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바뀌는 자리

캐나다 워홀 도전기_10

by 혜주

저번 도서관에서 만났던 선생님에게서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본인의 어시스턴트가 내 일자리 찾기를 도와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이 나에게 직접 연락을 줄 거라며, 통화 후 약속을 잡아보라고 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이름은 티제이(TJ), 여성분이었다. 만나서 이력서와 원하는 일자리 등을 이야기 하길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일정이 꽉 차있어 우리는 거의 한달 뒤로 미팅 약속을 잡을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최대한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면서 언제라도 좋으니 비는 타이밍이 나면 바로 연락달라고 말했다. 그 마음이 통해서 였을까, 얼마뒤에 TJ에게 문자 하나가 날라왔다. 다음주에 봤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동안 썼던 가지각색의 이력서와 커버레터 등을 프린트해서 TJ를 만나러 출발했다.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도착 할 쯤 멀리서 보이는 사무실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달랐다. 아무도 없는 듯한 2층짜리 밤색 건물, 고장난 엘레베이터 그리고 복도식으로 줄지어진 사무실들 사이에 무거운 청록색 문이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30분 일찍 도착한 나를 반기는 건 데스크에 앉아서 도넛을 먹는 직원뿐이었다.

"안녕하세요. TJ와 미팅이 있어요."

"아, 기다리시면 될 거예요."

가볍게 웃으며 온 이유를 이야기 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근데 이상하게 내 머리 위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오늘 날씨 꽤 좋아서 반팔로 왔는데 이상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며 바람의 정체를 살피고 있을 때, 저 멀리서 TJ가 걸어왔다. 그녀는 두꺼운 맨투맨을 입고 있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도 똑같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기에 서로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에어컨이 고장 나서요. 계속 히터가 나오고 있어요."

그녀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개인 사무실로 이동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TJ는 이 일이 정부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새로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 내 경력을 가지고 어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내가 조금 사적인 질문들을 할텐데 미리 사과할게."

조금 당황했지만, 별 것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 성적 지향

- 내가 나를 어떻게 지칭하는지 (여성, 남성, 그 외 등)

- 실제 나의 출신

- 몸에 불편함이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서 '정말 취업을 하는데 이런 것 까지 물어본다고?' 라는 생각이 들어 질문했다.

"혹시 캐나다에서 취업할 때는 이런 질문들이 꼭 필요한 건가요?"

TJ는 히터 때문인지, 내 질문에 당황한 건지 구분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정보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지원을 미리 준비하는 데 필요해요. 이곳에선 이런 게 불이익이 되지 않아요."

이 대답은 나를 놀라게 했다. 사실 나는 위의 사적인 질문을 들었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동성애자라면?'

'만약 내가 딱 구분 짓는 성별이 아닌 나를 그들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 나를 직접 보기도 전에 편견을 갖게 되진 않을까?

이런 정보가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을까?

하지만 TJ의 대답은 그런 내 우려를 완전히 꺾었다.

오히려 그 질문들이 차별이 아니라 배려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내 좁은 생각에 묵직한 한 방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이야기한 후, TJ는 나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해줬다. 유치원 보조 강사, 한국어 강사, 마케팅 업무 등.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줄 테니 확인하고 답을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보다 괜찮은 제안이었는데, 괜히 뜬구름 잡는 기분'이 들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면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는데 그 전에 캐나다에 경력하나 없고, 심지어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데 붙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오늘의 이 자리가 내 안에 일자리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어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지원할 수 있는 사이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이트들이 있었다.

내가 찾은 사이트들은 주로 이 사이트들이었다.

- Indeed

- 대한민국 총영사관

- 재외한국문화원

- Government of Canada

- Monster Jobs

사이트마다 수많은 공고들이 올라와 있었다. 최근 강사 경력을 살릴 것인지, 완전히 새로운 회사를 목표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파트타임이라도 일단 시작할 것인지. 선택지는 많아 보였지만 확신은 없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한국인들이 자주 이야기 하기로는, 보통 서버일을 하면 팁과 함께 꽤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나도 그 이야기를 기억하며, 서버 일도 열어두고 살펴봤다. 근데 내가 살고 있는 Mississauga를 중심으로 위치를 잡으니 이 동네는 진짜 일자리가 많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Downtown과 비하면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나는 경기도 사람이기에 Downtown까지 1시간 30분 출퇴근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고용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최대한 Mississauga에 올라온 목록들을 다 집어넣기로 했다.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집이 가까우면 무작정 이력서를 집어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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