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보다 퇴근이 더 어렵다

캐나다 워홀 도전기_12

by 혜주

그렇게 취직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던 도중, 코스트코에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코스트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복지가 다른 곳에 비해 꽤나 좋다는 것, 그리고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그 '복지'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고, 워홀러인 내게는 그다지 큰 메리트도 없다고 느껴졌다. 흥미로웠던 건 코스트코는 지인이나 가족의 추천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외부인은 걸러낸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운 좋게도, 나는 이모부가 코스트코에서 꽤 오랜 기간 일을 하고 있었고, 평판도 좋아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력서를 접수하기 위해 지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질문도 많았고 추천서도 필요해 한국에서 챙겨 온 추천서들을 주섬주섬 꺼내 붙여 넣었다. 이후에 원하는 시간을 적어내라는 칸에 교통시간을 확인하며 가능한 시간대를 적어서 제출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유연한 스케줄이었다. 결국 이모부의 권유로 모든 시간이 가능하다고 수정하 제출했다. 이게 바로 가족 버프인가.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고, 서류통과 후 2차 면접을 보기 위함이었다.

막상 면접을 보러 가려고 준비하다 보니 고민이 앞섰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슬랙스에 셔츠 정도는 기본으로 입었던 것 같은데, 의복에 꽤나 자유로운 이곳에서는 어떤 분위기로 면접을 보게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깔끔하게 입으라는 이모의 말에 청바지에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리곤 대충 머리를 몇 번 빗고는 '이 정도면 깔끔하지.'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출발했다.


코스트코에 도착하니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았다. 한국에서 살던 집 근처에도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코스트코가 있었는데, 언제나 그 큰 건물을 빙빙 둘러 줄을 설만큼 사람이 많았기에 잘 가보지 않았는데, 근데 이 북적거리는 공간에 내가 면접을 보러 들어선 것이다.

이모와 이모부는 이곳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고, 그들 앞에 소개되는 내 모습에 자연스럽게 '행동 똑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이곳은 외부인을 받지 않는 거구나.'


그런 가벼운 깨닫음을 얻으며 기다리니 곧 매니저와 슈퍼바이저가 나와 함께 면접실로 들어갔다. 내가 제출한 이력서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면접이 진행되었다. 동료들과의 갈등 상황, 불만 해결 등 대부분 기본적인 것들이었고 대답해야 할 것은 많았지만 어렵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매니저 Jay는 콕 집어 유연한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고민했다. '버스 시간이 없는데, 걸어갈 수도 없고,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그러다 결국 나온 대답은 '원하는 시간에 맞춰볼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제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빠른 시일 내로 최종 면접 연락을 주도록 하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냥 모든 시간이 다 된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어던지고 누워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쯤 슈퍼바이저 Tasha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시간 뒤에 최종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다시 옷을 입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빨리 말할 거였으면 '그냥 거기서 놀고 있으라고 하지 왜!'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감이 교차했지만 어쩌겠는가. 다시 옷을 입고 최종 보스를 만나기 위해 준비했다. Tasha는 통화 내내 "절대 늦으면 안 된다"는 말을 천 번은 말한 것 같았다. 원래도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각을 했으면 이렇게 강조할까 싶었다. 이모에게 물어보니, 이모부가 일하는 부서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당일에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거나 지각은 기본이라고 이야기했다. 근데 쉽게 자를 수가 없어서 더 곤욕이라고 한다. '이기적이고도 게으른 이 사람들처럼 살아야 스트레스 안 받고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최종보스를 만나러 도착했다.

최종보스는 나에게 딱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잘할 수 있겠니?"

그렇게 최종면접이 끝이 났다.


첫 출근날, 30분 일찍 도착한 나를 Tasha가 반겨주었다. 직원 휴게실에 앉아 오리엔테이션을 기다리는 동안, 작은 체구의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작은 키에 놀랐지만 구두와 함께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에 오늘 나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들을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인사를 건네며 이름을 물어보니 이름도 Lovely였다. 세상에.

