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밧세가 있는 방을 나가려 하자, 수아는 다시 자리
에 앉으며, “내가 오늘은 밧세 옆에 있을게.”라고 말하
자, 밧세는, “나 괜찮아. 혼자 있어도 돼. 너도 가서 쉬
어. 내일 또.."
밧세는 싸워야 하니까 라는 말을 더 입에 담지 못하고,
말끝을 흐린다.
수아는 밧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불 위에 누우
며 말한다. “누가 너 돌봐준대. 두 다리 멀쩡하고, 한 팔
도 쓸 수 있고, 다 할 수 있잖아. 움직이는 거 귀찮아."
여람은 둘을 보며, “밧세야 네가 수아 돌봐 주게 생겼
다." 라고 말하며, 방을 나간다.
모두들 나가자, 밧세도 눕는다.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수아를 바라본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헝
클어진 머리지만, 여전히 높은 콧날과, 다부지게 다문
입술이 남자답고 매력 있는 수아다.
“왜 그랬어?” 수아가 갑자기 눈을 뜨고 밧세 쪽으로 돌
아 누우며 말한다.
“응? 뭐가?” 밧세가 놀라 대답한다.
“네가 왜 그 화살을 맞냐고? 정말 큰일 날 뻔했어. 그리
고 팔도 그래. 못쓰게 되면 어쩌려고. 네가 왜 달려들어
화살을 맞냐고?”
수아는 그동안 걱정이 되어 하지 않던 말을 밧세가 좀
나아지는 것 같아 말을 꺼낸다.
“난 또 뭐라고.” 밧세가 웃으며 말하자, 수아는 인상을
쓰며, “웃을 일 아니야.”
“너라면 어떻게 했어? 나를 향해 화살이 날아와? 내가
못 봤어.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나도 달려가 막지.”
“거봐.”
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한다. “막긴 막는데
몸으로는 안 하지. 칼을 딱 휘두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막던가. 아니면 너를 잡고 몸을 딱 돌려 날아오는 화살
을 피하던가 그렇게 하지. 누가 몸으로 화살을 막냐. 자
봐봐.”
수아가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행동으로 보여 주며
말한다. “여기 네가 서 있어. 화살이 날아와. 그러면 어
떻게 해. 달려가서 칼을 이렇게 휘두르며 날아오는 화
살을 막아야지. 이렇게.”
수아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바닥에 깔린 이불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진다.
이를 본 밧세가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며 말한다. “화살
막다가 넘어져 다치겠다.”
“이건 방이어서 그렇고, 실전에선 안 그러지. 내가 다
막아내지.”
“알았어. 다음엔 그렇게 할게.”
“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야. 하지 마. 절대로 하지 마.”
“알았어. 이제 좀 자.”
수아와 밧세가 다시 눕는다. 피곤했는지, 수아는 금세
코를 골며 잠이 든다. 밧세는 다시 일어나, 다치지 않은
팔로 수아의 헝클어진 머리를 넘겨주며, “또 그런 일이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너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할 거
야. 화살이 아니라 그보다 더 한 것도 너를 위해 막아
낼 거야.”
“뭐라고?” 사울진이 의원의 말을 듣자, 그의 방에 누
워 있는 웃날에게 달려가, 그의 옆에 앉아 손을 잡는다.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그의 손이다.
사울진은 그의 손을 따듯하게 해 주고 싶어 양손으로
더욱 꼬옥 잡으며 말한다. “웃날. 정신이 들었어? 그
렇지. 그렇지. 자네가 거뜬히 일어 날줄 알았지.”
웃날의 얼굴색이 종이색처럼 하얗고, 며칠새 눈 꺼플
까지 푹 꺼졌다.
웃날이 힘겹게 입을 움직이며, “형님.” 하고 사울진을 부른다.
