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그리고 나

캐나다 워홀 도전기_8

by 혜주

이곳에 온 지 보름쯤 되었을 무렵, 불면증이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이 많은 것도 아니고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밤만 되면 잠이 오지 않는 걸까.

혹시 이미 적응했던 시차가 다시 한국 시간에 맞춰 되돌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온갖 방법을 시도해 봤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 적고 자보기,

햇빛을 더 많이 쬐기,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기,

눈을 1분 동안 미친 듯이 깜빡이면 눈이 피곤해서

뇌가 잠을 유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빡이기,

코 고는 소리 틀어놓기까지.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분명 피곤해서 하품도 나오고 눈도 피로한데 잠이 안 오니 미칠 것 같았다.

이모와 아침을 먹으며 왜 잠을 못 자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모는 말했다.

"아마도 내가 한국에서 보다 에너지를 덜 쓰고 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눈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교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치대며 밖으로 없는 에너지를 짜내면서 살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오로지 이 모든 시간을, 나의 내면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니 더욱 에너지가 남아 돌 수밖에 없었다. 대화할 사람도, 감정을 공유할 사람도 거의 없는 이곳의 생활은 처음 느껴보는 사라지지 않는 이 뭔지 모를 허전함, 외로움과의 끝없는 사투였다.

새로 사귄 동네 친구랑 잠깐 떠드는 순간은 재밌지만, 깊은 감정을 교류하기는 당연 쉽지 않았다.

그리고 혹여나 그 허전함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돌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두드리고 두드리며 의심하고 또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쯤 되니 밤마다

"내가 왜 워홀을 선택했더라?"

그 질문이 자꾸 밤마다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가끔 나는 내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한국이 사실 고향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똑같이 눈코입, 그리고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쩌면 이들은 나와 같은 종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받은 적도 없고, 사람들 사이에 잘 섞여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잘 웃고 지내다가도 문득 낯선 기분이 들 때면,

'언젠가는 진짜 고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단순한 상상이라는 것,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런데도 그 씁쓸함은 그렇게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영어유치원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놀랍게도 그 속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이 꼭 고향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됐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지만, 다른 선택을 하고 있었단 걸.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실천하고 있었고, 나는 억누르고 있었다.

늘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그 길을 한 번도 고민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아마도 그때의 만남들이 어릴 적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던 워홀에 대한 생각에 다시 불을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처음 신청할 때만 해도 이제 워킹홀리데이는 경쟁이 심하고, 사람도 많이 안 뽑는다는 말이 많았다. '설마 내가 되겠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합격레터를 받았던 날, 발가락부터 치고 올라오는 짜릿함을 경험했다.

"나 진짜 가도 되는 건가?"

"지금 이 나이에, 정말?" 온갖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내 나이는 이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었어야 할 나이지만

하지만 나는 여전히 허우적 허공을 맴돌고, 외계인 종족이나 꿈꾸는 사람이었다.

워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해 주었다.

내가 최선을 다함을 알아준 그들에게 감사하면서도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무엇보다 한국에 쌓아놨던 경력과 인맥들을 과연 다 내려놓을 만큼의 일이었을까?

이걸 다 포기해도 괜찮을까? 내 나이에. 정말?


사실 가기 전날 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 전화로 사주를 보고 또 보고, 글로 써 내려가며 친구들에게 끝없이 하소연을 하며 물었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그러다 그 고민을 하는 것에 지치기 시작했다.

"꼭 옮은 선택만을 해야만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정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계속 날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믿음 위에서 조금은 혼란스럽더라도 자신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평생 막연하게 그려만 왔던 '진짜 고향'을 향한 첫 번째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중, 유일하게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건넸던 치사량의 사랑이 담긴 말이 내 마음에 박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줬다.

이 말을 들었던 날, 사람들 많은 카페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참으려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말은 낯선 땅에서 외로움에 흔들릴 때마다 정신줄을 붙잡아주는 말이다.

나보다 나를 더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행복일 것이다.


"너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인 거 알지? 내가 아끼는 널 더 믿고 마음이 하고 싶은 걸 해."


그렇게 왔다 나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이게 옳은 선택인지 옳지 않은 선택인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그저 선택을 했다. 후회하지 않지만 후회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후회해도 괜찮다.

이 계속되는 불면증에 시작점을 다시 되돌아볼 기회가 생겼지만,

일단 넘치는 에너지를 운동으로 해소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오늘은 아침 5시에 일어나 헬스장으로 향한다.


언젠가는 이 불면도 사라지겠지. 그러다 보면, 이 낯선 땅도 조금은 내 편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