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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Oct 05. 2015

[그림책 처방] 친구가 없어요 1

올리버 제퍼스 <이 사슴은 내 거야> 


to 에디터C

저를 먼저 찾아주는 친구가 없어요 


사십 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일도 하고 애들도 다 키워놓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고민은 언제나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친구가 없다는 것이죠. 제 의견을 내세워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에 인색해 얻어 먹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가 거의 내는 편입니다. 만나면 상대방에 항상 맞추는 편이고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도 잘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항상 친구가 없어요. 

저한테 뭘  같이 하자거나, 고민을 먼저 털어놓거나, 먼저 만나자고 청하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먼저 어디 같이 가자, 같이 무얼 하자 제안도 해보는데, 그러면 늘 피하는 게 보입니다. 늘 제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서 "잘 있어? 만날래?" 이렇게 해야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들이 있어서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유대감이 있어 보이는데, 저는 그 흔한 모임도 없고 어릴 때부터 이어진 친구 관계도 하나 없습니다. 


제가  타인에 대한 배려도 많이 하고, 때가 되면  선물도 잘 챙기거든요. 그런데도 왜 저는 친구가 없을까요. 사회 생활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먼저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보고 싶다고 제가 먼저 친구에게 연락하면  그때뿐입니다. 그러니 늘 돈만 쓰고 마음만 다칩니다. 가끔씩은 속이 상해서 '다시는 먼저 연락하지 말아야지' 결심하다가도 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제가 먼저 연락을 합니다. 저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가는 그런 친구요. 





어떤 영혼의 소유자십니까 


이번 고민을 듣고 글을 쓰기까지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며 행간에 녹아있는 생각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랬던 이유는 메일이 상당히 길고 구체적이었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많이 담겨 있지 않아서였습니다. 상대방에게 잘 맞추고, 돈에 인색한 것도 아니고, 선물도 잘 챙기고, 배려심도 있다고 설명하셨기에, '아니... 이런 성격을 가진 분이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우리는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합니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친해진다는 뜻이죠. 이와 비슷하게 키케로는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우정은 찬란한 미덕이 빛을 내뿜고, 유사한 성질의 영혼이 애착심을 느낄 때 맺어지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안광복 저, 《도서관 옆 철학카페》에서 재인용) 


'유사한 성질의 영혼이 애착심을 느끼는 것이 우정이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우정이 성립되려면 서로의 영혼을 내보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 아닐까요. 그래야 유사한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을 할 테니까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잘 맞춰준다고 해서 진정한 친구가 생기진 않는 법입니다. 친구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남 앞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열어보인 적이 있는지, 오히려 '이 사람과 친해지리라'는 무리한 마음으로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행동들을 하진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은 목숨을 건 도약 


이번 고민을 곱씹으며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건 '공평함'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독자분의 고민 속에서 가장 강렬히 느껴진 감정이 억울함이었거든요. 나는 이만큼 했는데, 상대방은 나에게 그만큼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받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특히 "왜 나만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느냐!" 속상해하는 것 같았죠. '늘 돈만 쓰고 마음만 다친다'는 표현에선 투자한 만큼 돌아와야 한다는 전제를 읽을 수도 있었고요. 


공평함과 우정, 더 나아가 사랑의 관계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공평한 사랑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내가 100만큼 너를 사랑하면, 그가 나를 100만큼 반드시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게 있을까요? 사랑이 그토록 복잡 미묘하고 어려운 이유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네가 나를 사랑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미 공평하지 않은 출발입니다. 이것을 두고 키에르케고르는 "사랑은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날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난 너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겠다' 다짐하는 게 사랑이며, 그건 상처를 감수하겠다는 용기이자 목숨을 건 도약과 마찬가지로 결연한 일이라는 설명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당연하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우주적인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엄청난 사건이자 이벤트, 감사해야 할 축복입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듯 값을 치르면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죠.   



