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는 이유를 알아간다

캐나다 워홀 도전기_11

by 혜주

이때는 내가 이력서를 넣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 군데서도 연락을 받지 못한 채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이곳은 연락이 굉장히 느리게 오기 때문에 맘을 비워놓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빠르게 피드백을 받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인 나에게 그 말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마음에 돌덩이가 앉은 것처럼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다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그냥 주저앉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마음이 조급했는지 잘 자다가도 새벽에 갑작스럽게 눈이 떠지고는 했다. 취업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면서 내 이력서를 열람했는지, 더 지원할 곳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뭔가 문제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답이 없는 이 시간들이 나를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점점 따뜻해지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와인이 생각났고, 언니는 커피를 떠올렸다. 그래서 우리는 둘 다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는 글을 쓰러, 언니는 책을 읽으러 향했다. 오래간만에 나오는 북적거리는 공기에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지만 사람이 점점 많아질수록 알 수 없는 짜증이 올라왔다. 아마도 내 안에 있던 불안과 초조가 엉켜 올라온 것이 아닐까?

도착한 카페는 서점이었는데 그 안에 작지만 긴 테이블이 있었고 와인, 커피 그리고 간단한 디저트류를 팔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지만 사람들이 가득한 굉장히 인기가 많은 곳이었고, 자리를 비집고 헤더 언니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글을 쓰고 있을 무렵, 내 핸드폰에 처음 보는 낯선 번호가 찍혔다. 직감적으로 ‘이건 내가 지원한 학교에서 온 전화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올라왔다.

‘전화로 내가 잘 말할 수 있을까? ‘

하지만 그런 생각을 마칠 새도 없이 반대편에서 상대방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력서 확인하고 연락드렸어요.

면접 보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맞춰보고 싶은데, 언제가 괜찮으세요?”

생각보다 적극적인 제안에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면접 일정을 잡으며, 이어지는 질문들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며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제일 걱정했던 질문이 날아왔다.


“혹시 자격증 캐나다에서 따셨나요? “

“아.. 아니요. 근데 그게 문제가 될까요? 제가 맡게 될 업무 필요한 것은 다 가지고 있고 잘하는 부분이고, 다만 캐나다에서 딴 것만 아닐 뿐입니다.”

“아.. 미안하지만 그럼 안될 것 같아요.”

머뭇거림과 함께 다가온 단호한 대답에 나는 여태 한 말들 중에 제일 빠른 속도로 대답했다.

“그럼 혹시 주 강사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보조도 괜찮고 사무업무도 괜찮아요. 컴퓨터도 잘해요.”

”안될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허무함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카페로 다시 들어가 언니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막막한 내 머릿속에서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때 언니가 말했다.


“그래도 전화 와서 잘됐네. 어떤 이유 때문에 안 되는 지라도 정확하게 알게 됐으니까.”




학교로부터 비슷한 전화를 여러 번 받다 보니 일단 무슨 일이든 시작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올라온 공고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넣었다. 면접 날짜를 잡자는 이메일은 많이 날아왔지만 막상 날짜를 확정한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Square one Mall 안에 있는 식당에서 내일 면접을 왔으면 좋겠다고 빠르게 연락이 왔다.

내 면접을 본 직원은 나에게 제일 먼저 이곳의 사장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국인 사장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던 상황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사실 나에게는 급한 상황이었기에 ‘일단 뭔가를 한다.’는 감각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첫 출근을 하는 날 한국인 이모님에게 해야 하는 일을 배우며 일이 굉장히 단순하고 쉬워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제일 싫었던 건 음식 냄새가 옷과 몸에 배는 거였다. 일 끝나고 집에 오면 바로 샤워를 해야 기분이 나아졌다.

이곳에서 일을 할 때 하루는 나에게 2시간 일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집이 가깝고 어차피 그날의 일정이 딱히 없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나중에 안 사실은 법적으로 하루에 최소 3시간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갑의 요청으로 3시간 이하를 했다면 일급은 최소 3시간을 한 걸로 맞춰서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인 사장님도, 매니저도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고 나도 괜히 부스럼 만들기 싫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입을 닫았다.


그러다 다른 좋은 기회가 생겨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을 때 한국인 사장님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근데 이렇게 짧게 일하고 그만두면, 나는 돈만 버리고 남는 게 뭐죠?”


오래간만에 듣는 진상 문장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상하게 화가 나기는커녕 ’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 나이를 먹고 경험이 좀 쌓였구나.‘ 싶었다. 훨씬 조건이 좋아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최대한 예의를 갖춰 다시 설명을 드렸다.


그러자 사장님은 오히려 더 감정을 격하게 드러냈다.