사울진은 웃날에게, 주인님이고 사울진님이고 뭐고,
이제 부터 형제고 가족이니, 형님이라고 부르라며 가
르쳐준 단어였다. 웃날은 그를 형님이라 자주 부르진
않았었다. 그에게 사울진은 그의 생명의 은인이며, 그
에게 새 삶을 준 그의 삶의 주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응. 그래. 형이야."
“괜찮으십니까?”
늘 사울진 곁에서 그를 지키던 자이다. 지금도 정신이
들자마자 사울진의 안부를 묻는다.
“지금 날 걱정하는 거야? 나는 괜찮아. 네가 어서 나아
야지.”
“그들은..” 웃날은 힘이 드는지 말을 더 잇지 못하자, 사
울진은 그동안 매일 전쟁이 있고, 승리도 패배도 없이,
매일매일 그렇게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하려다, “괜찮
아. 다 괜찮아지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
부터 나아야지.응…” 사울진이 갑자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약초로 아들을 잠재우고, 의미와 목적을
잃어 가는 전쟁에, 지금까지 가장 믿고 의지 하던 친구
이자 가족인 웃날은 며칠 째 정신을 잃고 누워 있다.
“형님. 많이 웃었습니다.”
웃날의 말에 사울진도 목이 메는 것을 겨우 참으며,
“그래. 그래. 나도 너와 함께 많이 웃었지. 앞으로도 웃
을 일이 얼마나 많아. 어서 나아서 일어나."
웃날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힘겹게 말한다. “그러
셔야 해요. 꼭.”
“응?”
“앞으로 더 웃을 일이 많으면서 사셔야 해요.”
“그럼. 그리고 너도 나와 함께 그렇게 해야지.”
“그때..” 웃날이 힘겹게 기침을 하고는 말을 잇는다.
“그때 이미 죽을 목숨이었는데, 살려 주시고… 이렇게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울진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넌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뭐가 그리 고마워. 나도. 나도 너
때문에 살 수 있었어. 우린 늘 함께 했잖아.”
웃날이 사울진의 손을 한번 힘을 내어 꼭 쥔다. “살아
온 매 순간이 행복하고 웃는 날이었습니다. 지어 주신
제 이름처럼요. 형님. 제 이름을 불러 주시겠어요?”
사울진도 웃날의 손을 꼭 쥐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웃날. 웃날. 너만 웃은 게 아니야. 나도 너와 함께 웃
었어.”
웃날이 사울진을 보며 힘없는 얼굴이지만, 입가에 미
소를 띤다. 사울진은 그의 이름을 여러 번 불러 주고,
웃날은 사울진이 불러주는 그의 이름을 자장가처럼 들
으며, 눈을 감는다. 사울진이 놀라 그의 가슴에 귀를 대
보니, 숨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사울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는 다시 웃날의 손을 잡고는, 그동안 있
었던 그와의 추억들을 떠올려 본다.
“그래. 너와 내가 그렇게 살았어. 그렇지 그렇게 힘든
일도 이겨냈고, 그리고 또 그렇게 우리가 웃었지.”
웃날이 사울진의 말이 들리는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며칠 가느다란 숨소리를 내던 웃날은 다시 일
어나지 못하고, 그날 그렇게 눈을 감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은채 영원히 꿈나라로 떠났다.
“아니야. 이렇게 가면 안 돼. 웃날. 웃날 눈 좀 떠봐.”
사울진의 울부짖는 소리가 왕궁에 퍼지고, 병사들이
모두 고개를 떨구며 목례를 한다.
이름도 없이 끌려온 노예였고, 죽을 직전 사울진을 만
났고 그에게서 웃으며 살으라는 웃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까지 사울진과 마을을 일구고, 지파를 세
우고, 병사들을 훈련하는 최고 훈련관이자, 그는 사울
진의 가족이고 친구이며 동료였다. 사울진은 죽은 웃
날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흐느끼며 말한다. “모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웃날. 너를 이렇게 만든 수아랑 모두를
모두 없앨 거야. 지켜봐. 나의 영원한 친구, 나의 형제,
나의 사랑하는 자여.”
