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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Sep 06. 2021

다시 돌아올 일상이 있다는 거

1시간 내내 같은 곳을 닦고 또 닦아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닦아내며 '비효율적인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이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온갖 힘을 쏟아내며 열중하고 있다. 1시간째... 안방의 벽과 문, 바닥, 안방 화장실 문까지.. 온통 형형색색의 알 수 없는 그림 낙서를 지워도 도저히 닦이지 않았다. 주방세재를 가져와서 수세미에 묻히니 그제야 그림 낙서가 그린 벽면에 거품이 생기더니 조금씩 낙서의 모형이 사라지고 깨끗한 벽면이 되었다.


앞서 아이는 귀가 후 목욕 타임을 거쳐 거실과 안방을 휘저으며 놀더니 어느 순간 배시시 웃음소리를 내며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내 뒤통수를 훔쳐보았다. 이후 여러 번 안방 문을 쾅쾅 닫았다. 문을 닫는 소리에 혼자 안방에서 여러 장난감을 가져와서 노는 줄 알고 있었다.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은 설거지인데, 큰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으로 주방을 나서 안방 문을 열려고 하니 뭔가 느낌이 싸했다. 아이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띄며 거실 바닥에 누워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안방 문을 열어보니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릴 뻔했다... 머릿속이 하얗다는 표현이 절로 생각났다. 엉엉 주저 않아 울고 싶어 졌다. 지난 주중의 여름휴가 후 오래간만의 출근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던 오늘이었다. 하원 후 텐션이 높은 아이를 데리고 저녁을 먹이고 장을 본 후 피로한 몸을 이끌고 귀가했다. 이후 바로 밀린 설거지와 청소에 나섰는데 불구하고.. 아이는 일을 저질렀다.  


예정된 시간이라면 오후 10시가 갓 넘은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하루를 돌아보며 글을 쓰는 시간인데 그 시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슬픔이 눈앞을 가렸다.


'약 올리기 선수인가.'


 아파서 낳은 자식이다만, 이런 순간은.. 정말이지 너무나 밉고 싫어진다. 엄마를 도와주지 못한 망정 일감을 던져주고 다른 방으로 도망가며 웃어대는 아이를 보자니... 억장이 무너졌다. 1시간가량 낙서한 벽과 , 바닥 등과 씨름하고 나니 1시간이  지나가버렸다. 글을   있는 시간은 고작 30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문장들을 모아 오늘의 하루를 기록해본다.


설거지 후 오늘 집안일을 잘 끝냈다는 안도감으로 안방을 들어오니 아이는 내게 이렇게 일감을 준다


온전히 내 감정을 묻는 여행길 vs

매일 주어진 시간몫을 완수하는 일상


여행을 떠나 다시 돌아온 일상의 집에서 아이는 자신의 갖고 놀 장난감이 많아서인지 집을 반기는 모양새다. 그에 반면 나의 경우 집은 휴식의 공간이면서도 또 하나의 일을 해야 하는 장소이다. 적절히 청소하고 적절하게 쉬고 싶은데 그 밸런스를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육아를 하기 시작한부터 집의 모양새는 나의 바람과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드는 아이가 있어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휴식 공간이 아니라 피로를 더하는 공간이 되었다.


어찌 보면 여행 자체가 좋았던 것은 앞서 글에서 밝힌 "빨래나 설거지에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것, 집안일을 뒤로하고 여행지의 일정에만 신경을 써도 되는 것 등 소소한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까지 여행은 내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의 기분만 생각해도 되는 여행길에 집안일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상태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여행길과 다른 일상은 내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몫을 우선시하기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여행이 좋은 건 숨은 우리의 감정을 모두 노출해도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행을 나선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혹은 '당신의 소속은 어디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온전히 여행에 대한 감정을 묻는다. '오늘 다녀간 곳 중 어디가 좋았어요?, 어디 가고 싶어요?' 등 여행길에 있는 상대의 감정을 묻는 게 대다수다.


그렇기에 보다 더 솔직하게 감정을 노출할 수 있고, 그 감정이 머리를 지배하기도 한다. 아무도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여행길에 오로지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팍팍한 일상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살만한 가치를 찾는 일이긴 하다.


그와 상이하게 여행을 다녀와서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과 동시에 등원 길을 오르며 숨 가쁜 아침시간을 보냈다. 양손에 낮잠이불 가방, 어린이집 가방, 출근 가방, 노트북 가방까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며 '내가 왜 이 짓을 하는 걸까' 탄식하며, 혼자 마음이 조급한 채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카시트에 태우고 차 시동을 걸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숨을 돌리며 내 자리를 살펴보니 감사했다. 다시 돌아올 자리가 있어서.


비록 여행의 순간들을 매일 느끼지 못하더라도,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어 긴장하며 살지만 1년 전의 시간보다 지금의 일상이 더 좋은 건.. 매일 아침 나를 돌아보거나 자기 전 나를 돌아보는 리추얼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과 뇌가 말랑거리는 시간.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보다도 촘촘하고 밀도 높은 감성이 깃든 시간이다. 여행길에선 느낄 수 없는 리추얼 시간을 일상에서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이가 벌려놓은 일도 이 시간을 통해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다독거린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3박 4일의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시간, 모닝리추얼. 평소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 나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여서.


소네가 고른 9월의 신간 2권
 


소네가 고른 9월의 매거진 3권

휴가 전 주문했던 책과 잡지들이 사무실에 도착했다.남은 9월의 시간을 이 책들로..오른쪽은 친분있는 저자분들의 신간들, 왼쪽은 매거진 B의 코펜하겐 편, 어라운드•디렉터리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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