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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Thirty Five 악몽

by Hye Jang

“오늘도 뛰고 온 거야?”라고 사엘이 묻자, 여람이, “응.

넌 왜 나와 있어?”라고 돼묻는다.


여람은 병사들과 따로 훈련하는 것 외에도, 아침, 저녁

으로 꽤 오랜 시간, 꾸준히 주변을 뛰고 있다.


“병사들과 훈련도 많이 하면서, 뛸 체력이 돼? 너무 무

리하는 거 아니야?” 라며 사엘이 걱정이 된 듯 묻자,


“틈틈이 체력을 쌓아 두려고. 아직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리고.” 라며 여람이 말끝을 흐린

다.


“그리고?”


“뛰면 그냥 생각이 없어져.”


“생각? 요즘 생각이 많아?”


“그냥 생각 자체를 안 들게 하려고.”


여람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부모님을 만난다는 기

쁨도 있지만, 라단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사엘에 대

한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그동안 마을을 떠난 후,

그는 사엘과 매일 함께 있으면서, 그녀에 대한 마음

이 더욱 커졌다. 친구사이와 좋아하는 감정 사이에서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크고, 이제는 그녀와 떨

어져서는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사엘이 라단과

함께 있을 것을 생각만 해도, 요동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뛰는 것이다. 뛰면서, 지금은 마을로 돌아가는

것만 생각해야 해라고 마음을 다 잡기도 한다.


사엘이 걷자, 여람이 뒤를 따르며 묻는다. “해안절벽에

가는 거야?”


“응.”


“같이 가.”


“카야랑 가면 돼. 넌 들어가서 좀 쉬어.”


“아니야. 나랑 같이 가.”


둘이 말없이 걷는다.


사엘은 여람을 보면서, “넌 좀 변한 거 같아”라고 말한

다.


“내가? 어떻게?”


“글쎄.”


여람이 손으로 머리를 털고, 옷소매로 땀을 닦으며 말

한다. “나 지금 좀 더럽나? 아까 훈련하고 뛰고 온 건

데, 좀 씻을걸 그랬나 봐.”


사엘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여람을 보고 웃으며 말한

다. “그 말이 아니었는데.”


“응?”


“뭐가?”


“안 변했네.”


“응?”


“변한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안 변했다고. 이렇게 엉

뚱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거 보니.”


사엘은 꼭 10대 때의 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

웃음을 터트린다.


“왜 갑자기 웃지? 어느 부분 때문에 웃는 거야?”


여람의 말에 사엘이 웃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걷는다.


여람도 다시 뒤따라 걸으며 말한다. “너도 안 변했어”


“응?”


“뭐가?”


“우리 그만해야겠다. 그냥 둘 다 안 변한 걸로 해.”


여람이 사엘 앞을 가로질러 앞서서 걷다, 뒤돌아 보며

말한다. “맞아. 안 변했어. 너도 나도.”


여람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좋아하는 사엘도, 그

리고 그의 마음도 변함없이 좋아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그녀가 몰라도 괜찮다.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

면서 힘들지만, 그 모든 시간 속에 한줄기 빛처럼, 그녀

와 함께 있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 시간들이

빨리 흘러,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어떤 때는 그녀와 있는 시간이 좋아서 조금은 천천히

가도 좋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앞서 걸어가는 여람의 뒷모습을 사엘이 바라보며 여

람의 어깨가 저렇게 넓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어깨

위에는 보이지 않는 무게마저 느껴진다. 그냥 맑기만

하던 그의 얼굴은 걱정과, 고뇌와 책임으로 가득해 보

인다. 힘든 시간 속에서 어른이 된 친구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찡하다. 이 길고 어려운 시간들도 얼마 남지 않

았다. 마을로 돌아갈 것이고, 라단을 만날 것이고, 그리

고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면 된다. 사엘에게는 남은 며칠이 그동안 보낸 시간 보다 훨씬 더 길고 천천히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또, 해안 졀벽에 세운 제단을 찾

는 것이다. 멀리 보이는 리만투어를 바라보며 이 시간

이 잘 흘러가기를 모든 것이 잘 되기를 경전의 신에게

빌어 보기 위해서이다.


