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일상에서 찾아보기
아이의 키가 100센티미터를 넘었다. 나란히 서면, 허리를 넘어선 내 신체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다음 달에 세돌을 맞이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얼굴은 아직 앳띄지만, 영유아를 넘어 어린이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10년 뒤 중학생이 되면 얼마나 더 자라 있을지 궁금해진다. 키가 큰 만큼 대화가 될 정도로 말을 곧잘 한다.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없어도 "물, 우유 먹고 싶어요", "쉬야하고 싶어요", "이거 할아버지가 사준 건데", "햇님이랑 아빠랑 자고 있으니 우리도 자야지", "우리 저기 가봤잖아요" 등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며칠 전 봤던 사물과 장소에 대한 기억도 곧잘 말로 잘 표현하기 시작했다. 심부름도 시키면 정확히 수행해온다.
2년 전 아이의 모습, 불과 반년 전의 모습이 포토 어플 통해 알림이 온다.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과거의 모습이나 그가 행동했던 일지들을 읽으며 오늘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 컸었는지 비교하게 된다. 작년에 입었던 옷과 신발들은 입을 수 없을 만큼 한 뺨 더 자랐고, 브랜드 상관없이 어느 흰 우유를 잘 먹게 되고, 주스부터 시작하여 아이스크림, 초콜릿, 젤리, 사탕 등 여러 간식들을 탐하고 먹을 수 있는 시점이 오기 시작했다. 이어 김치, 깍두기, 단무지까지... 어른 음식의 절반은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오니 외출 시 아이만을 위한 준비물 가방의 부피는 점점 줄어들었다. 곧 기저귀도 뗄 거니깐.
반면 정작 나 자신은 나의 과거의 모습을 비교하며 성장했는지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스무 살 이후 몸의 무게만 오락가락 변수가 있으나 입는 옷의 치수는 그대로다. 5년 전에 입은 겨울옷은 지금 꺼내 입어도 이상이 없고 재작년에 산 샌들도 스크래치가 많을 뿐 내 발 사이즈에 꼭 맞다. 변치 않고. 나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마음은 어떨까. 속마음을 들여보려면 예전에 썼던 일기장을 들춰야 하는데, 2008년 블로그에 쓴 일기장을 보면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적혀있다. 그때는 너무나 심각하고 괴로운 일이었는데, 심적으로 성숙하고 많은 일을 겪은 30대 중반이 되다 보니 별일 아닌 20대의 치기 어린 불평같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내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면 아이의 모습에만 집중하여 타인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간혹 아이가 제 시기에 발달하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또래 아이들의 습성 등을 알기 위해 물을 경우가 있지만), 나는 타인의 행동과 기록에 의존적일 때가 있지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한때 싸이월드로 각자의 미니홈피가 있을 무렵, 나의 미니홈피를 열심히 꾸몄지만 궁금했던 대상들의 미니홈피에서 시간을 보내는 적도 많았다.
"창문 밖에서 지켜보는 거 같아."
엄마는 늘 그런 표현으로 내가 담장에서 남의 생활을 보는 것 같다고 그러셨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타인의 온라인 채널에서 그들의 생활을 관찰할 매체가 많아졌다. 점점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바라볼 창(窓) 들이 많아졌다. 그 많은 창들을 통해 우리는 비교해야 할 대상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들의 소원, 성공이 내 성취인 마냥 기쁘고 뿌듯했다. 내게 주어지는 물리적인 가치가 없더라도, 내가 응원한 만큼 정말 좋은 에너지가 발산했으니깐.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게 얼마나 큰 에너지가 필요한지 알고 있으니.
내가 내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리추얼 시간이 많아지자 그 응원을 내게 쏟기 시작했고, '내가 하고 싶은 목표'보다 '내가 하루 중에 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편적으로 기상 후 예쁜 찻잔을 꺼내서 차를 마시기, 노트에 손글씨로 일기를 쓰기, 하루 안에 책 1권을 완독 하지 말고 한 챕터만 읽어보기, 불어3문장 만 써보기 등 최소 10분에서 30분 걸리는 행위들이었다. 24시간 중 30분만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없을까... 8시간 근무하고 총 2~3시간 출퇴근과 등 하원 시간을 빼면.. 아이를 위한 저녁 준비, 목욕시간 등 꼭 해야 할 시간들을 빼면 작게라도 나를 위한 몫을 남겨두고 싶었다.
굳이 내 양손이 자유로워지는 시간을 꼽는다면,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간단히 하고 쓰고 싶었던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점심하고 싶은 동료들을 찾거나.. 그 시간이 나를 제대로 서게 만들어주었다. 무엇을 할 수 있든 내가 주체적인 태도를 일관하다면, 내가 해야 할 임무는 내가 가진 시간들의 수면 위의 문제일 뿐 본질적인 나를 만드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
지난 6월은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큰 달이었다. 지난 4월부터 차근차근히 가 아닌.. 일직선의 그래프에서 영점 이하, 바닥 아래로 떨어지면서 남아있는 체력과 에너지가 모두 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왜 이리 힘들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침 리추얼도 열심히 임했고, 회사일도 나름 잘하고 있었던 것 같고.. 출퇴근하며 아이 등 하원을 챙기며 잘 보살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휴가'도 며칠 내며 기운을 채웠지만 되려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외부의 시간보다 내부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늘리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가능한 나를 다독여주어야 했다. 매일 한쪽씩이라도 책을 읽었는데, 무리하게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 주말을 이용하여 가족들과 이동 중에 짬짬이 책 한 권을 정해서 완독 했다.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내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낯선 기구와 낯선 발가락 양말을 신은 회원들을 보며 어느새 나도 동화되며 따라 하기 어려운 동작들을 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하면 '나'를 이길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른 해보다 '누구와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 목표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의지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매일 지속적으로 연결돼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리추얼은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이죠.”
2021년 1월, 경향신문 토요일판에 실린 나의 인터뷰 중 발췌
사소한 행동이 나를 바꿨다. '해내야 할 목표가 무엇인가'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자문하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비교 대상은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
일주일 전의 나,
한 달 전의 나,
일 년 전의 나일뿐.
그 어느 누구도 나를 타인과 비교할 수 없다.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니.
그 사람에게 각자의 달란트가 있듯.
강점도 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내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자문하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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