사울진이 방을 나와 마당으로 나간다. 병사들이 모여
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친구, 가족을 잃었다. 그대들의
지휘관을 잃었다. 그의 장례는 그를 죽인 자들과 함께
장례 되어질 것이다.”
병사들이 사울진의 말을 듣고 함성을 지른다. 석양이
지는 하늘이 유난히 붉은 것이 핏빛처럼 보인다. 사울
진과 병사들은 밤에 그들을 급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엘아. 사엘아.”
사엘이 리만투어 바다를 향해 들어 가자, 라단이 그녀
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간다. “사엘아. 거긴 왜 들어가.”
라단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사엘이 뒤를 돌아 라단을
쳐다보고는 갈길을 멈춘다. 라단이 힘껏 달려 사엘에
게 다가가려 하지만, 사엘은 그 자리에 있는데 라단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사엘아. 사엘아.”
사엘 옆에 수아, 여람 그리고 밧세도 함께 서 있다. 라
단은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본다. 오히려
달려가는 것을 멈추니, 그들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왜 다들 그렇게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어?”
라단이 점점 그들에게 가까워지면서 말을 하지만, 그
들은 들었는지 아닌지, 대답대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라단을 쳐다본다. 그들이 점점 리만투어 물에 잠겨 들
어간다. 라단이 놀라 그들을 향해 다시 뛰며 그들의 이
름을 소리쳐 부르며 달려 가지만, 그들의 점점 더 물에
잠겨 들어가고, 그들을 향해, 숨이 차 오르도록 뛰지만,
닿질 않는다. 라단이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서 일어난
다.
“쾍쾍.” 자리 옆에 피어진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한다. 라
단은 직감적으로 무슨 연기 인지 알아채고는 황급하
화로를 끈다. 천으로 입을 막은 후, 조심히 바깥을 둘
러본다. 그의 방 앞에 무장한 병사들이 서있다. 그들이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려,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여 듣는다.
병사 하나가 방으로 들어 오려하자, 라단은 황급히 자
리로 돌아가 눕는 대신 앉아 있는다. 병사가 앉아 있는
라단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자, 다른 병사들도 황급
히 방으로 들어온다.
“가서. 아버지께 전해. 내가 일어났다고. 그리고 나도
함께 가겠다고.”
병사들이 놀라 머뭇거리자, 라단이 소리친다. “어서.
어서 가서 전해.”
모두들 자리를 뜨자, 라단이 일어나, 왕궁을 나선다.
“모두 사엘네 집으로 간다고 했어. 다들 지금 거기 있
는 거야. 가서 전해야 해.’
라단은 그동안 연기를 맡은 탓으로 어지럽지만, 힘을
내어 달려간다.
‘그들에게 알려야 해. 그들을 살려야 해.’
라단의 방으로 달려온 사울진은 그가 사라진 것을 발
견하고는 왕궁 전체를 샅샅이 뒤지지만 찾을 수 없다.
“라단왕을 찾아. 그리고 지금 쳐들어 간다.”
라단은 겨우 사엘네에 도착하고, 지난번 그가 지난번
태운 신전 앞에 서있다가 사엘의 방을 기억해 내 걷는
다. ‘사엘방이 어딨었지? 그래 이리로 가자.’
그를 발견한 병사가 칼을 빼들고 다가오자, 라단이 말
한다.
“나는 라단이다. 사엘님을 불러줘.”
“라단? 그 라단왕이라는?”
“사엘님을 불러. 어서.”
이 소식을 들은 사엘과 여람, 수아, 카야 그리고 하갈,
라함, 마하살, 레이까지 모두 달려온다.