물이 졸졸 나오는 제단 앞에 사엘이 앉아 한참 기도를

하더니, 여람을 부른다. “여람아. 여기 와서 앉아봐.”


여람이 사엘 옆에 앉는다.


“손도 좀 줘 봐.”


여람이 의아해서 “손?”이라고 다시 물으며, 손을 내밀

자, 사엘은 두 손으로 제단의 물을 떠서 여람의 손에

부어주며 말한다.


“오늘도 훈련하고, 병사들 챙기고, 사람들 챙기느라 고

생 많았어. 시원하게 손이라도 좀 닦아.”


“이 물로 이래도 되는 거야?”


“그래도 돼. 고생한 자의 수고를 덜어 주는 경전의 신

이 주는 물이야.”


사엘이 여러 번 물을 떠서 여람의 손에 부어 주자, 여람

은 손도 씻고, 얼굴도 적셔 본다. 사엘이 떠서 주는 물

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 수고를 덜어주는 경전이

신의 물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피곤함이 덜어지

는 것 같다.


“시원 하지?”


“응.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아.”


“목도 마르지 않아? 마셔봐.” 사엘이 여람의 손에 물

을 부어 주고 사엘도 두 손으로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다. 졸졸 흐르던 물이 더 많이 흘러나오며 절 벽 아래

로 떨어진다.


사엘이 나지막이 말한다. “이 물이 흘러, 저곳에 있는

누군가의 수고도 덜어지길.”


숲으로 돌아온 여람과 사엘에게 카야가 다가오더니,

“오셨습니까. 모두들 기다리십니다.” 라고 말하자, 여람은 그새 무슨 일이 라도 생겼나 해서 놀라, “왜?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라고 묻는다.


“아닙니다. 수아님께서 그날 있을 계획에 대해 다시

한번 나누어 보기 위해, 모두 모이시라 하셨습니다. 지

금 막 다들 모이셨으니 들어가시죠.”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이미 모여 앉아 있다.

여람과 사엘 카야가 들어와 앉자 수아가 입을 연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다 같이 마데라에 가는 것은

위험한 거 같아. 내가 먼저 가서 라단을 만나 볼게.”


사엘이 말한다. “너 혼자는 안돼. 혼자 가서 만나야 한

다면 내가 갈게.”


여람이 말한다. “너도 안 되지. 수아는 왕으로 지명받

는 자이고 넌 제사장인데, 둘을 가장 위험하게 할 순 없

어.”


밧세가 말한다. “여람이 말이 맞아. 가야 한다면 내가

갈게. 그날 엄마도 나오 신다고 했으니, 어쩌면 내가 가

장 안전할지도 몰라.”


수아가 고개를 좌우로 여러 번 흔들고는 말한다. “내

말을 잘 들어봐. 우리가 라단을 만나 마데라에서 사람

들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설명하고

바로잡기 위해서잖아. 이걸 먼저 해야, 사울진도 병사

를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래야 누구도 다치지 않

게 해결할 수 있어. 만약 우리가 몰려 내려간다면, 사

울진은 우리를 오히려 반역자로 몰아 병사들을 움직일

거야. 일단은 마을 안에서는 어떤 무력도 일어 나서는

안돼.”


수아의 말에, 모두들 염려한 일이기 때문에 다들 아무

말이 없다.


라함이 입을 연다.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아들이 위험

할 수 도 있는데 내가 옆에 있어야지. 그리고 1지파 마

을 사람들 중에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을 거야.”


“즉위식 때 일로 봐서는 아버지께서 가시는 것은 좋지

않을 거 같아요. 사울진이 어떤 말로 아버지를 또 해 할

지 몰라요.”


“내가 갈게. 제사장이 가서.”


