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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Feb 12. 2018

화가들의 무덤 여행자

전공자도 아닌데 어쩌다 미술을 깊이 좋아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설명을 하려면 먼저 영화 '비포 선라이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울, 기쁨, 무기력, 활력, 졸음, 흥분 등 모든 느낌이 과잉으로 흘러넘쳤던 사춘기 여고생 시절에 보았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

수액 주사를 맞듯 영화의 한 씬 한 씬을 고스란히 흡수했고, 이 영화는 스무살 전후 내 취향과 정서의 근간을 이뤘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에 들러 죽음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장면 역시 뇌리에 강력하게 남았다. '여행지에서 공동묘지 찾아가기'는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2005년 첫 유럽 여행 목적지는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을 보기 위해 찾아간 작은 시골 마을. 동네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동묘지에 자리한 화가의 묘는 소박했다. 빈센트는 혼자가 아니었다. 동생 테오와 함께 묻혀 있었다. 둘의 무덤은 담쟁이 이불로 덮여 있어 꼭 하나의 무덤처럼 보이기도 했다. 묘비에 적힌 형제의 사망년도 1890, 1891. 테오는 형의 자살에 극심한 충격을 받고 불과 6개월 뒤 사망했다.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 2005년


무덤 근처엔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남긴 꽃다발, 화분, 쪽지, 손편지가 있었다. 낯선 언어로 적혀 있었지만 삐뚤빼뚤한 손글씨에서 애틋함이 전해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이 갑자기 쏟아졌다. 격정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폭발적 감정. 한바탕 소용돌이가 휩쓸고 난 뒤, 내가 고흐의 일생에 깊이 감정이입을 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사람들은 반 고흐가 자기 귀를 자른 사실은 알지만, 그가 독학으로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가슴팍에 권총을 쏜 건 기억하지만, 그림 그린 기간이 고작 10년 남짓이며 이 기간에 유화 860여 점, 습작 1100여 점을 남겼다는 건 잘 모른다.

이 놀라운 창작력의 밑바탕을 들여다보면 단 한 사람의 이해와 공감과 만난다. 동생 테오다. 세상이 냉담한 반응을 보일 때조차 빈센트의 재능을 온전히 신뢰하며 생활비와 물감비를 보내주었던 유일한 사람.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었다. 테오는 빈센트가 생전에 쓴 편지 600여 통의 수신인이기도 하다. 성취부터 치부까지 검열 없이 드러내고 나누었다. 지독하게 불안정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던 빈센트가 그럼에도 자기 예술 세계를 이룰 수 있었던 건 테오라는 버팀목 덕분이었다.


반 고흐 형제가 나란히 누운 무덤에 가서야 그간 나를 흔들었던 끌림의 진짜 이유가 테오였단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이해할 거야'라는 의지를 가진 사람, 나를 알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는 삶을 계속 살아낼 힘을 얻는다. 쓰레기를 치우는 미화원 아저씨도, 얄미웠던 친구도, 버스 옆자리에 앉은 이름 모를 행인도, 알고 보면 누군가의 생을 버티게 하는 단 한 사람일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나는 ‘마음과 마음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마주치는 눈길'이라는 김승옥 소설 속 구절을 '주기도문'처럼 신봉했고, 비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농밀한 대화에서 '은혜' 받았으며, 낯가리기 바빴던 지난 날과 달리 처음 본 타인을 예전만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가 나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단 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이해와 공감을 갈구해왔던 내 마음의 허기를 알아채고 그걸 맹렬히 채우는 쪽으로 삶의 방향성을 바꾼 것이다. '편애하는 화가의 무덤을 직접 보러가면 아무튼 좋은 일이 벌어진다'는 믿음은 이때부터 생겼다.



프랑스 지베르니, 클로드 모네의 무덤, 2014년


노르웨이 오슬로, 에드바르 뭉크의 무덤, 2016년


덴마크 코펜하겐, 빌헬름 하메르쇠이의 무덤이 있는 VESTE KIRKEGAARD, 2015년


덴마크 스카겐, P.S.크뢰이어의 무덤, 2017년



프랑스 파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무덤, 2015년


스웨덴 모라, 앤더스 소른의 무덤, 2016년


덴마크 스카겐, 안나 앙케 & 미카엘 앙케 부부의 무덤, 2017년


프랑스 파리, 마리 로랑생의 무덤, 2015년



'비포 선라이즈'에서 줄리 델피가 한 무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덤이야. 13세에 죽은 아이 무덤이지. 처음 여기 왔을 때 나도 열세 살이었어. 10년이 지났는데도 이 아이는 아직 열세 살이야." 생몰연도가 적힌 묘비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태어남과 죽음, 나타남과 사라짐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바깥세상의 소음과 번잡함이 차단된 추모 공원의 분위기 역시 생각을 풀어나가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무덤을 부러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원작에는 그 그림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는 침묵과 고요함이 있다. 심지어 벽에 걸린 복제물도 이 점에서는 원작을 따라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원작이 지닌 침묵과 고요함이라는 것은 실제 물질 즉 물감에 스며 있어서, 보는 이는 그 물질성을 통해 화가의 몸짓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시점과 누군가 그 그림을 바라보는 시점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난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중

인터넷에서 얼마든 고화질 명화 이미지를 찾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굳이 원작을 보러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원작만이 보여주는 아우라가 있어서다. 존 버거는 아우라가 '물감'이라는 물질에 스며있는 침묵, 고요함, 화가의 몸짓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미술관 원작 앞에서 붓의 흔적을 보며 화가의 몸짓을 가만히 읽어내고 그의 시점을 상상해보는 시간은 굉장한 정신의 고양을 일으키는데, 나는 비슷한 기분을 더 농밀하게 화가의 육체가 누워있는 무덤에서 느끼곤 한다.


미술관에서는 소장 작품의 방대함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을 그저 표면적 이미지로만 대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빠르게 이미지 스캔만 하고 빠져나가는 것.

화가의 무덤에선 방대한 이미지 세계 안에 살던 존재가 현실로 소환된다. 내가 좋아하고 감동한 그림이 단순히 아름다운 허깨비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이 땅에 살았던 누군가가 물감을 짜고 붓을 쥐고 팔을 놀려 그려낸 단단한 물질임을 느끼게 한다. 이쪽 편 역시 두 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세계. 화가의 몸과 내 몸이 만날 때만 느껴지는 단단하고 황홀한 합일.


나에게 화가의 무덤을 찾는 일은 그들을 힘껏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며, 이 노력은 언제나 충분히 보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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