“ 내 아들이 캐나다에서 변호사를 해! 어떻게 이렇게 뒷통수를 칠 수 있니! 넌 좀 한국인 답지 않다. 이기적이고 정이 없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어쨌든 일한 만큼 돈을 받기로 한 날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손 악수를 건넨 나에게 사장님은 눈을 흘기시며 악수를 하기 위해 새끼손가락 하나를 건넸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크고 작은 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조건에 맞는 직원을 찾아주는 일이었는데, 내가 맡게 될 일은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 사장님을 대상으로 설득하고 계약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회사에서 일하며 낯선 사람들을 많이 대하며 남은 건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이었다. 그때 배운 것들을 생각하면 일은 어려울 것이 없어 보여 면접 날짜를 잡았다. 회사가 꽤 멀리 있기 때문에 걱정했지만 일을 시작하면 일주일에 한 번만 출근하면 된다고 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지역이었는데, 회사가 위치한 Brampton은 인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이고, 한번 도 가본 적 없는 곳이라 가늠이 되지 않았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점점 목적지에 다가 올 수록 ‘아 이거 아닌 것 같은데..‘라는 직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색의 사람들, 이 동네 사람들에게도 나는 ‘외부인‘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눈빛들,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대마초 냄새 등 모든 것들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회사 문 근처에서 대마초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흑인 아저씨 무리들을 보았다. 정말 무슨 영화처럼 모두 한 번에 나를 쳐다보았다.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알았는지 아저씨들은 특유의 친화력과 함께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뭐 찾아? 너 길 잃었어?”

“나 길 안 잃었는데, 그냥 너네가 갑자기 쳐다봐서 놀랬어.”

내 말에 흑인 아저씨들은 깔깔 웃으며 자기들도 내가 여기 있어서 놀랬다고 이야기하며 회사 옆에 위치한 대마초를 파는 상점이 회사 문이라는 장난을 던졌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 내부는 매우 조용하고 안락했다.

마음 편하게 갔던 면접이었지만 질문들이 꽤나 많고 까다로웠다. 각종 상황을 전제시켜 놓고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을 물어보고, 직접 면접관을 설득해 보는 상황,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까지 끝도 없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이쯤 되니 밖에서 들어오는 대마초 냄새를 하도 오래 맡아 슬슬 내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보니 1시간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정신줄을 붙잡고 면접을 마쳤다. 그는 나와 일하고 싶어 했고 계약서를 보여주고 설명해주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말을 던졌다.

“고마워. 근데 계약서는 이메일로 보내줘. 내가 확인하고 일할지 말 지 이야기해 줄게.”


그렇게 나는 그곳을 나와 아직도 밖에 있는 흑인 아저씨 무리들과 인사를 나눈 후 빠르게 우버에 올라탔다.




그날은 이모부가 청설모와 다람쥐에게 땅콩을 주러 가자고 근처 공원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간 날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발견한 Visual Arts Center가 공원에 있어 함께 방문했다. 신나게 구경하는 나와 다르게, 이모와 이모부는 슬쩍 둘러보더니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모가 내 이름을 불러 걸어갔을 때는 그곳에 채용 관련 담당자가 서있었다.


다가오는 여름 캠프를 위한 미술 선생님을 채용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담당자와 악수를 나눴다. 채용 담당자는 굉장히 넉살 좋은 사람이었고, 그 자리에서 꽤 많은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도 걱정되는 마음에 잠 못 이루며 한동안 달달 연습했던 면접 연습이 꽤 쓸모가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로 마무리하고 있며 ‘이력서를 오늘 중으로 보내겠다.‘ 고 이야기를 하고 돌아가려는데,

담당자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직 30살 안 됐지?”

“아.. 나 33살인데?”


알고 보니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들의 채용은 무조건 30살 이하여야 했다. 이렇게 또 거절당하는 새로운 이유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경력부족도, 자격증 불일치도 아닌

그저 ‘나이‘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묘했다. 화가 나거나 슬프다기보다는 앞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또 안 된 이유 하나 알았네.’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짧은 기간 안에 이력서를 최소 100개는 넘게 넣었다.

누군가는 내 이력서를 열어보지도 않았고, 어떤 곳은 면접을 보자고 했다가 학교를 다닌 나라, 자격증, 나이, 캐나다에서의 경력 없음 등의 이유로 돌아섰다.


수많은 거절을 당하고도 무작정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밤낮을 고민하며 이력서를 수정하고 이유를 찾아내며 겪은 이 많은 ‘안 됨’ 끝에 남은 건 이상하게도 담담함이었다.


결국 헤더 언니가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지금 안 되고 있는 이유를 하나씩 찾아내고 있었다.

그 이유들을 알면 알수록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또렷해져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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