여람이 말한다. “사울진은 네가 제사장이 아니라, 마을

을 위협하는 저주받은 자라고 할지도 몰라. 아니면 라

단에게 왕으로 기름을 부어 주려고 왔다고 하거나.”


“그럼 어떻게 해? 수아는 안돼. 이건 장기에서 왕부터

내놓는 거랑 마찬 가지야.”


수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이건 장기판이 아니

니까, 왕끼리 나서서 해야 하는 일도 있잖아. 지금 저곳

은 라단이 왕이고, 나는 경전의 신이 지명 하신 왕이고

이 두 왕이 서로 충돌이 생기지 않게 해결해야 해.” 라

며 차분히 말한다.


밧세가 말한다. “그러니까 나랑 가.”


여람이 말한다. “나도 갈래.”


사엘이 말한다. “그럼 나도 가.”


수아가 말한다. “다 몰려 내려가지 말자고 하는 이야기

인데, 왜 다들 가겠다고 그래. 우리가 옛날처럼 마데라

에 놀러 가는 거니? 나보고 맨날 생각 없다고 하더니,

너네 지금 왜 그래? 마데라에 간다니까 막 설레? 그래

서 나도 갈래 나도 갈래 그러는 거야?”


수아의 말에 밧세와 여람 그리고 사엘이 동시에 말하

려고 하자, 카야가 입을 연다.


“마데라에서 라단님을 만나는 목적은 지금 왕으로 있

는 자와 경전의 신이 왕으로 지명 한자, 그리고 사람들

은 두 분 사이에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으며, 누구는

왕이 되고, 누구는 도망을 갔어야 하는지에 대한 진실

을 알리는 자리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서로

무력으로 인한 충돌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수아가 말한다. “맞아. 카야. 그렇지. 내 말이 그거야.”


카야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수아님 혼자 가시는 것이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울진의 표적은 수아님 이

시니까요. 그래서 저와, 정예 무사 몇 명과 밧세님께서

가시는 것이 어떨까요?”


여람이 말한다. “밧세 보다는 내가 낫지 않아?”


수아가 말한다. “둘 다 똑같거든.”


밧세도, “너랑 여람이 가 똑같고, 나는 너네들과는 다

르지.”


수아가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집중하자. 우

리 지금 다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들떠 있는 거

같아. 가는 길이 분명 쉽지 않을 것이고, 계획했던 대로

안 될 수도 있어. 라단도 만나봐야 아는 거고.”


사엘이 묻는다. “만나봐야 안다니? 무슨 말이야?”


“난 지금 그 누구도 믿지 않아.”


“그럼 라단도 안 믿는다는 거야?”


“사람보다는 우리 주변의 상황들을 안 믿는 거야. 그

일 이후, 라단은 갑자기 왕이 됐어. 이유가 있었다 하더

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야. 그리고 그런 시간이 거의 1

년이나 돼 가고 있어. 그 사이 마을 사람들은 라단의 의

도와는 달리, 지금의 환경에 익숙해졌을지도 몰라. 환

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사라진 우리들과 경전의 신

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어. 사울진은 그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우리를 치러 달려온다면 , 우리는 맞설 수

밖에 없고, 불가피하게 무력을 써야 할 수도 있어. 그

래서, 여람이랑 너, 그리고 아비갈님께서 남아서 이곳

사람들을 지키고 병사들을 정비하고 있어. 그리고 제

사장은 왕의 문제가 해결되고 난 후에 나타나면 돼.”


수아의 말을 듣는 사엘도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 고

개를 끄덕이더니, “그런데, 수아야. 너 혹시 왕이 되지

않으려는 건 아니지?”


수아가 말한다. “글쎄.”


“글쎄라니?”


“지금은 누가 왕이고 누가 왕 될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스스로 왕이 된 자도, 경전의 신이 왕으

로 부르심을 받은 자도 다 왕인데, 어떡해? 일단 지금

은 평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려

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수아의 말에 모인 이들 모두 생각

이 많다.


