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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Thirty Six 죽음

by Hye Jang

사엘이 놀라 눈을 뜬다. 앉은 상태로 잠이 들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하다. 아직 어두 운데 밖이

소란스럽다.


수아와 밧세, 카야가 안개가 걷힌 달빛 속에서 떠날 준

비를 하고 있다. 사엘이 제단이 있는 천막을 나와 손짓

을 하자, 주변에 물방울들이 맺히며 달빛을 받아 반짝

인다.


“너희들이 가는 길을 비쳐 줄 거야.”


수아와 밧세가 사엘 앞으로 다가 오자, 사엘이 그들에

게 말한다. “너희 들의 안전과, 모든 일의 잘됨을 위해

기도 할게. 경전의 신이 너희들과 함께 하기를.”


여람이 수아와 밧세을 안으며 말한다. “곧 보자.”


수아가 말한다. “이곳을 잘 부탁해.”


“여긴 걱정하지 말고.”


카야가 사엘에게 다가와 말한다. “다녀오겠습니다. 건

강하고 안전하게 계세요. 주변에 호위 무사들도 여럿

두었습니다.”


"알았어. 고마워. 카야를 위해서도 기도할게. 경전의

신이 카야와 함께 하기를.”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걱정과 염려, 그리고 격려가 담

겨 있다.


수아가, “가자.”라고 말하며 먼저 말을 몰자, 나머지 사

람들도 손을 흔들며 말을 몰아 나간다. 그들의 걸어가

는 자리에 달빛을 받은 물방울들이 반짝 거린다. 그들

의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반짝이던 물방울들도

보이지 않는다.


사엘이 여람을 보며, “나는 경전의 신에게 기도 하고

있을게. 사람들과 병사들은 네가 좀 챙겨 주라.”라고 말

한다.


“그래. 걱정 마. 아비갈님과 내가 하면 돼. 그런데, 또

며칠씩 안 먹고 안 자면 어떡해?”


“이 안에서 기도 하는 내가 뭐가 걱정이겠어. 병사들과

사람들을 챙기는 네가 더 고생이고, 길을 떠난 이들이

더 걱정이지.”


“너의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데. 네가 있어서, 우리에

게 믿음과 희망을 주잖아.”


“고마워. 그럼 나 들어갈게 “


길을 떠난 수아, 밧세, 카야 그리고 정예 무사들이 삼일

을 밤낮없이 달려 마을 근처의 숲 속에 도착한다. 오늘

밤 이곳에 머물고 내일 아침 일찍 마데라로 내려가 정

오에 라단을 만나면 된다. 템말산은 산세가 높고 깊은

데다 안개가 늘 끼어 있지만, 혹시 멀리서 불꽃이 보일

까 하여, 불도 지피지 않고, 풀 숲에 서로 몸을 맞대고

앉는다.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와서 그런지, 말도, 사

람도 지쳐, 쌀쌀한 초겨울 날씨의 쌀쌀함 속에서도 몸

이 노곤하니 눈이 감긴다.


오늘 밤은 구름에 가려 달 마저 보이지 않고, 늘 그렇듯

주변이 밤안개로 자욱하다.


밧세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한다. “잠도 안 오네.”


수아가 말한다. “곧 날이 밝길 기다려야지.”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보다 오늘 밤이 가장 천천히 가

는 것 같아.”


“하갈님 많이 보고 싶지?”


“응. 미안해 수아야. 너 앞에서 할 말은 아닌데.”


“나도 하갈님 많이 보고 싶어. 어린 시절 내가 우리 엄

마만큼이나 시간을 많이 보낸 분이잖아. 우리들 놀이

방은 그대로 있겠지?”


“그대로일 걸. 가서 너랑 또 한판 해야 하는데.”


“라단이 처음 만난 날 기억나?”


“기억나지. 그때 사엘이랑 편 먹고, 여람이는 뭐에 그

리 심퉁이 났는지 뚱해 가지고, 그때 우리가 이겨서, 사

엘이랑 라단이랑 둘이 벌칙으로 청소하고 그러지 않았

었나?”


“라단이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러게. 왕이 라는데, 혹시 온몸에 황금색 천을 두르

고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그럼 너무 부끄러울 거 같아.”


“사엘이랑 여람이도 그걸 봐야 하는데.”


수아와 밧세가 나지막이 웃음소리를 낸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장가처럼 들렸는지, 모두들 깜

박 잠이 든다. 온통 깜깜하던 숲 속이 해가 뜨려는지 주

변이 보일 만큼 어스륵하지만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다.


수아가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안개가 여전히 많이 끼

었네”


그때 카야가 코를 킁킁 거리며 말한다. “무슨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밧세도 코를 킁킁 거리며 말한다. “응. 냄새나. 이게 무

슨 냄새지?”


그때 정예 무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몸을 가누

지 못하고 비틀 거린다.