먼저 도착한 사엘이 달려가 라단을 부둥켜안으며, “라
단아. 라단아.” 하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사엘아. 미안해. 내가 미안해.”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때 나머지 이들도 달려와 라단과 사엘의 앞에 선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하갈이 라단 앞으로 다가가 묻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라단이 고개를 떨굴며 말한다. “저도.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어나 보니 방에 누워 있었고, 향이 피
어져 있었습니다. 그것보다, 지금 피하셔야 해요.”
“왜?” 사엘이 놀라 묻자, “아버지가 이곳으로 오고 계
셔. 피하야돼. 어서.“
라단의 말을 들은 수아가 비장한 얼굴로 말한다. “피할
곳은 없어. 네가 잠들어 있는 사이 이곳은 둘로 나뉘고,우리는 서로 적이 되어 매일매일 전쟁을 하고 있었어.”
"뭐라고? 그럼 너네들은 언제 여기 온 거야? 원래 예
정대로 왔었던 거야?"
수아는 너 정말 아무것도 몰라 라는 표정으로 라단을
보며, "그날, 하갈님, 정하, 그리고 아비갈님이 리만투
어에 매달려 있었어."
"뭐?" 라단은 놀라, 그들이 괜찮은지 둘러본다. 그런데
밧세가 보이지 않자, 수아를 보며 물어보려는데, 수아
가 먼저 말한다. "밧세는 화살에 맞았어."
"그래서? 그래서 지금 어딨어?"
"회복 중이야."
라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날 내가 던진 칼에 웃날이 맞았어. 사실은 네 아버
지를 향해 던진 칼이었어."
수아의 말에 라단은 잠시 침묵한다. 왜 나의 아버지를
향해 칼을 던졌냐고 따질 수도 없고, 화살에 맞은 친구
가 회복 중이라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
금은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한다.
"웃날이 죽었어." 라단에게 웃날은 아버지의 형제, 그
에게는 삼촌 처럼 가족 같은 자였다.
그의 말에 다들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수아는 더
놀라 뒷걸음질까지 한다.
지파의 수장들과 카야에게 웃날은 늘 경계의 대상이었
으면서도, 그의 병사 통솔과 지략을 존경했었다. 그런
웃날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이웃이고, 동
료였었다.
라단은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아버지께서 병사들과
이곳으로 오고 계셔요.웃날을 잃으셔서 지금 제정신이
아니세요. 지금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 돼요."
라단의 말에 카야가 휘파람을 불자, 여기저기 병사들
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라단은 수아를 쳐다보며, “나를 인질로 잡아.”
“뭐라고?” 사엘이 라단을 팔을 잡으며 말한다.
“나를 인질로 잡아 앞에 세워. 내가 맨 앞에 세워져 있
다면 아버지도 공격하지 못하실 거야.”
사엘은 라단의 팔을 더 꼭 잡으며 말한다. “안돼. 라단
아. 너무 위험해. 너를 인질로 잡을 순 없어.”
“나는 이미 너희들에게는 적군의 아들이고, 또 아버지
를 생각하면 나는 너네 편도 될 수 없어.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고 이런 의미 없는 전쟁은 하지 말아야
지. 그러니 나를 인질로 잡아 앞에 세워. 어서. 시간이
없어.”
여람이 수아 대신 말한다. “네 생각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일단 우리는 이런 의미 없는 죽음의 전쟁을 끝내
야 해.”
“그래도. 인질은 안돼. 라단이도 여기 있으니 우리
가 이제 사울진님과 이야기를…”
라단이 사엘의 손을 꼭 쥐며 말한다. “사엘아. 아버지
는 병사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어. 나를 앞세워
대화를 시도한다 해도, 아버지는 나를 데려가면, 다시
나를 재우고, 이곳에 쳐들어오실 거야. 내가 여기에 인
질로 잡혀 있어야, 아버지는 이곳에 화살 하나도 날리
지 못하실 거야.”
잠시 후, 라단의 손과 몸을 묶은 후, 그를 말에 태운다.
“나도 같이 탈래.”
