 감고 바닷바람을 느낀다. 

바람에 머리가 휘날리며 간지럽히는 감촉이 좋다. 

바다 내음 속으로, 사엘은 그제야 숨을 쉴 거 같다. 


사엘은, 3일 전에 이미 깨어났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이대로 눈을 뜨지 않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괜히 사람들과 어울렸다고, 걱정인지 핀잔인지 모를 아버지의 비난 어린 말과, 차라리 이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도 집안을 위해서 낫다고 말하는 아빠의 새 부인이 하는 말, 그리고, 친구라 불리던 이들은 그녀의 모습에 놀랐을 것이고, 여람은 바다에 빠져 죽었을 수도 있었다. 그녀와 어울려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하니, 사엘은 이 모든 것이 후회되고 그들에게 미안하다. 정말 사람들이 말하듯, 그녀의 엄마가 저주받아 죽임을 당한 것처럼 그녀의 몸 안에도 저주의 피가 흐르는 것은 아닌가? 

'아니. 그렇지 않다’라고 사엘은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사엘은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친구들과 그저 평범하고, 자유롭게 어울려도 된다고 착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생각하니, 이제는  그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그녀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카야는 달리는 말을 멈춰 내린 후, 사엘도 내려 준다. 그녀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과 머리카락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카야는 사엘의 머리를 넘겨주고, 주머니에서 손수건도 꺼내, 얼굴에 묻은 눈물 자국과 콧물을 살살 닦아준다. 

그런 카야의 행동에 사엘이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머금은 얼굴로 말한다. “나 너무 별로지?” 

카야가 사엘의 코에 수건을 갖다 대자 사엘이 코를 "흥" 하고 푼다. 

“별로 긴요. 난 그런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도 이렇게 잘 푸시고,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동시에 이렇게 잘하시는데요. 그럼요. 사엘 님은 늘 언제나 최고예요.” 

카야는 통솔하는 병사들에게는 늘 엄격하고, 말수도 적지만  사엘 앞에서는 말도 많아지고  한없이 다정해진다. 

카야의 행동과 말에 사엘이 웃는다. 

카야가 사엘의 머리를 한번 더 넘겨주며 말한다. 

“그래요. 사엘님. 이렇게 또 웃으면서 이겨내시는 거예요."


카야는 사엘보다 23살 정도 많은, 사엘의 최측근 호위 무사 대장 이자, 제사장 집안의 병사 통솔권자이다.

그는 열여덟 살 때,  요 제사장 집에 무사로 들어왔다. 워낙 타고난 무예 실력과 영리했던 그는 3년 만에 병사를 통솔하고, 가족을 호위하는 최측근 호위 대장이 되었다. 그가 호위를 맡은 가족은 요가 이제 막 부인으로 맞이한, 하란이었다. 

그는 그런 여인을 이전에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바람에 산들 거리는 수양버들 같았다. 

그녀는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하거나 낮게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고귀한 영혼이 인간 세계에 내려와 인간애와, 화평을 보여주며 세상을 밝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너무 멀리 그리고 높이 있어 다가갈 수 없는 제사장의 부인이지만, 그녀의 곁을 지키는 호위 대장이라는 것만도 기뻤다. 

카야는 어떠한 경우에도 목숨을 다해 끝까지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요 제사장은 그녀의 방을 밤마다 찾아왔고, 짧은 시간 머물다 갔으며, 요가 방을 나간 후,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방 밖으로 들렸다. 카야는 어떠한 경우에도 목숨을 다해 그녀를 지켜주겠다 다짐했지만, 그녀의 남편으로부터는 그녀를 지켜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녀의 방문 밖 앞에 서서,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소리 없이 같이 흐느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하란은 임신을 했다. 

하란이 임신한 이후로, 다른 여인을 품에 안은 제사장은, 더 이상 그녀의 방을 찾지 않았다. 