수아, 밧세, 카야도, 정신이 희미 해진다. 위험을 느낀

카야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수아 앞에 서서 한 손으로

칼을 빼든다. 밧세도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좌우

로 흔들며 일어나, 칼을 빼어 든다. 정예 무사들도 목에

둘러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칼을 빼 드려 하지

만,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그때 카야의 눈에 안갯속에

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자들이 보인다. 칼을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달려온 사울진이, 칼을 휘두르

며 카야의 목을 벤다. 카야의 목이 풀숲으로 멀리 날아

가 떨어진다. 그리고 카야 뒤에 있던 수아의 목까지 한

번에 베어 버린다. 뒤따라 달려오던 웃날도 칼 한번 휘

두르지 못하고 비틀 거리는 정예무사들의 목을 베고

가슴을 칼로 찌른다. 사울진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밧세의 가슴을 향해 단도를 던지고, 달려가 그의 목을

벤다.


말에서 내린 사울진과 웃날이 광기를 부리듯, 이미 목

이 날아가고 가슴에 칼을 맞은 이들의 팔과 다리까지

잘라 풀숲에 던져 버린다.


어느덧 동이 트고, 안개가 걷혀 주변이 환하다. 앙상한

나무 가지만 남은 숲에 여기저기 피가 흩뿌려져 붉은

꽃밭처럼 보인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튕겨진 피로 온몸이 피로 뒤범벅

이 된 사울진과 웃날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다. 살아남은 자가 있는지 주변을 더 둘러보고는 차가

운 계곡물로 들어가 피 묻은 손과 칼을 닦는다.


“시신들은 어떻게 할까요?”라고 웃날이 묻자, “지금은

라단이랑 마데라에 가야 할 채비를 해야 하니, 놔두었

다가, 이따 저녁이나 내일 다시 와서, 모두 태워 버려야

지. 수아가 맞는지 확인은 했어?’


“네, 수아 맞습니다. 밧세랑 카야도 있었습니다.”


“다 온다고 하지 않았었나? 모두 다 한 번에 죽이지 못

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들이 이 산속에 있는 것은

확실하니, 샅샅이 뒤져서 모조리 찾아내.”


“네. 알겠습니다.”


오늘 계획대로 정오까지 마데라에 가기 위해, 라단은

보연당을 나선다. 보연당 앞에 하갈 마하살, 웃날, 사

울진, 넬과 평상복을 입고 있는 몇 명의 병사들이 서 있

다.


라단이 말에 오르자 다들 말에 올라 마데라를 향해 달

린다. 라단의 마음이 그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말을 타

고 달리는 내내 벅차고 설렌다. 마데라에 도착한 라단

은 함께 온 이들과 주변 상점을 둘러보고, 상점에서 파

는 음식도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곧 정

오가 될 것이고, 그들을 만나기로 한 탑으로 가면 된다.


정오가 되자, 라단은 즉위식을 했던 탑으로 올라간다.

몇 명 신하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라단왕이 마데라

에 왔다고 알리자, 사람들이 왕을 보기 위해 탑 주변으

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라단과 그들이 세

운 계획이었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저들 무리 사이로

그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밝히면

된다. 하갈과 마하살이 숨겨놓은 몇 명 병사들이 사울

진과 웃날 그리고 넬을 막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탑

주변이 복잡하다. 라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

러본다.


정오가 한참 지났는데,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탑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웅성 거

리기 시작한다.


사울진이 탑 위로 올라가 라단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라도 좀 하시지요.”


“네?”


창백한 라단의 얼굴을 보자, 사울진이 말한다. “얼굴이

왜 이러십니까? 사람들 앞이라 긴장하신 겁니까? 무

리가 되시면 오늘은 이만 하셔도 됩니다.”


그들이 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들이 이곳에 있

는지, 아니면 아직도 오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혹시

무슨일이라도 생긴건지 하며 무엇이라도 생각해 내야

하는데 라단의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탑

아래 하갈과 마하살의 초조한 얼굴도 보인다.


사울진이 라단의 팔을 잡으며, 다시 말한다. “무슨 일

이십니까?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라단이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

는다. 사울진이 라단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사람들

을 향해 말한다. “오늘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단

왕님의 얼굴도 뵙고, 다들 좋으시지요?”


사람들 사이에 있던 넬이, “네.”라고 말하자, 여기저기

사람들이 "네" 라고 소리 지른다.


“앞으로는, 라단왕께서 오늘처럼 이렇게 자주 이곳에

들리실 거예요.”


넬이 기쁜 듯 “와,” 하는 함성을 내자, 사람들도 , “와”라고 외친다.


넬과 몇명 병사들이 사람들에게 그만 돌아가도 좋다고

알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난다.

모두들 떠나고, 하갈과 마하살 웃날 넬만이 탑아래 서

있다. 사울진이 라단을 부축하며 층계를 내려온다.


하갈과 마하살이 라단에게 가려 하자, 웃날이 막아선

다.


사울진이 말한다. “두 분도 이제 가 보시지요. 왕께서

도 많이 지치신 듯합니다.”


웃날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말을 가져온다.


그들이 자리를 뜨자, 마하살이 하갈에게 말한다. “이

게 어찌 된 일입니까? 애들은 어디 있을까요?”


“느낌이 좋지 않아요. 일단 우리라도 좀 더 여기 있어

보지요.”


“그래요.”


