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東)

캐나다 워홀 도전기_7

by 혜주

그날은 처음으로 Go Bus라는 광역버스 같은 것을 타보려고 했다.

도착한 버스정류장에는 내가 타야 하는 버스 번호와 위치가 나와있는데 가격은 나와있지 않았다. 한 바퀴를 다 돌면서 직원들에게 가격을 물어봤을 때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난 안 타봐서 모르겠어.”

예상치 못한 답을 들었지만 일단 집에 가야 하니 줄을 섰다.

교통카드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잔액보다 더 많은 금액이 나올까 걱정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 앞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내 또래 같아 보였고, 진한 청바지에 밝은 가죽재킷, 그리고 옆으로 멘 커다란 운동가방까지 딱 봐도 이상한 사람 같진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치고 물어보았다.

“저기, 미안한데 혹시 이 버스 얼마인지 알아?”

그렇게 뒤돌아보는 그는 예상하지 못하게 꽤나 잘 생겼었다.

그는 친절한 목소리로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대략적인 금액을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려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을 했다.

근데 그는 다시 몸을 돌리지 않고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다시 눈을 마주치자 그는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것처럼 폭풍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 캐나다에 온 지 얼마나 됐어?", "한국인이야?", "워홀 온 거야?"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가 끝이 없이 이어졌다. 그는 한국인 친구가 많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게 왜 그렇게까지 강조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스가 도착했고, 놀랍게도 2층짜리 버스였다. 한국에서도 2층 버스를 타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맨 앞줄에 앉아 구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이 무색하게, 1층 안쪽 자리로 들어가며 나를 보고 있는 그를 보며, 나도 어느 순간 '옆에 앉아도 되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남짓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는 중국인이었고, 미국 플로리다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10년 동안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캐나다로 온 지 2년 되었다고 했다. 햇살이 가득했던 곳에서 살다가, 눈 오는 캐나다의 겨울을 처음 겪었을 때는 며칠씩 집에 갇혀 있다가 몸에 이상이 생긴 적도 있었단다. 병원에 갔더니 햇빛 부족으로 비타민 D가 결핍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그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었고, 눈가에 이효리급 주름이 잡히는 그의 눈웃음이 참 예뻤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며칠 뒤 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바로 날짜를 잡았고 나는 사실 그날 일정이 가득했지만, 여유 있는 날이라고 말하며 그와의 약속을 우선으로 두었다. 그가 차로 데리러 오기로 했고 함께 우리 동네 근처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날씨도 제법 풀려 있었고, 그 공원은 내가 아직 가본 적 없는 곳이라 더 설레었다.

곧, SUV 검정 색 커다란 차가 내가 머물고 있는 콘도 입구로 들어왔다. 운전석 너머로 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달려와 내 뺨을 한 대 세게 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그 날 보았던 잘생긴 얼굴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차 문을 열자, 그는 한번 더 나를 놀라게 했다. 차 내부는 온통 빨간색이었고, 그 사이사이에 정체불명의 캐릭터 인형들이 여기저기 숨어있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아련한 중국가수의 노래가 내 귀를 때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흔들리는 동공을 숨긴 채 밝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냈어?"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자동으로 몸에 맞춰 조여졌다. 처음엔 ‘와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그 미세한 압박감이 마치 내 불편한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공원으로 갔다.

곧 해가 질 무렵이라, 타이밍을 보면서 공원길을 걸었다. 조금 여유를 갖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날 Go Bus에서의 티키타카가 다시금 살아났다. 대학생활 이야기, 지금 하고 있는 일, 가족 이야기 등 조금은 사적일 수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때, 서로의 이름과 그 이름이 가진 한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중국 이름은 동(東). 동쪽을 뜻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별것도 아닌 걸로 크게 웃고 있는 이 순간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하지만 걷다 보니, 우리는 은근히 발걸음이 맞지 않았다. 서로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나는 조금 더 빠르게, 그는 조금 더 느리게 걸었고 그 어긋난 보폭 사이로 어둑해진 하늘이 흘렀다.


