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9
생일이 다가온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이번 생일엔 무엇을 하고 지낼지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그동안의 생일들도 함께 떠오른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매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커다란 상 위에 쌓인 김밥과 피자 그리고 알록달록한 미제 케이크.
때로는 공주가 그려져 있었고, 때로는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져 있었다.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 함께 나눠 쓰는 작은 고깔모자. 그리고 내 뒤에 쌓인 선물들. 축하 노래가 끝나면 함께 놀이터로 뛰어나갔던 그런 생일이었다.
사춘기가 들어서면서는 친구들과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 심취했다. 그 시기가 지나 20살이 지나니 생일은 연인과 함께 하는 날이 되어버리더라. 그리고 사회에 나오니 생일에 울려대는 카톡선물에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짐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거의 누군가와 꼭 함께 보냈었다.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나의 생일을 기대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생일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즐겁고 설렜지만 막상 당일의 생일은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대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저 설레고 즐거웠던 그 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도파민 때문이었을까?
이번 생일은 달랐다. 일단 준비해 줄 사람이 없고, 함께 편하게 시간을 보내자고 할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혼자 나를 위한 생일을 맞이해야 했다. 근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막상 혼자만의 생일을 챙기려고 하니 내가 무엇을 하며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함이 밀려왔다. 맛있는 와인 한 병을 마시면 만족할까? 밖에 나가서 햇빛을 쐬면 만족할까? 내가 케이크를 좋아했던가?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알아봐 주고 기억해 주고 내가 있는 곳과 시차를 계산해 가며 축하 연락을 보내주었다. 이 짧고도 긴 문장에 차곡차곡 눌러 담은 것이 그리움과 추억 그리고 애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랑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
그때 마침 캐나다에서 새로 사귄 친구가 연락이 왔다.
"내일 하키 중요한 게임전인데 보러 갈래?"
하키, 그래 맞다. 내가 요즘 하키에 빠져있었다. 부담스럽지 않고 타이밍 좋게 할 일이 생겼다는 것도 좋았다. 빠르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가자!"
생일 당일, 우리는 Downtown에서 만났다. 중요한 경기 날이어서 그런지, 토론토는 파란 유니폼 물결로 가득했다. 스포츠 펍에 자리를 잡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길치에 이제 막 캐나다에 온 나로서는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친구가 이끄는 대로 TV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며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별 내용 없이 그저 떠들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대화가 그리웠던 걸까? 자리를 잡고 앉아 시원한 라거 한잔을 시켜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내 하루는 어땠는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는 갑자기 부스럭거리며 말했다.
"선물이 있어."
그러면서 가방에서 빨간 주머니를 꺼냈다. 빨간 주머니 안에는 친구의 고향에서 전통의상을 입을 때 착용하는 목걸이와 귀걸이였다. 내 생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한번 내가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했던 거였다. 놀라기도 했지만 다정함은 정말 지능이라는 걸 다시금 인정했다. 생일이니까 나가자고 이야기했으면 내가 부담스러울 거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날 우리가 응원하던 팀이 굴욕적인 패배를 맞이했지만, 2시까지밖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곳에서 나를 이끌고 주변에 유명한 술집을 다 점프하며 데리고 다녔다. 백수인 나와 다르게 출근하는데도. 혼자서는 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분위기의 술집들을 다니며 그렇게 이번 생일도 누군가가 만들어 준 생일을 건네받았다.
혼자 보내는 생일은 분명 의미가 있었겠지만, 함께 웃고,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 나눴던 그 순간들이 내 마음을 훨씬 더 오래 따뜻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선물보다 귀했던 건 그날을 기억해 준 마음들, 그리고 기억만 하지 않고 함께 하자고 말해준 그 마음이었다.
크게 준비하지 않아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참 묘한 위로가 된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생일은 충분히 괜찮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생일을 보내는 방식은
누군가와 함께 웃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