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이 '쉼'이다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동네 카페인데, 그 공간에 있어도 마치 일상을 떠나 여행지에 온 기분이 든다. 1대 1 데이트를 좋아하는 내게 각각의 1인 지인들과 여러 차례 이곳에 방문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도시에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꼭 소개를 하는 곳이다. 너무 좋아하는 곳이면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그 좋은 감정이 함께 나누면 배가 될 때도 있으니. 연신 감탄하며 그 공간의 예쁜 모습을 좋아하면 나 또한 그곳을 소개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공간이 아님에도, 그 공간에서 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몇 해 걸쳐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하지만, 지루함이 없다.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똑같은 느낌보다 매번 새로운 공간에 있는 것 같다. 어느 공간은 녹음이 우거진 야외 공간에서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고, 하늘에 비친 구름만 볼 수 있는 창이 나 있는 자리,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은 공간 안의 또 다른 공간, 노트북을 가져와서 잠시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책상과 의자까지.. 어느 자리에 앉든 같은 느낌의 자리가 없다. 어디에 앉든 제각각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준다. 이 카페에 오면 즐기는 라테 대신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아보 커피'를 즐겨마신다. 이 메뉴 외 여러 스페셜 메뉴를 맛볼 수 있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미각을 선사해준다.
같은 곳에 들르지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주는 만큼 그 경험은 이질적이지 않았다. 분명 새로운 경험은 자극적이고 긴장감을 줄 수 있다. 그에 반면 이 공간은 익숙함과 더하여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카페의 이름은 카페비일상. 국어사전의 정확한 정의처럼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아님'을 의미하는 이 이름은 같은 하루를 보냄에도 늘 낯설지만 익숙한 자리를 마련해준다. 주말을 붐빌 것을 예상하여 평일 점심시간이나 평일 반가, 여가를 쓸 때 드나드는데 이 공간에 시간을 보내면서 지친 하루에 에너지를 얻는다.
비일상 (非日常)
[명사]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아님.
출처. 국어사전
분명 여행을 하려면 여행 가기 전 준비물도 필요하고, 여행할 때 날씨 상황도 확인해야 한다. 교통, 음식, 비용까지.. 이 모든 게 여행을 하기 위한 절차이자 해야 할 과제이다. 숙제 같은 숙제를 끝내고 여행길에 오르면 체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여행지에서 탈이 나거나 몸이 편치 않으면,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여러 이유에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생소한 여행지에 대한 긴장감 혹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미 몸이 탈이 났을 수도 있다. 흔히 일상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면 뭔가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서 익숙한 공간, 좋아하는 공간을 정해서 드나들면 새로운 시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경우, 새로운 공간에 대한 자극을 싫어한다. 시간을 들여 찾아갔는데 내가 바라는 상이 아닌 곳일 수도 있고 사람이 너무 붐벼 세세한 공간의 묘미를 못 느끼거나.. 메뉴, 직원들의 태도 등 여러 면에서 나의 오감이 느끼는 것이기에 차라리 새로운 공간에 가는 도전보다 익숙한 공간의 낯섦을 즐기는 편이다. 자주 들렀음에도 누구와 함께 가는지, 매번 가도 또 달리 보이는 것이 있기에... 최근에 들어 앞서 언급한 그 카페가 더 좋아진 것도 어느 누구나 여러 번 들러도 늘 좋은 감정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문과 다른 두세 번째에 느끼는 감정, 이후 들렀던 감정까지 늘 똑같은 마음이 드는 곳은 흔치 않았다.
아이와 자주 가는 동네 그 서점, 회사 앞 돈가스집, 집 근처 또 다른 별다방 지점, 요즘 마음에 들어 여러 차례 들렀던 일본 가정식 식당 등...내가 이 도시에 머물며 좋아하는 공간'들'이 되었다. 열 손가락 이상 좋아하는 공간이 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선택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애정이 분산되니. 불필요한 시간과 공간에 투여하지 말고, 그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기보단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기로.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데 소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타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화로 쏟아내지 말고, 차라리 그 감정을 아껴서 내가 나아가 할 방향에 더 에너지를 쏟기로 말이다.
낯익은 공간은 나의 어떤 이야기든 어떤 차림이든 받아주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네 감정을 받아주고 숨김없는 편안한 관계. 잘 먹이고 좋은 옷을 입혀주는 것보다, 가능한 엄마가 네 편에서 모든 걸 공유할 수 있는 관계. 그래서 아이를 가지면서 고생하더라도 내가 집중적으로 아이를 돌봐야 할 시기를 36개월(1세-4세)로 정한 거 같다. 이때 모든 감정과 일상을 나눌 수 없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아이에겐 부모가 가장 첫 번째로 만나는 어른이다보니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모자란 자식을 만든다. 부모 곁은 떠나 독립해도 제대로 독립할 수 없는... 돌아보니 돌보다 두 돌이 아이에게 엄마에게 더 중요한 시기였다. 돌잔치보다 두 돌 잔치가 더 필요한..!!
가끔 아이를 나도 모르게 동등한 위치에서 선택권을 주려고 할 때도 있다. 판단은 아이가 해야 하니깐. 친정 엄마는 아이가 어린데 내가 다 큰 어른 마냥 대한다고 할 때가 있는데.. 엄마가 하는 방법이 옳다는 게 아니라.. 여러 선택지에서 네가 하는 방법이 맞을 수 있고. 틀리더라도 네 고집을 꺾을 수 없으니.. 몸무게 15킬로그램의 신장 100센티가 가까운 이 꼬마에게도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엄마가 권해도 본인이 하고자 하려는 의지. 아이와 자주 들르는 서점에서도 엄마는 아이의 결정권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동화책 대신 로보카폴리의 소방차의 영어 퍼즐을 고르는.. 내 눈에 보이지도 않은 장난감을 쏙 빼서 건넨다..)
아이와 많은 교감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엄마처럼, 일상에서 교감할 수 있는 좋아하는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굳이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가지 않아도 늘 나는 나의 에너지를 잘 비축하며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니깐. 나 자신에게도 나를 더 많이 아끼며 사랑하는 시간이 늘어가길 바라며.. 그 건강한 에너지를 아이에게도 발산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데
소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감정을 아껴서 내가 나아가 할 방향에
더 에너지를 쏟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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