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선생님의 동물원><빨간 토마토가 방울방울> 작가의 창작 노트
주인공인 작가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야 마땅하지만, 예외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오늘 주제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일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들어주시길. 한국에서 10년간 잡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속으로 비밀스러운 상상을 펼친 적이 많았다. ‘내키지 않는데도 조직원이라서 해야 하는 일들이 참 싫다! 그런데에 시간 낭비만 하지 않는다면 창의성을 마구 발휘하며 훨훨 날아다닐 텐데!’
유럽으로 이사를 와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난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만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이걸 하겠다, 저걸 하겠다 다짐했던 마음이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지고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자유 시간을 갈망해놓고 막상 주말이 되면 ‘뭐하지?’ 막막해하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눌어붙어 있는 사람처럼 만사가 귀찮았다. 그러면서도 효율 최우선주의에 익숙한 회사원의 습성은 단박에 사라지지 않아, 구체적인 목표나 손에 잡히는 성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불안하기만 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나? 나중에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고 가꿔본 적이 없어서, 그 방법을 몰라서, 남아도는 시간이 되레 버거웠던 것이다. 누군가 할 일을 주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꾸려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우린 어릴 때부터 게으름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그 유명한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시간 낭비가 얼마나 죄질이 나쁜지, 게으름 피운 자의 말로도 똑똑히 보았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명언은 철옹성 같은 강력한 설득력으로 시간을 투자 원금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저 명언을 들으면 늘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시간은 금이지. 낭비하지 말고 투자해서 목적을 이뤄야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저 명언을 듣고 ‘그래, 시간은 금이지. 귀하니까 내 시간의 주체로 살아야지. 남이 짜 준 시간표대로 따라가진 말아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70여 권의 그림책을 발표한 이치카와 사토미가 시간을 다루는 자세와 태도는 독특하고 놀라운 데가 있다. 먼저 그녀는 20세에 모국 일본을 떠났다. 1971년의 일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떠날 날만 기다리며’ 유년기를 버텼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럽으로 와 20년간 단 한 번도 일본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흔한 유학생들처럼 대학에 다닌 것도 아니다. 1976년 첫 그림책을 출간했는데, 그림은 어디서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혼자 프랑스 파리의 식물원, 동물원, 시골 농장에서 하루 12시간씩 크로키를 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터득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녀가 책을 만드는 방식이다. 우선 아프리카 케냐, 말리, 알제리, 남아메리카 페루, 과테말라 등 제3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한 번 가면 한 곳에서 한 달씩은 살다 온다. 좋아하는 나라는 서너 번 반복해 가기도 한다. 여행을 떠날 땐, 카메라는 가져가지 않는다. 0.1초 만에 얻어지는 이미지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아예 카메라를 사지도 않았다. 대신 스케치북과 수채화 재료를 듬뿍 챙겨간다. 현지인의 생활 터전을 누비면서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자리를 펼치고 앉아 그림을 그린다. 요리 도구를 모두 길에 내놓고 길가에서 요리하는 아프리카 아낙들, 냄새를 맡고 모여든 고양이들… 이런 소소한 장면을 짧게는 30분, 길게는 3일 동안 바라보면서 느끼고 그림으로 담아낸다. 여행할 때 ‘어떤 책을 만들겠다’는 목적의식은 전혀 갖지 않는다. 그저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줍듯 마음을 울리는 장면을 수집한다.
책이 만들어지는 건 프랑스 파리 집으로 돌아온 뒤다. 스케치북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지어야 내가 여행하며 본 이 장면들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상상한다. 그다음 글을 쓰고 밑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그녀의 모든 책에는 실제 가봤던 장소만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존 선생님의 동물원』 『노라의 장미』는 그녀가 가깝게 지내던 영국 켄트 지방의 은퇴한 의사 선생님 ‘존’의 집에 머물며 그린 것이고, 『달라달라』는 동아프리카에 있는 탄자니아 자치령 잔지바르(Zanzibar) 섬에서 실제 만난 꼬마에 대한 이야기이며, 『지브릴의 자동차』는 아프리카 말리의 한 시장에서 발견한 ‘지브릴’이란 꼬마의 폐품 자동차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 아이들의 일상과 그곳의 생활, 음식, 문화,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데 온통 자신의 시간을 바치고, 그걸 책에 꾹꾹 눌러 담는 작가가 이치카와 사토미다.