'친구라면 이래야지'의 함정 


여러분은 왜 친구를 사귀시나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다듬었던 요 며칠, 저 또한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계속하게 되더군요. '내가 왜 A랑 친구를 하는 걸까?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B와 나는 친구인가?'... 이렇게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도 제가 먼저 연락해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요. 얄밉다는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지만, 늘 '보니까 좋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네가 연락을 자주 안 해도 괜찮아. 그래도 네가 좋더라.'하는 마음이 제 안에 있었다는 의미죠.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친구라면 적어도 몇 달에 한 번은 봐야 한다, 친구라면 모든 속내를 다 털어놔야 한다, 친구라면 연락을 먼저 해줘야 한다, 친구라면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이 오히려 진정한 우정을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이번 주제에 대해선 두 권의 책을 함께 소개하려 합니다. 오늘은 먼저 큰 책 올리버 제퍼스의 《이 사슴은 내 거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느 날, 주인공 '윌프레드'에게 사슴이 다가옵니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사슴은 아니었지만, 소년은 그냥 '이 사슴은 내거'라고 생각하며 '마르셀'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착한 반려동물이라면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 사슴에게 설명합니다.  


규칙 4 : 윌프레드가 음악을 들을 때, 시끄럽게 하지 말 것 / 규칙 7 : 윌프레드가 원하는 곳으로 늘 움직일 것 / 규칙 7 : 집에서 너무 멀어지지 말 것 / 규칙 11 : 비가 오면 피난처가 되어 줄 것 / 규칙 16 : 윌프레드 손이 안 닿는 곳에 있는 사과를 따줄 것... 


책의 초반부에는 이렇게 윌프레드가 세워놓은 규칙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어떤 규칙은 사슴이 전혀 지키지 않았고, 어떤 규칙은 잘 지켜주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산책 중에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데요. 할머니는 사슴을 보자마자 " 오!!! 로드리고, 네가 돌아왔구나!!" 하고 반가워합니다. 



주인공 소년은 '마르셀'이라고 이름 붙였던 사슴을 '로드리고'라고 부르는 할머니. 졸지에 사슴 주인이 두 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윌프레드가 이 사슴은 자기 사슴이라고 주장해봤자 통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사슴이 할머니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고 오히려 소년 말보다는 할머니 말을 더 잘 듣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상처받은 소년은 산길을 뛰어 집으로 돌아가다가 줄에 발이 엉켜서 구르고 맙니다. 조난을 당해 무섭고 서러워진 소년. 온갖 나쁜 상상이 다 떠오를 무렵, 사슴이 소년을 구해줍니다.  <윌프레드 규칙 73번 : 주인이 위험에 빠지면 구해줄 것>에 꼭 맞는 일을 사슴이 해준 것입니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소년은 사슴에게 멋대로 붙였던 이름표를 찢어 버립니다. 그리고 착한 반려동물이 지켜야 할 규칙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규칙이 성립될 수 있는 상황은 '사슴이 내킬 때' 뿐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사슴에게도 자율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상대방은 내가 아닙니다. 서로 친구가 되기로 약속했다 해도 '친구라면 이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를 옭아맬 순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마음 같지 않고, 때로 멋대로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그를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것뿐입니다. 고민을 나눠준 독자분께 조심스레 질문하고 싶습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나요? 


              

이 사슴은 내 거야!

작가 올리버 제퍼스

출판 주니어 김영사

발매 2013.06.10


* 두 번째 그림책 처방 <큰 늑대 작은 늑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hyejinchoi/25



글을 쓴 최혜진

10년간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크고 작은 인터뷰로 각기 다른 결을 지닌 1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 10년 차가 되던 해에 유럽으로 날아가 3년 동안 살며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명화가 내게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썼고, 현재는 <볼드저널>의 콘텐츠디렉터로 일한다. 그림책이라는 놀라운 예술 장르에 매료된 자발적 마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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