수아와 라함은 기쁘기도 하면서, 또 낯설게도 느껴진

다. 레첼이 떠난 집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비갈은 수년 전 떠난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설

레면서도 이제는 또 떠나야 하는 일 없이, 마을이라는

곳에 평범한 마을 사람으로 정착할 수 있을지 하는 새

로운 여정이. 두렵기도 하다.


카야의 마음은 복잡하고, 불안하다. 사엘을 지켜야 하

고 사엘이 사랑하는 이를 지켜야 하고, 사엘이 지명한

이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사엘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

다.


잠시 후, 카야가 수아에게 언제 떠날지를 묻는다.


“내일 새벽에 떠나는 거로 해. 마데라에 그날 도착 하

려면, 부지런히 가도 촉박 할 거야. 일단 쉬지 말고 간

후, 전날 마데라 근처 산에서 묶고, 다음날 마데라로 들

어 가자.”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 나가서 정예 무사들

을 정비 하겠습니다.”


아비갈도 일어나며 말한다. “그럼 저는 사람들에게 말

해서 챙겨 가실 것을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천막 안에 수아, 밧세, 여람 그리고 라함만 남자, 라함

이 수아의 손을 잡는다.


수아도 라함의 손을 두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셔요.”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됐어? 헤어질 때만 해도 아이 같

았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건장 하고, 다부진 어른으로 자라났구나. 너희들 모두

다.”


라함의 눈에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 속에서

성장했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맺힌다.


밧세가 말한다. “저희 모두 힘들었지만 함께 해서 버틸

수 있었어요. 오늘도 보세요. 아직도 이렇게 모이기만

하면 티격태격 이에요.”


라함이 손으로 눈물을 닦더니, 허허 웃음소리를 내며

말한다. “그러게 말이다. 아까 보니 큰 일을 앞두고 모

여 놓고는 서로 가고 싶다고 떼쓰는 아이들 같더구나.”


“아버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계셔요. 저 금방

다녀올게요.”


사엘이 말한다.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잘 다녀와.”


여람이 말한다. “너네들도 아침에 일찍 가려면 좀 쉬어

야 할 테니, 모두 그만 일어나자.”


모두 천막을 나와 각자의 천막으로 간다.


잠시 후, 라함도 천만에서 나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본다. 곧 떠날 수아에 대한 걱정이 많다. 경전의 신

에게 수아에 대해 빌어 본다.


그때, 일을 마친 아비갈이 혼자 서 있는 라함을 보고,

그에게 다가간다. 그때 상심과 슬픔에 잠긴 라함에게

우거짓국을 건넨 이후, 둘이만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

이다.


아비갈이 다가오자, 라함이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넨

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어.”


아비갈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자네를 다시 만난 것

도 놀라운데, 지금까지 아이들을 도와줬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었어. 고마워. 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하네.”

라고 말한다.


라함은 그날 우거지 국을 먹고, 아비갈을 알아봤었다.

하지만, 레첼의 죽음, 그리고 숨 가쁘고 정신없이 돌아

가는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제대로 말해 보지도 못했

었다.


“절 못 알아보시는 줄 알았어요.”


“자네가 우거지 국을 주던 그날부터 알아봤었어. 그 맛

이 너무 익숙했고, 그 맛은 자네만 낼 수 있다고 생각했

거든.”


“많은 이들이 그 국을 먹어요. 어떤 이들은 그것조차

없어 못 먹기도 하지만요.”


“한 지파의 수장이었었지만, 나는 세상에 대해, 사람들

에 대해 정말 잘 몰랐던 것 같아.”


“그래도, 늘 잘하셨을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 마을에는 없었잖아”


“수아님을 보면, 그 시절 오빠를 많이 닮았어요. 지혜

롭고, 총명하고, 지략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많아요. 그때 오빠처럼요. 마을 사

람들을 많이 사랑하셨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필요한

것을 늘 해주고 싶어 하셨고요.”


