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유리 소녀>
to 에디터C
스물두 살 여대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우 관계가 좋지 않았고,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은따를 당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제가 큰 머리와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열등감의 원인이 외모 탓으로 여겨질 때가 많았습니다. 더 예쁘게 태어났다면 친구도 많고 자존감도 높지 않았을까요? '나는 왜 잘 할 줄 아는 것, 매력적인 것 하나 없이 태어났을까'라는 자학을 오랫동안 해오다가 요즘은 자존감에 대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작은 말에 쉽게 상처를 받고 결심이 흔들립니다. 모임에서 누군가가 다른 친구의 외모를 칭찬하면 저를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주눅이 들고요. 길 가던 남자들이 절 슬쩍 쳐다보면 '못 생겼다'고 수군대는 것만 같아서 괴롭습니다. 이렇게 작디 작은 순간에도 흔들리는 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중에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라는 곡이 있습니다. 멜로디도 흥겹고 귀에 쏙 들어오지만 무엇보다 이 노래의 백미는 가사입니다.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참 잘났을 뿐인데
내가 울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웃고 있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웃고 있는 내 입꼬리가 땡기네
나는 어떡하나 어떡해
흔히 가장 어리석은 상처가 남이 나를 향해 쏘지 않은 화살인데 그것을 굳이 주워다가 자기 스스로 가슴에 푹 찔러넣는 상처라고 말합니다. 알면서도 상처를 받고 마는 미묘하고도 껄쩍지근한 상황을 탁월하게 담아낸 가사라 들을 때마다 그 섬세함에 감탄합니다.
나를 보고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주눅 들고 상처받는 이유는 스스로 미흡하다고 여기는 자격지심 때문일 겁니다. 고민을 보낸 독자의 경우는 외모가 아킬레스건이니 그 언저리만 스치고 지나가도 깜짝 놀라는 것일 테고요.
타인의 작은 말과 행동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건 자기 안에 '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이미 깔려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 같은 건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단계를 거쳐 '지금 저게 싫다는 신호인가?' 이렇게 예민하고 날 선 더듬이로 바뀌어서 매 순간 촉을 세우고 있습니다.
슬프고 역설적인 진리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더듬이는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자기 인식-나 같은 건 좋아하지 않을 거야-을 강화하는 증거만 열심히 수집하는 촉이라는 사실이죠.
자격지심이 가진 또 한 가지 독은 '상상 속에서 문제를 키운다'는 것입니다.
길을 지나가다 당신을 쳐다본 남자는 아무 생각 없이, 어쩌면 당신 뒤쪽에 시선을 끄는 간판이 있어서 그 방향을 바라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의미 없는 시선에 '그가 내 못 생긴 외모를 흉보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독화살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바로 당신이죠.
자격지심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이 무서운 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자신이 가장 상처받을 부위에 조준해 치명타를 날린다는 것.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지은 <유리 소녀> 속 주인공 '지젤'은 몸이 유리로 된 아이입니다. 온몸이 투명하고 매끄럽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름다운 소녀죠. 해가 질 때는 노을빛을 그대로 투영하고, 풀밭에 누우면 신록이 그대로 배어나는 유리로 된 몸을 가졌습니다.
이 신기한 유리 소녀를 보려고 사람들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찾아옵니다. 아이를 위해 특허를 신청해 줄 것인지, 보험은 들어줬는지, 아이가 미아가 되면 어떻게 찾아낼 생각인지 지젤의 엄마에게 유난스럽게 질문을 던집니다. 또 지젤에게는 "너무 아름답구나" "놀라워" 감탄을 연발하며 한 번 만져보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집 밖에 선 줄이 끝을 모르고 이어질 정도로 세상의 관심이 쏟아집니다.
지젤은 문자 그대로 '유리 멘탈'을 가진 소녀이기도 합니다. 순간순간 하고 있는 생각이 허공의 풍선처럼 투명한 머릿속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지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지젤이 커가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유리 소녀에게도 성장통이라는 것이 있고, 삶이란 건 쉽지 않았습니다. 매 순간 좋은 생각만 하며 살 순 없는 게 당연한데도 사람들은 지젤이 어두운 생각을 할 때마다
"그런 나쁜 생각은 좀 참고 견딜 수 없니?"
"지젤, 그런 끔찍한 것들을 드러내 보이다니 부끄럽지도 않니?"
라고 비난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따돌림도 시작되었지요. 지젤에게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기 위해 문밖에 길게 줄을 늘어섰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림책 <유리 소녀>에서 지젤은 진실을 은유합니다.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 두려워서 차라리 진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죠. 타인의 밝고 매력적인 면과 어둡고 불편한 면까지 모두 편견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려 하죠.
우리가 타인에게 보내는 평가의 시선은 이토록 불완전하고 자의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아름답다고 칭찬을 했다가도 변덕을 부려 이제는 미움의 대상으로 만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다면 '아, 이게 상처가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순간,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상처 주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의 평가는 존중할 만한가? 그가 내키는 대로 말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인가?
이 생각의 거름막이 있다면 최소한 길 가던 무명 씨의 시선에서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 가사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테고, 그건 자신 안의 자격지심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당신 혼자가 아니란 뜻이기도 합니다. 부디 '나만 왜 이럴까'라는 독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지 마시길.
이 글에서 소개한 그림책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유리 소녀> http://goo.gl/8g02mW
글을 쓴 최혜진은
10년간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크고 작은 인터뷰로 각기 다른 결을 지닌 1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 10년 차가 되던 해에 유럽으로 날아가 3년 동안 살며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명화가 내게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썼고, 현재는 <볼드저널>의 콘텐츠디렉터로 일한다. 그림책이라는 놀라운 예술 장르에 매료된 자발적 마감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