그녀를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일본은 한국만큼이나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고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만드는 나라다. 유럽인들은 쉽게 이해 못 할 우리의 깊은 고민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스무 살 이후부터는 단 한 순간도 남이 짜 준 시간표대로 살지 않은 여성,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큼 사용할지 혼자 결정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창작자.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갔다. 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록 보관소’ 같았던 흥미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이치카와 사토미는
1949년 일본 기후현에 있는 아오노쵸에서 태어났다. 20세 때 이탈리아로 어학연수를 와 8개월간 머물고 프랑스로 왔다. 그 뒤로 근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파리에 산다. 독학으로 그림을 연습해 1976년 영국 출판사 William Heinemann사에서 첫 책 『Friends』를 낸 이래 영국, 프랑스, 일본에서 총 70여 권의 작품을 발표했다. 『봄의 노랫소리가 들린다』로 이와나미 출판문화상을, 『달려라 앨런』으로 파리 시장상을 수상했다. 1989년부터는 프랑스 최고의 아동 문학 편집자 아튀르 위브슈미트(Arthur Hubschemid)와 25년째 호흡을 맞추며, 거의 매해 제3세계 나라들의 일상 풍경을 담은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이 인터뷰가 발행될 즈음, 그녀는 인도의 코끼리 농장에서 그림 여행 중일 것이다.
Q 고향 아오노쵸는 버스나 기차도 없는 외딴 시골 마을이라고 들었습니다. 유년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카페나 레스토랑은커녕 변변한 가게도 하나 없는 깡촌이었습니다. 산이나 바다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저희 집안이 4대째 내려오는 교육자 집안이었어요. 할아버지는 면장 겸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고, 아버지 역시 선생님이었고요. 작은 마을이다 보니 서로의 사정을 빤히 다 알고 있기도 했고, 제가 선생님 딸이기 때문에 온 동네에서 절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게 구속처럼 느껴졌어요. 동네나 학교에서 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기 실종의 욕구랄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지요.
Q 아버지가 선생님이셨으면 나름의 가정교육 철학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 교육에 열성적이어서 ‘카미시바이(kamishibai)’라고 하는 나무 액자 형태의 작은 무대장치를 직접 만들기도 하셨어요. 그 안에 그림을 넣어두고 순차적으로 한 장씩 빼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본의 전통 구연동화 방식인데요. 종이 드라마라고도 부르죠. 그런 자상한 면이 있었으나, 아버지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어요. 홀로 두 딸을 키우게 된 어머니는 일 밖에 모르고 사셨죠. 낮에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퇴근 후엔 밤마다 밭일을 하셨는데, 그 억척스러운 모습이 어린 마음에 참 싫었어요. 2012년 발표했던 『빨간 토마토가 방울방울』은 제 책 중에 유일하게 일본 마을이 배경이 된 책인데, 어머니의 텃밭, 작업복, 밭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마음과 거기서 보낸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작업하게 된 책이에요. 어머니는 불안이 많은 전형적인 일본 주부였어요. 절 보면서 ‘얘는 얼굴도 예쁘지도 않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공부까지 못하고 이 일을 어쩌면 좋나’ 걱정하셨죠. (웃음) 제가 예술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학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그건 창밖에다 돈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안정적인 직업과 가정 밖에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Q 어머니가 안정지향적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일본을 떠났습니다. 그 용기는 어떻게 나온 건지 궁금하네요.
일본 학교들이 아직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어릴 땐 시험을 보면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벽에 붙여 알렸습니다. 전 늘 중간 아래 있었죠. 하지만 부끄럽기보다는 성적에 연연하게 만드는 그 풍경이 좀 우습게 느껴졌어요. ‘난 어차피 공부에 뜻이 있는 게 아닌데, 성적을 꼭 잘 받아야 하나? 왜 다들 저러지?’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어요. 대열에서 빠져나온 거죠. 성인이 되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리라 수없이 다짐했고, 성인이 되자마자 실천한 것입니다. 어머니에겐 이탈리아에서 어학연수를 2년만 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냥 구실이었죠. 8개월째, 가져갔던 돈이 떨어져 일자리를 구하던 중에 프랑스에서는 학생 비자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래서 파리로 왔습니다. 한 프랑스 가정의 입주 보모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불어 공부를 시작한 게 프랑스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20년 동안 한 번도 일본에 가지 않아서, 결국 어머니가 절 보러 프랑스로 오셨지요.