“내가 그랬던가?”라고 말하며, 라함이 멋젓게 웃는다.


“그럼요. 그러셨어요. 그리고, 수아님도 오빠를 닮았고

요.”


“나도 수아를 보고 좀 놀라긴 했어. 내 아들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할 정도로. 늘 철부지 애 로만 생각했는데.

수아가 얼마나 엉뚱하고 개구쟁이였는지 자넨 모를 거

야.”


“수아님도, 여람님도, 밧세님도, 그리고 사엘님 까지

우리도 모두 믿고 따를 만한 분들이기에 여기까지 같

이 온 거예요.”


“자네도 놀라워. 어떻게 사람들을 모아서, 글과 무예

를 가르칠 생각을 했어? 정말 대단해.”


“오빠의 영향이 컸어요. 버려지고 소외된 이들을 지나

칠 수 없었고, 오빠가 저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글과

무예를 알려 주었을 뿐이에요.”


서로 마주 보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본

다.


“수아랑 밧세가 무사해야 할 텐데. 그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눈이 멀고 목소리를 잃은 수아를 그의

친구들의 손에 맡기고, 아내와 나는 잡혀 갔지만, 나는

결국 아내도 지키지 못했어.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 없네. 자네에게도 마찬 가지였어. 그날 이후로, 한동

안 자네가 살던 곳을 찾아가지 않았었어. 찾아가면, 그

때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거 같아서.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가 봤더니 자네는 없더군. 집도 오래도

록 비어져 있었던 것처럼도 보였고. 찾아볼까도 생각

했지만, 그러지 않았네. 그래도, 어딘 가에서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하면서 경전의 신에게 빌었

었는데. 내가 자네를 만나고, 해 줄 수 있었던 게 고작

그거였더라고. 그저 경전의 신에게 빌어보는 것.”


“오빠가 빌어 주셔서 경전의 신이 절 지켜 주고 도와주

셨나 봐요. 사람들을 만나, 가족처럼 지내, 외롭지 않았

어요. 그리고 예전에 많이 좋아했던 이의 아들과 그의

친구들도 만나 여기까지 다시 오게 됐고요.”


“자네가 이룬 일들은 모두 자네의 힘과 노력으로 된 거

야." 라고 말하더니, 라함은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옷

소매로 닦으며 말을 잇는다. “내가 요즘,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


“오빠는 예전에도 잘 우셨어요. 책을 읽다 가도 울고,

길가는 고양이를 보고도 울고, 지는 해를 보면서도 우

셨어요. 요즘 들어 오히려 잘 안 우시는 것 같던데요.”


“내가 또 그랬었나?” 라함이 코를 훌쩍하며, 말한다.


“네.”


둘이 서로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울다가, 웃다가, 여전하세요. 오빠가 늘 그러셨 듯, 내

일 떠나는 이들도 경전의 신에게 빌어 주세요.”


아비갈과 라함은 그렇게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각

자의 마음의 소원인, 모든 계획들이 잘 되어, 집으로 돌

아가고, 누구도 다치지 않고,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사엘은 그녀의 천막대신 제단이 있는 곳 으로 들어가

제단 앞에 앉는다. 사엘은 이동하는 곳마다, 머물 때면,

이 천막을 만들고, 그 안에 작은 제단을 만들었다. 제단

위에 놓인 아비갈이 가지고 있던 책을 집어 읽는다. 수

백 번도 읽고 또 읽어 한 장 한 장 낡고 해졌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그전에 읽었던 경전들의 내용들도 생각해

본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지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즈막히 기억

나는 경전의 내용들을 읊조리며, 경전의 신에게 빌어

본다. 그리고 며칠 후엔 이곳이 아닌 리만투어 해안가

에 친구들과 앉아 있는 상상도 해 본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의 환한 얼굴이 보이고,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

는 것 같다.


그녀의 환상 속에서, 갑자기 리만투어 바닷물이 높게

치솟아 앉아 있는 그들을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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