그 들은 해가 지고, 밤하늘에 별이 뜰 때까지 그들을 기

다려 보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이 떠나고 이틀이 지났다. 사엘이 제단 천막에서

뛰쳐나온다.


이를 보고 여람이 놀라, 달려간다. “왜 그래 사엘아.”


“가야 돼. 그들이 위험해.”


”그게 무슨 무슨 말이야?”


“그들이 떠나는 날 환상인지 꿈인지 봤어. 그리고 똑같

은 꿈을 또 꿨어.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가서 확인

해야겠어.”


사엘은 그들이 떠나기 전날 본 환상을 다시 본 것이다.

이번에는 리만투어가 온통 피로 물들어 그들을 덮치고

파도소리가 마치 통곡의 소리처럼 들렸다.


사엘이 달려가자, 여람이 아비갈을 부르고는, 말에 올

라 사엘을 따라 달려가고, 정예무사들도 말에 올라 여

람을 뒤따른다.


아비갈이 카야에게 배운 대로 휘파람을 불자 남은 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천막을 걷고, 그들이 머물렀던 자

리들을 분지런히 치운다.


아비갈이 라함에게 말한다. “가시죠.”


“어딜 말씀 이십니까?”


“이 근처에 은신처 동굴을 만들어 놨어요. 그분들이 돌

아오실 때까지 그곳에 있어야 해요.”


“무슨 일이 생겼다면 우리도 따라가 도와야 하지 않겠

습니까?”


“수아님의 명령이에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일단 굴

속에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 두분이

가셨으니 그분들이 돌아오실 때까지 일단은 숨어서 기

다려야 해요.”


수아를 걱정하느라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라함을 아비갈이 그의 옷소매를 잡으며 말한다. “모두

들 안전하실 거예요. 이곳까지 오면서, 제가 저분들을

지켜봤습니다. 네 분이 함께 라면 못 하실 일이 없어요.

네 분 다 함께 잘 돌아오실 거예요.”


아비갈의 말에 라함이 발을 뗀다. 아비갈과 정하의 지

휘아래, 그들이 있던 자리들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듯 말끔하고, 머물던 그들도 소리 없이 땅굴 속으로 사

라진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간 여람과 사엘이 말에서 내다.


“사엘아 여기부터는 마을이랑 너무 가까워서 걸어야

해.“


그들이 말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며, 걷기 시작한다. 수

아와 밧세는 리만투어 근처 숲 속에서 머물 것이라 했

다. 하지만 이 넓은 숲 속에서 그들이 어느 곳에 머물렀

는지 알 수 없다. 여람이 카야에게 배운 대로 휘파람을

불러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 본다. 정예무사 둘은 위장

하고 마데라로 내려갔다.


숲 속을 헤맨 지 반나절이 지났을까 마데라에 다녀온

정예무사가 돌아왔다. “라단님은 계획대로 마데라에

왔었다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마을 주변

에 별 다른 말들이 떠 돌지도 않습니다.”


사엘이 말한다. “수아랑 밧세는 아직 여기 숲 속에 있

을 거야. 찾아보자.”


여람이 말한다. “무슨 환상을 봤길래 그래?”


“너무 끔찍해서 입에도 담기도 싫어. 아무튼 그들을 찾

아야 해. “


숲 속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둑어둑 해진다.


여람이 사엘 옆으로 다가와 말한다. “사엘아, 날이 밝

으면 움직여야 할거 같아. 이제 컴컴해지는데, 이러고

다니면 우리도 위험해. 오늘은 왜 달도 안 보이지?”


“여람아. 무슨 냄새나지 않아?”


“냄새?”


“이 근처에 오니 그동안 나지 않았던 냄새가 나. 여기

가 약초 밭인가? 아앗.”


사엘의 외마디에 여람이 사엘을 잡으며 말한다.


“왜 그래?”


“뭘 밟았나 봐. 물컹했어.”


“뱀 아니야? 아무래도 근처에 있다가 날이 밝으면 다시

찾아보는 게 좋겠어.”


그때,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보인다. 사엘이 손가락

을 튕기자, 물방울이 생기며 주변이 달빛에 반사된 물

방울들로 환하게 빛난다.


그때 사엘이 소리를 지르며, “아악. 여람아.” 하며 그를 부른다.


물방으로 환화게 비취는 주변으로 토막 난 시체들이

뒹굴어져 있고, 숲 주변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사

엘이 발밑을 보자 떨어져 나간 팔이 있다. 사엘이 팔을

밟은 것이다. 그녀가 팔을 주워 보더니 또 한 번 소리

를 지른다.


“카야야.”


“카야?”


“카야의 팔이야. 여기 단추를 쥐고 있잖아. 내가 라단

이 만나면 주라고 한 건데.”


사엘이 카야의 팔을 가지고 주변을 본다.


“여람님. 여기 수아님의 얼굴이.”


정예무사가 말한 곳으로 가니 목이 잘린 수아의 얼굴

이 있다. 여람은 밧세의 잘려나간 머리를 찾았다.


사엘과 여람이 그들의 얼굴을 안고, 너무 끔직하고 잔

인함에 비통해 하며 통곡한다. 통곡의 소리가 환상 속

에서 들렸던 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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