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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jinsung Jan 05. 2023

창업자인 나도 ‘조용한 퇴사’를 하고 있다

폭풍 같은 성장기에 ‘조용한 사직’을 연속으로 경험하며…

우리 브랜딩팀 멤버인 수현님과 단둘이 갖는 비밀스러운 루틴이 있다. 너무 별거 아니지만 성수 블루보틀에서의 피카타임 갖기. 그것도 우리가 딱 앉는 구석 스탠딩 바에서!


우리는 한 해 서로가 잘했던 것들, 아쉬웠던 것들을 긴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누며, 작년에는 신규 입사자들의 단기간 퇴사가 빈번했던 원인에 대해 회고하게 되었고, 그것은 내가 리더로서의 역량 부족이라 양심 고백을 했다. 신규 입사자에게 입사와 동시에 청사진을 너무 크게 그리면서 부담과 실망을 동시에 줬던 나의 서툰 탓이라고. 신규 업무가 많아지면서 작년 계획보다 더 채용 파트가 급히 필요한 곳들이 생겨났고, 그것은 급한 나의 마음에서 출발해 주변의 괜찮은 사람들에게 과한 직무와 부담을 제안한 탓이었다.


요즘 MZ세대들에게 ‘조용한 퇴사’라는 키워드가 유행이라고 한다.

실제 퇴사의 뜻이 아닌 조용히 입사했다가 조용히 근무하고, 조용히 정시 퇴근한다는 의미인데 최근 채용 플랫폼 설문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1명 꼴로 ‘조용한 퇴사’를 희망한다고 한다. 나는 이 트렌드 자체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일명 ‘옛날 꼰대 MZ’였던 것이다.  그 덕에 ‘조용한 퇴사’ 대신 ‘조용한 사직’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창업가가 모든 직원들에게 회사의 비전과 가치에 대해 얼라인을 다 맞추었다 하더라도 ‘비전을 이해한다’는 것과 별개로 ‘일하는 이유’의 출발점은 직원마다 다 다를 것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했던 내 탓이었다. ’창업가 입장도 이해해 줘’라고 절대적 공감을 요구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든다. 심지어 창업가가 실무진 팀장일 때의 더 큰 부작용은 팀원들에게 ‘나도 이렇게 고생하니까’라는 심리적 보상을 나도 모르게 개인 역량 기준의 잣대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조용한 사직’이 퇴사자와 고용주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수현님이 이제야 회고하며 말하긴 했지만, 누군가의 오고 감이 팀 동료로서도 에너지 소모와 허탈함이 잔재하는 것 같다며 우려를 고백해준 덕분에 나는 더욱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퇴사에 개인 사정들도 다 있긴 했지만 나는 역량 부족의 ‘내 힘듦’만 생각하고,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팀원들에게 그 부담과 책임을 떠안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한 업무 파트와 세대군이 늘어나면서 정작 회사 경영진은 그 스펙트럼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었다. 그래도 남아있는 초창기 멤버들은 회사 성장의 서툼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주고 있었다. ‘분명 실장님께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해주는 수현님의 격려가 창업가인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폭동 같은 변화기에 믿고 애써준 팀원들 모두 고마워요)


최근에는 직원들이 ‘조용한 퇴사’를 할 수 있도록 창업가인 나부터 ‘조용한 퇴사’를 하고 있다.

직장인 그 이상인 창업가로서 마저 다 하지 못한 일이나, 더 해야 할 일거리들은 가방에 담아 와서 집에서 이어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침부터 밤늦도록 12시간 이상을 사무실에 앉아서 입으로는 ‘먼저 퇴근들 하세요’하고는 어쩌면 내 아우라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정시에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벌써? 일 다했나?’하며 직장인의 기준이 아닌 창업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중이 절을 2곳으로 나누어 역할 스위치를 끄고 킨다. 나도 직장인으로서 퇴근시간이 되면 잠시 껐다가(그 사이 저녁도 먹고) 집에 돌아와 창업인으로서 2차 역할을 이어하는 것이다.


요즘 수현님이 ‘실장님 요즘 일찍 집에 들어가시려는 것 같아요!’라며 나의 노력의 변화를 알아 차린 것 같다. ‘조용한 퇴사’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그만큼 나도 집에 가서 내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함도 덜어지고, 일의 능률이 더 올라가는 것 같았다. 창업자인 나도 ‘조용한 퇴사’를 하고 이렇게 브런치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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