Q 공부 대신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기 확신이 어릴 때부터 있었던 건가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어릴 때부터 정확히 알고 확신을 갖는 게 가능한가요? 어릴 땐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라요. 생각하고 탐험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죠. 어떤 확신이 있어서 프랑스로 온 게 아니라 저에게 탐험할 시간을 주려고 온 것이에요. 일본에 있을 땐 요리도 좋아했고 피아노도 쳤어요. ‘이게 내 길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모르겠는데’라는 답이 돌아왔죠. 그땐 제가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꿈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손에 잡힐 때까지 탐험하는데 시간을 쓰기로 결정한 거예요. 성숙해지려면 시간을 써야 해요.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고, 꿈을 찾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Q 그림은 어떤 계기로 그리게 되셨나요?
어느 날 벼룩시장에 갔다가 19세기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루이-모리스 부테 드 몽벨(Louis-Maurice Boutet de Monvel)의 책을 발견했어요. 입주 보모로 일하며 돌보던 아이들을 데리고 뤽상부르 공원에 놀러 나가서 그 책을 펼쳤는데, 책 속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림이 있더군요. 그림을 한번 보고, 제가 돌보는 아이들 모습을 한번 보고, 둘을 비교해 봤더니 꼭 현실의 아이들이 책 속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았어요. 뛰어다니느라 셔츠가 삐져나오고 머리칼이 흩날리는 아이를 그린 역동적인 일러스트를 보면서 ‘어쩌면 나도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날부터 책을 끼고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곧 한계에 부딪혔어요. 사람 얼굴을 어떻게 표현해야 화난 감정이 전달되는지, 강아지는 어떤 포즈로 뛰는지 머릿속에 저장된 이미지가 없으니 그릴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관찰하기 좋은 댄스 스쿨, 제가 사랑하는 동물을 실컷 구경할 수 있는 동물원과 식물원에서 크로키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하더군요. 그래서 ‘아, 난 그림 그리는 것이 하고 싶었구나’ 깨달았죠.
Q 그렇게 만든 습작을 가지고 영국으로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출판사에 약속도 잡지 않고 무작정 찾아가 그림을 보여주셨다고요.
젊어서 순진했어요. 지금 그때 그림을 보면 너무 창피합니다. 그림 속 인물이 조각상처럼 뻣뻣하거든요. (웃음) 남들은 어떤 방식으로 편집자와 접촉하는지 몰라서 그냥 제 방식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어요. 그게 실제 책 계약으로 이어졌고, 그 첫 책이 6개 언어로 번역까지 되었습니다. ‘어라? 그림책 만드는 거 별거 아니네?’란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다음에 왔습니다. 기본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낼수록 한계가 느껴졌어요. 그 무렵에 제 인생에 티핑 포인트가 된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바캉스 기간에 함께 휴가지에 머물며 세 아이를 돌봐줄 보모를 찾는 팔메르(Palmer)씨 부부를 알게 된 것인데요. 프랑스 남부 망통(Menton)에서 한 달간 아이를 보면서 틈틈이 그 지역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 인연이 평생 친구로 이어졌어요. 팔메르 부부는 암스테르담, 오하이오 등 매해 바캉스를 떠날 때마다 ‘우리랑 같이 갈래?’ 제안해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그 경험들이 1989년 발표한 『Vraie place des étoiles 별이 진짜 있어야 할 곳』 『Amis du vieux château 오래된 저택의 친구』 같은 초기작을 내는 동력이 되었고요. 한 번은 그 부부의 친구인 영국인 의사 존 선생님의 전원주택에 함께 머물게 되었는데요. 존 선생님은 은퇴 후 자신의 집을 유기동물 쉼터처럼 꾸미고 수많은 동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동물을 관찰하며 그림 그리는 것을 본 선생님은 그 뒤로 무려 18년 동안,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해 저를 초대해 그 농장에서 2~3개월씩 머물며 그림 연습을 하게 해주셨어요. 『존 선생님의 동물원』과 ‘노라와 친구들 3부작’에 등장한 그림이 다 그때 만들어진 거죠. 그렇게 18년의 시간을 연습하며 보내고 나니, 그제야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더군요.
Q 하고 싶은 일 앞에선 정말 거침이 없는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 계속 계셨다면 어땠을까요?
