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좌충우돌, 뒤죽박죽한 세계가 주는 재미와 위안
벵자맹 쇼를 처음 만난 2015년, 나는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 자주 되뇌었다.
“멋진 도시를 보려고 8km를 가느니, 한 사람의 현인과 이야기하기 위해 160km를 가는 편이 낫다.”
당시 나는 벨기에에 거주하며 한국의 월간 여성지에 ‘유럽 그림책 작가의 창의력 레슨’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이유로, 아무도 의뢰하지 않았는데, 혼자 연재 기획안을 작성해 얻어낸 지면이었다.
매달 한 명의 작가를 섭외해 1:1로 인터뷰할 수 있다는 흥분과 설렘도 분명 있었지만, 기획 단계부터 원고 작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내내 나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불어가 유창하지도 않은데, 내 실력으로 인터뷰를 해도 될까?’, ‘불어로 인터뷰 하다 괜히 망신당하는 것 아닐까?’, '나는 아동문학 전문가도 아니고 일러스트레이터도 아니고 평론을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깊고 풍부한 예술 세계를 가진 창작자에 대한 글을 쓸 자격이 될까?’, ‘그림책 업계의 진짜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어설프고 빈틈 많은 글 아닐까?’ 등등 하루에도 몇 번씩 자격과 실력을 따져 묻는 내면의 비평가가 등장했다.
사실 누군가 ‘너무 섣불리 일을 벌인 것 아니니?’라고 물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그림책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서울에서 월간 패션지 에디터로 숨 가쁘게 살던 내게 만약 누군가 그림책을 권한다면 ‘그림책은 애들 보는 거 아냐?’라고 대꾸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무지했던 사람이 2013년 어느 날, 우연히 인생 그림책을 발견하고 걸신들린 사람처럼 그림책을 탐닉하다가 애호가 경력 2년 반 만에 유럽 그림책 작가 인터뷰 연재를 해보겠다고 덤빈 것이었다.
매체에서 먼저 의뢰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줄게’ 같은 약속을 해주는 이도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일을 벌였다는 사실만 떼어놓고 보면 100% 자기 확신에 휩싸여 엄청난 추진력을 뿜어내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 나는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에 멈칫거리고 주저하는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영혼에 깊게 새겨진 완벽주의의 흔적이었다.
‘진짜 네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검열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직접 붓글씨를 써서 거실 벽에 붙여놓았던 가훈이 떠올랐다. <건강한 신체 / 화목한 가족 / 완벽한 준비>.
준비란 모름지기 완벽해야 한다고 배운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마감 일정, 준비사항, To Do List를 두 번 세 번 점검해야 겨우 안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종일 정해진 시간표대로 정해진 수업을 받고 오지선다형 중 정답 하나만 고르는 시험을 준비하는 학창 시절에는 ‘완벽한 준비’가 어느 정도 통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어디까지가 준비 단계이고 어디서부터를 준비 완료 시점으로 정해야 할지조차 가늠되지 않는 일이 수두룩했다.
특히 글쓰기가 그랬다. ‘이 정도면 준비가 끝난 걸까?’라고 되물으면 언제나 답은 아니었다. 바깥에는 나보다 지식을 쌓은 사람이 발에 차이게 많고, 나보다 유능한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으며, 결정적으로 나보다 문장력이 좋고 사유가 싶은 사람은 좌절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자유기고가로 인터뷰 연재를 진행하던 당시의 나는 월급쟁이로서의 자아를 벗고 작가로서의 자아를 막 만들어가는 출발점에 있었고, 내면의 비평가에게 지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시기에 벵자맹 쇼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큰 행운 중 하나다.
벵자맹 쇼의 존재를 일러준 사람은 프랑스 그림책 작가 조엘 졸리베였다. ‘유럽 그림책 작가의 창의력 레슨’ 인터뷰 연재의 첫 인터뷰이였던 그녀는 눈여겨보는 후배 그림책 작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 벵자맹에 대해 귀띔해주었다. “프랑스 남부 알프스 산맥 근처에 사는 벵자맹 쇼라는 작가가 있어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늘 자료조사를 많이 하고 눈으로 본 것을 손으로 옮기는데, 벵자맹은 참고 자료를 전혀 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와 《곰의 노래》《아기 곰의 여행》《왜 숙제를 못했냐면요》《아듀, 쇼셰트》 등 벵자맹 쇼의 대표작을 찾아보고 곧장 인터뷰이 후보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정형화되지 않은 고불고불한 선으로 오페라하우스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거대하고 복잡한 도심 풍경, 물 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파 등을 표현한 벵자맹의 그림체에 완전히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브뤼셀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5시간 넘게 달려 알프스 산맥 인근의 작은 도시 디Die에 도착했다.
기차역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벵자맹은 “저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기자는 당신이 처음이에요. 파리에서 너무 멀리 사니까 프랑스 기자들도 보통 이메일 인터뷰만 하거든요”라는 말로 이동의 수고를 잊게 해 주었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작업 공간 구석구석은 물론 아이디어 구상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단골 카페, 가족의 생활공간까지 모두 열어 보이며 작가로서 본인이 겪었던 시행착오는 물론 창작하는 자세와 신념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벵자맹 쇼의 대표작 ‘아기곰 시리즈’ 4권-《곰의 노래》《아기 곰의 여행》《아기 곰과 서커스》《아기 곰의 가출》-부터 최신작인 ‘세상에서 가장 꼬리가 긴 마르쉬 시리즈’ 3권-《새로운 보금자리》《신나는 정글 학교》《뜻밖의 도시 탐험》-까지,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 몇 개가 있다.