차에 다시 탔을 때, 그는 나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표현하며 술을 한잔 하러 가는 게 어떤지 물어보았다.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곳으로 맥주를 한 잔 하러 갔다. 맥주 한 잔과 함께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떠들었다.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장면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고, 나는 그가 좋아하는 대사 하나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이면서도 인상 깊었다.

잠깐이었지만, 우리가 비슷한 온도로 같은 시간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외의 모습을 많이 보았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의외로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충분히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그는 이번에도 차로 나를 데리러 왔다. 형광 연초록 맨투맨을 입고 운전하는 그의 모습 너머로 이미 한 번 보았던, 익숙해질 틈도 없이 시리도록 붉은 차 내부와 어지럽게 자리 잡은 캐릭터 인형들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문득 ‘내가 이 차에 또 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웃음은 즐거움이 아니라, 조금은 밀려오는 현실감각에서 오는 마음이 내뱉는 헛웃음 같았다.

그가 사는 건물은 꼭대기 부분에 초록빛 불이 반짝이는 건물이었다. 전에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는데, 나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는 내 모든 신경이 그의 눈, 그의 웃음에 집중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도 초록색이 만연했다.

순간, "얘가 이래서 오늘 연초록을 입고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아주 커다란 화분이 양쪽으로 서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주 작고 작은 화분이 그 커다란 화분 안에 숨듯 심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모순적이고, 보기와 다르게 볼품없어 보였는지.

그의 집은, 마치 그의 차 내부를 확장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붉은색이 여기저기 난무했고, 정신없이 많은 그림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각종 사이즈와 종류의 캐릭터 피규어들, 그리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러그까지 놓여 있었다.

'그래, 너의 취향이 이렇구나. 정말 확고하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도, 이제는 이 촌스러움이 왠지 익숙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우리는 전에 이야기 나눴던 영화들 중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하나를 골라 보기 시작했다. 맥주 한 캔을 사이에 두고, 보는 내내 이 장면은 왜 이상한지, 저건 왜 웃기는지 토론하고, 공감하고, 또 깔깔 웃었다.

그가 생각보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매치가 잘 되지 않으면서도, 그와의 시간이 더 가볍고 재밌게 느껴졌다. 내 되지도 않는 영어로 떠드는 이야기도 그는 잘 들어줬고, 그걸 받아쳐주며 웃어주는 그가 괜히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소파에 앉은 내 자세가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는 걸, 문득 느꼈다.


그리고 그때. 영화가 끝날 무렵, 그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키스해도 돼?”

"응, 돼."




우리는 그렇게 몇 번 더 영화를 함께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아마 70%는 영어로 떠들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단순한 일상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 해석, 장면 분석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더 많고 다양한 단어를 쓰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점들이 점점 더, 내 마음을 그에게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그가 고른 과학 다큐멘터리와 예술 영화의 경계쯤에 있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내용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이 어려웠고, 말은 너무 빨랐고 단어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화면을 따라가느라 진땀을 뺐고, 중간중간 그의 설명을 들으려 했고 그의 의견을 이해하려 했지만 내 안 되는 영어로는 집중도, 감정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갑자기 '공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재밌어서가 아니라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간, 그게 처음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길고 긴 영화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자꾸만 내 눈은 시계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봤는지 그가 물었다.

"집에 가고 싶어? 데려다줄까?"

"아니야."

괜히 그가 고른 영화에 흥미를 못 느끼는 게 미안해서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잠시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그는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오늘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래도 혹시 가고 싶으면 데려다줄게."

'아... 삐졌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긴 영화가 끝났고,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문장만 떠올랐다.

'당장 집으로 가자. 피곤하다.'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으며, "영화 너무 어려웠는데, 재밌었어"라고 이야기했다. 거짓말이었다.

그때, 그가 아련한 눈빛과 그 특유의 눈주름 웃음을 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미안, 피곤해."


그렇게 그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 그 짧은 몇 분 동안 우리가 만났던 모든 시간보다 더 많은 말을 떠들었다.


우리는 밝게 웃으면 ‘잘자’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에 잘 도착했다는 그의 문자.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