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시간의 무게 끝에서

캐나다 워홀 도전기_13

by 혜주

코스트코 푸드코트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딱히 음식을 만들거나 하는 것은 없었고, 대부분은 이미 준비된 음식들을 데우고 조립하는 단순한 작업이었다. 보통 한 타임에 3명-5명 정도가 함께 일을 했지만, 종종 일하는 사람이 많아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밀려 들어오는 주문서에 비해 다들 움직임이 느렸고, 어쩔 때는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나 혼자 나갈 음식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손님들을 보면서 '나라면 벌써 와서 뭐 하냐고 물어봤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고, 느림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 틈에서 속이 터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남들보다 빠르게 배우고, 일을 금방 처리하는 '빨리빨리 민족'의 효과인지, 매니저와 슈퍼바이저는 나를 굉장히 맘에 들어했고 점점 시간을 많이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계약할 당시에는 일주일에 25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2시-11시 풀타임 근무를 받으며 주당 40시간을 받고 있었다. 한국에서 하루 보통 10-12시간을 일하며 살아온 터라 사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머리를 쓰던 일과 몸을 쓰는 일의 강도 차이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오면 밤 12시 넘었고, 제대로 못 자던 예전과 달리 침대에 누우면 기절하기 바빴다. 아침에 눈뜨면 10시가 넘었다. 2시 출근을 하려면 적어도 1시간 전에는 나가야 하는데 10시에 눈을 떠 씻고 밥을 먹으면 12시였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도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고작 한 시간 남짓뿐이었다.


게다가 매일 출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루틴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스케줄은 2주 단위로 나오지만, 아무 말 없이 결근하는 동료들 덕분에 일정이 자주 바뀌었고, 나는 약속을 잡았다 취소하고, 또다시 잡았다가 미루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되기를 몇 주가 지나자 내가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기보다 예민한 나는 날씨 영향도 많이 받고, 햇빛을 쬐는 시간이 있냐 없냐에 따라서도 체력도 감정도 오락가락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이곳 캐나다의 날씨가 좋아도 나는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워킹홀리데이라는 이름에서 '홀리데이'는 사라지고, '워킹'만 남은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 건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건지.

만약 후자라면 오히려 한국이 나았을 텐데 왜 굳이 여기 있는지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해결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가늠이 안 갔다. 애초에 25시간을 계약했고 내가 40시간을 받을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한테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모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모는 지금 상황이 오히려 좋은 거라고, 시간을 더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돈을 더 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돈을 위해 살았던 적'이 잘 없던 나에게는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부자인 것도 아니고 돈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늘 돈이었던 적은 없었다.


매니저에게 시간을 줄여달라고 이야기할지 말지를 고민하다,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 Sanjay에게 전화를 걸었다. Sanjay는 푸드코트에서 함께 일하는 인도인 친구였는데, 곧 슈퍼바이저가 되려고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깨어있었고 우리는 통화하다가 결국 내가 그의 억양을 못 알아들어 결국 그는 차를 끌고 우리 집 앞으로 왔다. 드디어 이야기할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달려 내려가 차에 타자마자 나는 속사포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듣자마자 '어떻게 그게 고민이냐고.'이야기하며 큰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남들은 시간을 더 받지 못해 안달인데 너는 어떻게 시간을 너무 많이 준다고 불만이냐."


그 말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그들에게 이곳은 '삶의 터전'이지만, 나에게 이곳은 아직 '머무는 곳'일뿐이니까. 나에겐 일이 전부가 아니고, 그들에게는 일이 곧 생존일 수도 있는 상황. 환경이 다르면 원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 말은 이곳에서 내 이야기를 제대로 공감해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Sanjay는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정규직 계약에 좋아 보인다고 조언했고, 공감을 하면서도 나는 또 다른 걱정이 들었다. 내가 정규직 계약을 제안받으면 정말 매주 40시간을 일해야 하는 건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었다. 해결은 안 됐지만 마음속에 남아있던 이야기들을 Sanjay랑 떠들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했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새벽 3시가 다 돼 있었고, 졸음이 밀려왔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그냥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란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유우 부단한 사람이었던가.

그렇게 또 일주일이 흘러갔다.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한 채 주 40시간을 꼬박 채워 일하고 있었고, 일-집-일-집의 반복은 내 삶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었다. 글을 쓸 시간도, 햇빛을 받을 시간도, 운동을 할 시간도 없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쯤 되니 답답함과 화가 함께 차올랐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그러던 중, 마침 몇 주 뒤의 근무표가 올라왔고, 다가오는 캐나다데이를 끼고 이틀 연속으로 쉬는 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건 나에게 주어진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노트북을 켜 3일 정도 머물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안 돼, 기차표와 숙소 예약까지 끝냈다.


어디든 좋았다. 숨 좀 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몬트리올로 가는 날짜를 달력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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