카야는 흐느끼는 울음소리 대신, 뱃속의 아기에게 경전을 읽어주는 그녀의 맑고, 밝은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다. 

카야는 하란이 아직 불러오지 않은 배를 만지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행복했다. 

카야는 그녀가 행복해해서 행복했다.

하란의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요 제사장은 그런 그녀를 전혀 돌보지 않았고, 카야는 걱정이 되어 여기저기 물어보며 알아봤지만 사람들도 심지어 약방에서도, 임신 중이라 그런 거라고만 했다. 밤에 하란이 숨이 차서 경전을 읽기가 힘든 날은 카야가 문 밖에 앉아 그녀 대신 읽어 주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 걱정이 되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싶지만, 호위 대장이 여도 그럴 수는 없었다. 

경전의  신에게 조용히 기도 했다. 

“엄마와 아기를 지켜 주세요 “ 


그렇게 하란의 배는 점점 불렀고, 그녀가 걷는 것도 힘든 날에는 카야는 그녀를 말에 태우고, 말을 천천히 몰아 리만투어에 갔다. 바다에 발을 담그면 아기가 뱃속에서 움직인다며, 힘든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웃음으로 번졌다.  카야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햇살에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리만투어에서, 그녀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배를 쓰다듬던 그녀는 카야를 보며, “만져 볼래?”라고 묻는다. 

카야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카야 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서  괜찮다고 말한다.   

카야는 조심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그녀의 배에 대자,  꿈틀 하고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놀라 그의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서니 하란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는다.   

카야가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배에 갖다 대자 움직임이 느껴진다.    

경이롭다. 아직 만나 보지 못했지만, 새 생명에 대한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카야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는 자신의 의도치 않은 마음과 행동이 멋쩍어,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려 하자, 하란은 그의 눈물을 그녀의 손으로 닦아주며 말한다. “정말 놀랍지? 아기도 너를 아나 봐. 더 많이  움직이는 것 같아. 카야  늘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서 언제나 편안하고, 안심이 돼.”

둘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카야는 그녀의 무사, 그녀의  남자, 그리고 그녀의 아기의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셋이라면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달려 저 리만투어 멀리 함께 떠나버리고 싶다. 


카야를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고통스러운 듯 허리를 구부리며,  “아기가 나올려나 봐. 아직 보름이나 더  남았는데. 엄마 얼굴이 빨리 보고 싶은가 보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고통스러워 보이면서도,  아기를 만난다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집에  금방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카야는 그녀를 말에 태우는 대신, 안아 들고는 집으로 향한다. 


이틀이 꼬박 되던 날, 힘든 진통 끝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출산 소식에 여태 보이지 않던, 요 제사장이 오고, 그는 예전처럼 그녀의 방에 잠시 머물다, 좋지 않은 얼굴로 금세 떠난다. 

카야는 걱정이 되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그저, 아기와 엄마 모두 무사하기 만을 기도하고 기도 한다. 

여자 하인들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 그냥 갈 수 있냐며 웅성 거리자, 카야는 여자 하녀 하나를 붙잡고,  “경계태세를 갖추어야 해서 묻는 것이니, 말해 보게. 하란님과 아기님은 어떠신가?” 라고 묻는다. 

무슨 경계태세 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인 하녀가 그래도 호위 대장이 묻는 말에, “하란님은 겨우 숨만 쉬고 계시고요. 아기님은 건강하게 잘 태어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카야는 이제야 안심이 된 듯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 쉰다.  

“다만.”  

하녀의 말에 카야가 무슨 일이 또 있나 하여,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제사장님 댁에 대를 이을 아드님이 태어나셔야 하는데 따님이 태어나셔서 제사장님께서 실망하셨는지, 아기는 보지도 않으시고 그냥 나가셨어요. 하녀들도 다 물러가라고 하셔서, 저하고 다른 하녀 둘만 남아서, 하란님과 아기님을 돌봐드릴 거예요. 경계태세에 도움이 좀 되셨어요?” 