바로 북적북적, 좌충우돌, 뒤죽박죽이다. 일차적으로는 벵자맹 쇼 특유의 밀도 높고 자유분방한 그림체 때문에 갖게 되는 인상이지만,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제스처, 성격, 몸짓 역시 정돈된 쪽보다는 어수선한 쪽에 가깝다. 우스꽝스럽게 두 팔을 활짝 들고 헐레벌떡 뛰어다니거나(《곰의 노래》), 어딘가에 엉켜서 스탭이 꼬이거나(《내 인생 최악의 생일》),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놓치거나(《새로운 보금자리》),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결정을 번복한다(《아듀, 쇼세트》).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세계 안에서 좌충우돌한다.
“요가를 배우러 가면 마지막에 차분하게 누워서 머리를 비우라고, 아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도저히 안 돼요. 어떤 버튼을 눌러야 생각이 꺼지는지 모르겠어요. 요가 매트 위에 누워 있으면 별별 생각이 다 나요. 어떻게 머리를 비울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지금도 제 머릿속에서는 4권의 그림책 구상이 동시에 돌아가거든요. 이 책 생각했다 저 책 생각했다 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작업하는 방법을 몰라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필요해요. 덕분에 일을 언제나 너무 많이 받아서 하는 경향이 있긴 해요. 보통 1년에 6권의 그림책을 그리고, (2015년 기준으로) 지금까지 70권 정도 책을 만들었으니까요.”
인터뷰 중 벵자맹이 요가 매트 위에서 명상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했을 때, 나는 폭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렇게 작가가 작품과 이렇게 꼭 닮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 생각이 서로 꼬이고, 엉망이 되고, 어수선하게 우왕좌왕하면서 출구를 찾아내는 여정. 나에겐 이것이 벵자맹 쇼의 그림책 창작 과정, 그리고 그의 작품에 담긴 세계관에 대한 은유로 다가왔다.
“그림을 그릴 땐 늘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럼에도 일단 계속해나가는 거예요. 처음에는 찾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다가 결국 아이디어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 이 일의 매력이자 재미인 것 같아요. 미지의 것이 이해 가능한 것으로 바뀌어갈 때의 재미, 배우는 재미, 알아가는 재미, 놀라는 재미,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을 그려낼 때의 재미 말이에요. 흰 종이를 마주하고 막막해하면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질문하는 거죠. 저는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보는 걸 좋아해요.”
이렇게 불확실함 속으로 온전히 뛰어든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목표를 이뤄내지 못할 가능성,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 실패할 가능성을 끌어안는다는 의미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벵자맹은 창의성에 대해 오해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본인의 청소년기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창작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않고, 완벽해지려 하지 않고, 결점을 감추기보다는 결점과 함께 일하는 것이에요. 청소년기에 저는 제 그림에 전혀 만족하지 못했어요.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어 했죠. 저는 연필로 빠르게 그리는 걸 잘하는데도 사진처럼 정교한 그림을 동경했어요. 실수나 약점, 인간적 면모는 보이지 않는 그림을 원했죠. 제 눈은 늘 완벽한 그림을 향해 있었어요. 그건 아주 나쁜 습관이었죠.”
이제 벵자맹은 그림을 완벽하게 잘 그리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이 완벽한 그림보다 소중하다. 그림을 못 그려도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 좋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책이 그렇듯 좋은 대화 역시 그 안에 푹 빠져 온 몸을 적시고 나올 수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책 《정희진처럼 읽기》 속 문장 “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에 빗대어 보면 대화가 일어나기 전의 내가 있고 일어난 후의 내가 있다.
벵자맹 쇼를 만나고 자문하게 됐다. 과연 창작에 있어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존재할까? 어쩌면 창작이라는 것은 준비하는 과정이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한번 해보면서 깨닫게 된 무언가를 다음 작업에 반영시키고, 또 해보고, 또 반영시키면서 겨우 한 발짝씩 나아가는 과정이 곧 창작 아닐까?
이것을 ‘벵자맹 효과’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프랑스 소도시 디Die에서 그와 보낸 시간 이후 나는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게 됐다. 일단 저지르는 삶을 살아보자고, 결론을 모른 채로 뛰어들자고, 좌충우돌하면서 헐레벌떡 뛰어다녀보자고, 언제까지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삶이 연극처럼 드라마틱하지 않기에 다짐했다고 곧장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수학 시간에 쓰던 각도기로 보자면 25도에서 30도로 넘어가기로 한 결정 정도의 의미. 하지만 처음에 작아 보였던 5도만큼의 다짐은 시간이 흐르며 차이를 만들어냈다. 각도기 중앙에 있을 땐 고만고만해 보이는 선들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며 서로의 사이를 벌려가듯.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4권의 책을 썼다. 내면의 비평가는 여전히 내 안에 있지만, 그에게 지지 않는 법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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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벵자맹 쇼가 초대 작가로 내한한 '2019년 삼척 그림책 축제' 자료집에 실린 원고의 초고입니다. 최종 게재본과 다릅니다. 사진은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 실리지 않은 B컷으로 모두 신창용 사진가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정정합니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185p 책 '왜 지각을 했냐면요'의 소개글 중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기도 하다'는 문장은 취재 과정에서 취재 과정에서 두 작품 사이 유사성을 언급한 기사를 읽고 혼동해 들어간 문장입니다. 벵자맹 쇼 작가님은 존 버닝햄의 해당 작품을 읽지 않았다고 하여 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