우선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그렸다고 해도 대학도 나오지 않은 저를 만나줄 편집자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본 책을 보면 저자 소개에 학력부터 나옵니다. 아, 한국도 그런가요? (웃음) 유럽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여기 사람들이 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아서였습니다. 특히 학벌에 대한 선입견 같은 건 없어요. 저에게 “어느 학교 다니셨어요?”라고 묻는 편집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적당하고 적절한 선 안에, 무리 안에 있으려는 문화가 강하죠. 그런데 인생의 방향성을 결정할 땐, 정말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 일례로 제가 프랑스에서 행복하게 작가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데도, 일본에 있는 저희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요. 그 애한테 재능이 있어도 그러죠. 그런 모습이 합리적인 건가요? 존경할 만한 선택인가요?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면 남들이 해주는 충고라는 게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 수 있어요. 만에 하나 아주 현명한 사람이 충고를 해줬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 삶이지 내 삶이 아니잖아요. 누군가 저에게 진로 상담을 요청하면 전 늘 이렇게 말합니다. “네 안에 있는 목소리에게 질문해봐라”라고요.
Q 작가님이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제 안엔 제가 의지하고 믿는 친구가 있습니다. 깊은 곳에 있는 제 본성입니다. 중요하고 무거운 고민이 있을수록 남을 만나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그 아이와 대화합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됩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 이 결정이 마음에 들어?”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죠. 만약 그 친구가 “응”이라고 답하면 떨치고 일어납니다. 머뭇대지 않고 추진하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제 유일한 판단 잣대는 내면의 친구가 좋아하는 일인가 아닌가, 이것 딱 하나입니다.
Q 책장에 꽂혀있는 여행 스케치북을 보니 모로코, 페루, 케냐, 말리, 오만, 탄자니아, 푸에르토리코, 인도, 과테말라 등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이더군요.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토속어도 공부하신다고요.
전 사람들의 자연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풍경에서 큰 행복과 영감을 얻습니다. 동물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에서요. 제가 좋아하는 아프리카와 제3세계 국가들은 정말 아름답고 시적인 나라들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말리에서는 현지인처럼 밖에서 비박을 했는데 한 번도 위험한 일을 겪은 적이 없고, 가난해도 늘 기쁨으로 일상이 가득 찬 행복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한 장소에서 며칠씩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경계심을 풀고 그들이 먼저 다가옵니다.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해주거나 숙식을 제공주는 분들도 많았어요.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우르르 몰려와서 틱틱 사진 찍고 사라지는 보통의 관광객 하고는 다르니,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주더군요. 전 철저히 그들이 먹는 걸 먹고, 그들 방식대로 삽니다. ‘만약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면, 나라고 왜 못하겠어?’라고 생각하죠. 그들의 삶을 존중합니다.
Q 그런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지 않는 게 참 놀라웠습니다. 속도전을 치르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에 시간을 들여야만 자기 것이 된다는 작가님 철학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관찰을 하면 그 대상을 이해하게 됩니다. 말이 안 통하는 동물도 마찬가지예요. 염소가 어떻게 자는지, 먹는지 3~4일 동안 계속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리면 염소의 습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전 지금까지 그려놓은 여행 스케치북이 50권 정도 있는데요. 한 장 한 장 펼쳐볼 때마다 당시 공기의 온도, 햇살의 느낌, 향기, 사람들의 음성… 이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0.1초 만에 사진으로 찍어 박제해 버렸다면 기억이 이렇게 살아 있을 순 없을 겁니다.
Q 만약 염소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관찰 스케치를 하는 그 3~4일의 시간이 곤욕이겠네요.
물론입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창작의 시작은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그게 모터가 되고 에너지가 되는 겁니다.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시간을 더 보낼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마음은 시간이라는 효소가 더해지면 더 잘 부풀어 오른답니다.
Q 『아프리카에도 곰이 있을까요?』 『지브릴의 자동차』 『달라달라』 『Ma chèvre Karam-Karam 내 염소 카람 카람』 『Magasin de mon père 우리 아빠 가게』 『Mon cochon Amarillo 내 돼지 아마릴로』 등 1990년대 후반부터 발표하신 책들이 다 여행 스케치북에서 발전된 작품들인데요. 덜 알려진 개발도상국의 어린이가 등장한다는 것 말고도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의 대상과 사랑에 빠진 아이의 일상, 내면의 흐름을 섬세하게 담아낸다는 것입니다. 대상은 곰인형, 폐품 자동차, 버스, 염소, 양탄자, 돼지 등 책마다 다르지만, 아이가 일상 속에서 아끼는 대상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우정의 의미를 배우고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된다는 메시지는 동일하지요.