카야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하녀는 더 물어보실 것이 없으면 가도 되냐고 묻고는 자리를 뜬다.  

하란의 방에서 나오는 대야에 피 뭍은 수건들이 수북이 나오고, 식사 상이 들어 가지만, 손도 대지 않은 상이 그대로 나온다.  

어느덧 해가 지고, 카야는 하녀 둘이 나가는 것을 보고, 그의  몸이 찢겨 죽는 한이 있어도 오늘은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조심히 하란의 방문을 열고 들어 간다.  힘없이 누워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코에 손을 대보니 가느다랗게 숨 바람이 느껴진다. 그래도 하란을 보자, 카야는 그동안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온다. 

그녀 옆에 아기가 누워 있다. 이틀 전 뱃속에 있을 때 느꼈던 그 아기이다.  카야의 팔 길이의 반도 안될 정도의  작은 생명체가 쌔근쌔근 숨을 쉬며 자는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의 눈에 또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쁘지?” 

하란의 소리에,  카야가  놀라 자리를 황급히 떠나려 하자,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나 좀 일으켜. 줄래?”라고 말한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부축하며 천천히 일으켜 주자, 그녀는 “아기 좀 줄래. 아직 안아보지도 못했어.”라고 말한다. 

카야는 아기를 조심히 안아 든다. 

깃털만큼 가벼운 무게인데, 형온할 수 없는 무게가 느껴지는 존재이다. 

그녀에게 아기를 건네자,  아기를 받아 품에 안은 하란은 입가에 미소를 띄며 말한다.

“사엘아. 엄마야. 건강하게 이쁘게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너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아이란다. 경전의 신이 너에게 축복하기를. “ 

아기를 안고 있는 하란이 팔이 힘이 없어 떨자, 카야는 그녀의 뒤로 가 앉으며, 그녀의 팔과 아이를 함께 말을 탔을 때처럼 감싸 안는다. 

“훨씬 낫네. 한결 편해.” 

그렇게 그들은 잠시 있는다. 

카야는  자신의 팔 테두리 안에서 편안히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와, 그녀의 품에서 곤히 잠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기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이제는 정말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달라고, 경전의 신에게 진심을 담아 떼를 써 본다.  


잠시 후, 하녀 하디가 밥상을 들고 들어 온다. 

저 여자가 제사장에게 달려가 둘의 모습을 말한다면, 둘다 죽은 목숨 일 것이다. 아이와 엄마를 지키려면 저 하녀를 죽여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  하디가 밥상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일어나셨어요? 이제 식사를 좀 하셔야 해요. 마침 대장님께서 하란님을 뒤에서 받쳐 주고 계시니 식사하시기에 편하실 것 같아요. 제가 입에 식사를 넣어 드릴게요.”

예상치 못한 하디의 말과 행동에, 카야도 무슨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원래 있던 대로 그대로 있자, 하디는  아랑곳하지 않고, 밥과 고깃국을 떠서, 하란을 먹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식사를 마칠 무렵 한 여자가 들어오자, 하디는 수저를 내려놓고, 하란에게 말한다. 

“하란님. 아기님에게 젖을 먹여주실 유모님이세요. 유모님. 제 때 맞춰 오셨네요. 제가 대장 님께 하란님 좀 부축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편하셨는지 식사를 다 하셨네요.”

하디는 하란에게서 아기를 데려가 유모에게 건네고, 카야를 보며 말한다. 

“대장님 하란님 좀 더 부축해 주실 수 있으세요?  방금 식사를 마치셔서 조금 더 앉아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하는 그녀가 카야는 자신이 통솔하는 어느 병사들보다도 든든하고 믿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모가 한쪽에 앉아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자, 아기는 배가 고팠는지 잘 먹는다. 

젖을 다 먹인 유모가 아기를 하디에게 건넨다. 