필리핀에서 온 Lovely는 나와 함께 푸드코트로 들어온 신입이었다. 반가움과 함께 재미있던 건 나는 이곳에서도 키가 큰 편이라 보통 사람들이 내 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위아래로 한번 흩어보는데, Lovely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쳐다볼 정도로 작았다. 심지어 우리가 대화할 때는 Lovely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몸을 옆으로 반쯤 기울여 듣고는 했다. 이 만남에 웃음이 나왔지만, 다정하고 밝은 그녀의 에너지가 참 맘에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에는 각 부서 신입들이 참여했다. 내가 일하게 될 부서를 투어 하고, 계약서와 복지, 근무 조건 등 대체적으로 서류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풀타임 급여를 준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양한 억양을 고려해 설명을 듣다 보니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 수업 듣는 이 기분은 집중력을 한 시간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거기다가 이곳에는 나처럼 워홀을 온 사람은 한 명도, 정말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못 알아들어도 번뜩 손들고 다시 말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 빼고는 다 알아듣고 있었으니까.

뭘 하는지 놓쳐버렸을 때는 앞에 앉은 똑 부러지는 Lovely를 눈팅하고 옆사람들에게 눈치껏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코스트코는 규정집을 책으로 만들어 매년 배포했다. 우리는 그 책을 하나씩 받아 함께 흩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책에는 정말 모든 것이 다 적혀 있었다. 휴가, 페이,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 등 그냥 일하다가 질문이 생기면 물어보기 전에 그 책을 찾아보면 답이 나왔다. 그리고 최고의 복지는 바로 코스트코 멤버십 카드였다. 나 외에 세 명에게도 제공되며, 일반 카드가 아닌 블랙카드였다.


우리는 이 지루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푸드코트를 잠시 둘러보러 갔다. 내가 일하게 될 공간은 생각보다 크기가 있었고, 잠깐 인사를 나눴지만 정말 다양한 인종이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했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 어려웠다. 이니셜로 불러도 된다는 말도 오갔지만, "이름은 꼭 제대로 불러주고 싶다"는 그들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들은 하나만 외우면 되지만, 나는 수십 개를 외워야 한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거기다가 다들 다른 나라에서 왔으니 이름도 제각각의 스타일이라 더욱 쉽지 않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른 부서의 마감을 도와주게 되었다. 고객들이 구매하려고 했다가 하지 않은 물품들을 돌아다니면서 수거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쇼핑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커다란 카트에 실려있는 물건들을 끌고 다니며 제자리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트를 끌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이걸 다 언제 찾아!"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얼른 이 카트를 떨쳐내고 싶은 마음이 합쳐져 지나가는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도움을 요청했다. 다들 참 착하게도 손수 해결해 주려고 하거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누구 하나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카트 하나를 쳐내고 '이제 끝났겠지.'라는 생각으로 걸어간 곳에는 수십 개의 꽉 찬 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장, 빨리 끝내는 게 소용이 없다.'

주위에 다른 신입들을 둘러보니 다들 여유롭게 찾으면 찾는 대로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래야겠다는 생각에 적은 물건이 담긴 카트를 골라 끝이 없어 보이는 코스트코 안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물건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한 바퀴를 돌았다. 돌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고 그때 그걸 제자리에 두고는 했다. 근데 몇 바퀴를 돌았는지 감도 안 잡힐 때쯤 되니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 같이 빨리빨리 끝내고 집에 일찍 가면 안 되는 것인가.' 빨리빨리 민족의 생각다웠다. 하지만 곧 이 의문은 해결되었다. 집에 갈 때쯤 되니 다들 줄을 사무실 앞에 서있었다. 가만 보니 일을 아무리 일찍 끝내도 정확히 퇴근 시간이 되어야 퇴근 등록, 이른바 '펀치아웃'을 하고 집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시가 되어 일을 다 끝내지 못한 채 담당자에게 "가봐야 한다"라고 하자, 그는 "일이 끝나야 퇴근 가능하다"라고 했다. 속으로는 '근데 그거는 내가 이 부서 사람일 때의 일이지, 나는 지금 오리엔테이션을 온 것뿐인데?'하고 벌써 말했지만, 입 밖으로는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Lovely가 저 멀리에서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내가 카트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건 어떻게 해?"라고 입모양과 몸짓으로 설명했다. Lovely는 눈을 크게 뜨고는 손을 빠르게 흔들면서 입모양으로 말했다. "도망쳐." 그 모습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Lovely와 함께 도망쳤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밤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퇴근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어쩐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푸드코트로의 첫 출근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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