네, 맞아요. 열정에 빠진 한 아이의 일상을 그려내는 걸 좋아합니다. 제 이야기는 정말 작고 별 것 아닌 순간들만 담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요소는 전혀 없어요. 가끔 제 담당 에디터 아튀르가 “이렇게 착한 사람만 나오고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책은 사람들이 사서 보지 않아요.”라며 이야기를 좀 더 드라마틱하게 다시 짜보라고 할 정도예요. (웃음)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저 다운 이야기입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나 늘 무료했던 저는 어릴 때부터 디테일을 쳐다볼 시간이 있었어요. 개미랄지, 잎사귀랄지 하는 것들이요. 휙 둘러보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세계 안에서도 늘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요.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으면 못 알아차리고 넘어갈 일상의 작은 경이와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저 다운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불 뿜는 용이 나와야 재미있어할 테지만요. (웃음)
Q 한국 사람들의 보편적 고민 중 하나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입니다.
그럴 수 있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초반은 ‘학생의 삶’으로 왜 공부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지도 못한 채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그다음엔 직업을 가져야 하니까 순종하는 기간을 보내고, 회사에 들어가면 더더욱 자기 시간이 없고요. 의무를 다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 쪽으로 방향성을 틀 용기도 생깁니다. 힌트를 드릴까요?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나머지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그게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고, 당신의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는 일이란 신호입니다. 흔히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하죠? 그 살아 있다는 느낌이 신호예요.
Q 그런 느낌을 느껴도 차마 따라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전 피카소가 한 말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가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거기 있어요. 어떤 일을 하는데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건 어른들의 방식입니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데 내 시간을 쓰겠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는 사고방식이 새롭고 흥미롭고 창조적인 순간을 만들어준답니다. 그럴 듯한 이유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좋으니까, 이 이유면 충분합니다.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 사는 한 흑인 아이가 동양인 관광객 여자아이가 떨어뜨리고 간 곰 인형을 돌려주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기린, 코끼리, 하마, 원숭이, 사자 등 사바나의 동물들 습성과 현지어 이름부터 토착민들의 거주 환경, 의상이 사실적으로 담겨있다. 사바나의 흙먼지 냄새가 풍겨올 것 같은 생생한 이미지로 가득 찬 책. 2000년 크레용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한국어 버전이 출간됐다.
사막의 유목민 소년 지브릴은 캔, 페트병 등 폐품을 오려서 장난감 자동차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아빠는 “그게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며 꾸중을 한다. 포대 가득 만들어놓은 자동차를 내다 버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지브릴의 반전 넘치는 이야기. 작가가 실제로 말리에서 한 아이가 만든 폐품 자동차를 보고 사랑에 빠져 이 책을 지었다. 한국에서는 2014년 파랑새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할아버지의 수프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게 된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책. 을씨년스러운 방에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끓여주던 수프가 그리워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다. 기억에 가까운 맛을 내기 위해 수프 요리를 계속해나가면서 생의 의지를 다시 회복해가는 모습을 따뜻하고 잔잔한 그림으로 담아냈다. 2002년 웅진씽크빅에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에서 사는 쥐마는 ‘달라달라’라고 불리는 버스를 사랑한다. 아빠가 그 버스를 운전하기 때문이다. 커서 달라달라 운전사가 되고 싶다는 쥐마의 말에 할아버지와 아빠는 반대를 하고 “네가 더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구나.”라고 타이른다. 거기에 오히려 좋은 직업이 뭐냐고 질문하는 쥐마의 순수함이 어른들이 정해놓은 직업의 귀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어 버전은 2008년 파랑새 출판사에서 나왔다.
강아지 인형 ‘우기’와 장난감 나무 비행기 ‘코스모스’는 장난감 상자에 갇혀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서로의 부족함과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이기고 창공을 향해 발을 디딘 둘. 무서워도 한 걸음 더 내딛기로 결심하는 용기에 대한 책이다. 작가의 집이 있는 몽마르트르 경치를 비롯해 파리의 하늘이 아름답게 담겨있다. 2010년 파랑새 출판사에서 한국어판을 냈다.
노라는 호기심이 많아 누구에게나 말을 거는 아이다. 곰 인형부터 장미꽃, 지나가는 새끼 오리 등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된다. 이 시리즈는 이치카와 사토미가 영국 켄트에 있는 존 선생님 농장에서 머물며 동물 관찰 스케치를 쉼 없이 했던 시기에 만든 것으로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인생 최고의 행복을 선사한 장소”인 영국 전원 풍경이 섬세하게 담겨있다. 한국에선 1996년 첫 출간되었고, 약 20년 동안 스테디셀러로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2012년 다산어린이 출판사를 통해 개정본이 재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