하란이 유모를 보며, “고마워요. 우리 아기한테도 이렇게 귀한 젖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아기에게 젖을 줄 수가 없어요.” 

“아닙니다. 하란님. 저도 제 젖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기쁜걸요.”

그녀의 말에 하란이 감사의 마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갑자기 유모가 울먹거리며  말한다.  “얼마 전에 제가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가 며칠 열이 나더니 죽었어요. 아기가 아픈데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요. 제 잘못이에요. 우리 아가들, 젖도 못 먹고 간 그 아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젖이 불 때마다 더 생각이 나고, 그래서 아가들을 따라 같이 죽을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또 살아지나 봐요.” 

유모라 불리는 이 여인은 아이를 셋을 낳았지만, 아이 모두 태어 난지 며칠 후 모두 열병으로 죽었다. 얼마 전 태어난 아이도 그렇게 열병으로 죽자,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은 못 살겠다며, 그녀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지낸 하디가, 그녀의 소식을 듣고는, 그녀를 하란에게 데려온 것이다. 

유모가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아이고.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아기님과 하란님 모두 이렇게 좋으신 날에." 

“제가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

하란이 가슴이 먹먹해 말을 잇지 못하자, 유모가 그녀의 위로와 마음을 아는 듯, 괜찮다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하디가 젖을 다 먹고 잠든 사엘을 이불 위에 눕히자, 유모가 하란을 보며 말한다. “하란님도 이제 누워보세요. 제가 몸을 좀 봐드릴게요.” 

카야는 유모의 말에, 일어나고 유모가 하란을 잡자, 그녀는 유모를 끌어당겨 안는다.

놀란 유모는, “하란님 왜 그러세요?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아니에요. 그냥 안아 드리는 거예요. 아까 전부터 안아 주고 싶었어요. 우리 아기에게 젖을  주는 당신도 이제부터 우리 사엘이의 엄마예요.”

그녀의 말에 유모가 울음이 터져, 한참을 그녀의 품에 안겨 운다. 

“하란님 감사합니다.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사엘 아기님도 제가 정말 잘 돌볼게요. “ 

“우리 두 엄마가 같이 한번 잘 키워봐요.”

옆에 있던  하디가, “저도 끼워 주세요.” 라고 말하자, 유모와  하라난이 그러자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카야는 이들을 보고, 조용히 방을 나간다. 

잠시 후, 하디는 피 묻은 수건이 담긴 대야를 들고 방을 나와, 방문 앞에 여전히 서있는 카야에게 다가가, “두 분 다 잠드셨어요. 아까 보다는 괜찮으시니 걱정 마세요. 그러니 대장 님도 가셔서 이제 식사도 하시고 잠도 좀 주무세요. 이틀 동안 여기 꼼작 않고 서 계시는 거 봤어요. 호위를 그 정도까지 하셔야 하는지는 몰랐어요. 오늘밤은 유모님이 아기님 젖을 또 물려야 해서 방에서 함께 주무실 테니, 걱정 말고 가세요. “

무엇을 어떻게 저리 잘 알아서 척척 하는지,  카야는 존경과 감사가 담긴 눈으로 하디를 쳐다보자 그녀가 말을 잇는다. 

“네 알아요. 무슨 일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 알려 드릴게요. 그럼 내일 아침 식사 때 오셔서 아까처럼 하란님 좀 부축을 좀 해 주시겠어요?” 

카야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카야를 보고 하디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뜬다. 

캬야 가 생각해 보니 하라난 방에 들어가기 전 말을 나누었던 하녀가 하디였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를 챈다. 사람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보고, 기억하는 카야인데,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이 한 사람이었다고 이제야 눈치챈 거 보니, 정말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그래도, 하란과 아기의 얼굴을 보고 나오니, 이제야 정신도 돌아오고, 숨도 쉬어지는 것 같다.  

카야는, 그녀의 방을 바라보며, 경전의 신에게 나지막이 기도 한다. 

“엄마와 아기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지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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