라단이 몸과 손이 묶인 채로, 그의 얼굴을 사엘의 얼굴
에 갖다 대며 말한다. “사엘아. 곧 끝날 거야. 걱정하지
마. 알았지? 금방 다시 올게.”
마음을 좀 가다음은 수아가 라단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조심스럽게 말에 태우며 말한다. “그래. 일단 전쟁부터
끝내자. 이런 의미 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을 더 이상 죽
게 할 순 없어."
"맞아."
"그리고 웃날 일은."
“그것도 알아. 그러니 일단 이 전쟁부터 끝내고, 떠나
간 이들을 슬퍼하자."
“그래. 다치지 말자. 친구야. 밧세 하나 다친 것도 힘들
다.”
라단과 수아가 서로를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
라본다.
사엘이 여람의 팔을 잡으며 말한다. “조심해. 알았지?”
여람은 사엘이 그를 걱정하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라
단이 걱정되어 말하는 것을 알지만, 그를 잡고 있는 사
엘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알았어. 조심할게. 걱정하
지 마.”
라단을 태운 말이 맨 앞에 있고, 그 뒤로 여람과, 수아,
카야 그리고 병사들이 선다. 멀리서, 사울진의 병사들
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스름하던 하늘이 어느새 깜
깜해졌다. 달려오던 사울진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
각했는데, 병사들이 맞서고 있는 것을 보고 달리는 말
을 멈춘다. 수아가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주변을 밝힌다. 사울진의 눈에 밧줄에 묶여, 말에 타고
있는 라단이 보인다.
사울진은 말을 앞으로 달려가며 외친다. “뭐 하는 짓
이야. 내 아들을 풀어줘.”
카야가 화살을 들어, 사울진 발 앞으로 날린다. 달리
던 말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움찔하며 멈춘다.
수아가 소리친다. “그곳이상 넘어오지 마. 그렇다면,
당신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도 죽을 테니.”
사울진이 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외친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내 아들을 내놔.”
“당신이야 말로 뭐 하는 건대. 이런 의미 없는 전쟁을
시작한 건 당신이야.”
“너네들이지. 애초부터 너는 왕이 될지가 아니었어야
했고, 이 마을을 떠난 너희들은 다시 돌아오지 말았어
야 해.”
“내가 왕이 되었든, 라단이 왕이 되었든, 상관없이 우
리는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었어. 모두 당신의 욕심 때
문에 벌어진 일이야.”
“그래서, 이 자리에서 나도 내 아들도 죽이겠다고?“
“당신만 남고 병사들을 모두 돌려보내.”
사울진의 말이 무엇 때문인지, 앞발을 들어 올리며, 날
뛰기 시작하자, 멀리서 사울진과, 그들을 바라보던, 윤
다가 손을 들어 올리자, 병사들이 화살을 준비한다.
사울진이,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움직이다가, 말에서
떨어진다. 이를 본 윤다가 손을 내리자 병사들이 화살
을 일제히 날린다. 윤다는 웃날이 무슨 일이 있어도 사
울진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었다.
화살이 날라 가는 것을 보고, 사울진이 소리친다.
“안돼. 안돼. 멈춰. 라단이 있다고.”
수아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 사울진 병사들이 날린
화살을 막아내고, 카야가 달려 나가, 라단 앞도 막아낸
다.
수아가 다시 소리친다. “당신만 남고 모두들 돌려보내.
다음에 날리는 화살엔 당신의 아들을 지켜 주지 않을
거야.”
사울진이 진정된 말에 올라타 그의 진영으로 돌아가
윤다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화살을 날려?”라
고 소리를 지른다.
“저는 사울진님을 보호하려고.”
“저기. 저기에 내 아들이 있어. 너희들의 왕. 내가 아니
라, 왕을 보호해야지.”
그렇게 그들은 전쟁을 멈추지도, 그렇다고 서로 칼도
빼들지 못한 채, 거리를 두고 마주 서서는 밤을 지새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