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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Mar 20. 2017

조심할 일이 너무 많아서

쓰고 싶다. 어깨에 힘주고 자세를 가다듬은 후 한껏 예의를 차려 쓰는 기사는 많이 썼으니, 이제 '나'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나만 알고 있어도 될 일이지만 굳이 해부해 내보이고 싶은 시시껄렁한 순간들을. 


마음에 자꾸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오래된 기억,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사람의 경솔함, 

외국 손님에게 들키고만 한국 공무원식 사고방식에 대해서. 

이따금 새벽녘에 깨어나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날카로운 고통과  

당분간 해결이 날 것 같지 않은 집안의 걱정거리와 

옛 남자친구의 친구를 일로 우연히 만났을 때 내가 보였던 경직된 표정과 

밥을 하지 않는 유부녀로서 느끼는 괴상한 죄책감과 

미용실 갈 때마다 듣는 "곱슬머리라 불편하시겠어요"라는 말과 그 안에 숨은 지긋지긋한 강요에 대해서.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본성으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할 때 느끼는 떨림과 두려움과 의외의 위안에 대해. 

그림책이 나에게 열어준 기회들에 대해.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 


입안에 말이 잔뜩 고여 있는데 쓰지 못하고 있다. 

이걸 써볼까 하면 '아! 그 사람이 읽으면 어쩌지.' 

저걸 써볼까 하면 '아! 그분이 자기 이야기 쓰는 걸 싫어할 거야.' 

아예 다른 걸 써볼까 하면 '아! 그래도 회사 클라이언트사의 이야기까진 할 순 없지.' 

이렇게 주머니 속 글감을 만지작 만지작거리기만 한 게 벌써 몇 달이다. 



글을 쓸 땐 미끄러져나가는 기분으로 써야 한다. 
말들은 절뚝거리고 고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미끄러져 나가기만 한다면 그 어떤 즐거움이 모든 걸 환히 비추게 된다. 
조심조심 글을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다.
- 찰스 부코스키



어쩌다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 하나까지 이렇게 조심조심하게 된 건지. 미끄러져나가는 기분으로 글 쓸 때 느껴지는 흘러넘치는 충족감, 그게 뭔지 떠올리면 아련해진다. 옛날엔 그랬던 것 같은데. 누군가 막 떠나간 벤치에 앉으면 엉덩이에서 전해오는 막연한 온기 같은 수준으로, 그러니까 부재의 감촉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 


이게 전부 다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실용적인 생각을 내내 하다가 감정의 결들을 세세하게 펼쳐내는 쪽으로 생각의 모드를 순식간에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가졌고, 하루 종일 어떤 식으로든 창작이란 걸 해야 하는 회사인데도 그렇다. 확실히 나는 혼자 굴을 한참 파고 들어가야 글이 써지는 모양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일단 책 한 쪽 읽는 것도 피곤하게 느껴지고 하루 종일 수고했으니 생각이라는 걸 아예 하지 말자는 쪽으로, 일단 눕고 보는 쪽으로 몸이 끌려가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면 허접한 체력이 제일 큰 원인인 건가? 


아무리 따져봐도 그보다는 조심하는 마음 탓인 것 같다. 글을 쓰기도 전에 그걸 읽을 사람이 먼저 생각난다. 읽을 '독자'가 생각난다기보다 '업계 관계자'들이 먼저 떠오른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거다. 내가 앞으로 계속 책을 펴내고 강연을 하고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 왠지 잘 보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들. 명함을 주면서 "작가님~" 다정하게 불러주던 사람들을 의식하는 거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네. 에이, 이게 뭐람. 멋대가리도 참 없다. 


다시, 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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