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14
살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있다.
시작은 코스트코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모두들 지나가면서 "네가 James의 조카구나."라고 인사를 했고 그 인사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끌어당겼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다.
그와의 첫 만남은 굉장히 독특했다. 그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추면서 다가왔다. 그냥 몸을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춤을 추면서.
'뭐야, 웃기는 놈이네.'라고 생각했고, 이곳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있어서 그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는 스페인어로 이야기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멋쩍게 웃는 나에게 계속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며 춤을 췄다.
그렇게 몇 주 동안 그는 꾸준히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항상 춤을 추며 인사를 하고, 멀리서도 나를 보면 뛰어와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스페인어뿐이라 대화는 거의 되지 않았지만, 주먹 인사를 하며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Nathan와 친해졌었고, 난 Nathan이 꽤 맘에 들었다. 그는 중년의 아저씨였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도 스페인어를 알고 있었다. 재밌는 건 그의 아내가 내가 여기서 일하며 마음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Ava였다는 것이다. 부부는 닮는다고, 둘 다 그렇게 사람들이 순하고 좋았다.
Nathan와 Ava, 그리고 그의 다른 친구들도 항상 나에게 그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쉬는 시간이 겹칠 때면 그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스페인어였지만 다들 어쩜 그렇게 목소리가 큰지 그 난장판에 눈길이 갔다.
그러다 어느 출근 날, 저 멀리서 그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항상 착용하는 커다란 미러형 선글라스와 함께 환한 하얀 이가 반짝거렸다. 나에게 달려온 그가 나를 와락 껴앉으며 뜬금없이 영어로 이야기했다.
"나 너랑 친해지고 싶어."
꽤 당황스러웠지만 내 나이 3N연차 이 정도는 뭐 가볍게 받아 줄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자."
그는 내 대답에 환하게 웃으면 나를 쳐다보는지 알 수 없는 그 선글라스 속에서 이야기했다.
"오늘 몇 시에 끝나? 내가 너 집에 데려다줄게."
하지만 이미 이모부가 데리러 오시기로 했기에 나는 깔끔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날, 이모부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몰라 외적인 모습으로 설명했다. 이모부는 그 아이는 장애인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이모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또 며칠 뒤 내가 마무리 일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그는 나에 대해 물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몇 살인지 등 조금은 사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그가 여태 본 것과 다르게 차분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사람들이 가장 많이 놀라는 나이에서 그도 몇 번을 되물어보며 재차 확인했다.
이때를 계기로 우리는 조금 더 친해진 것 같았다. 우리는 꽤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고, 쉬는 시간이 겹치면 그는 굳이 내 옆에 앉아 음식을 나눠주고 말을 시켰고, 그 와중에도 친구들과는 스페인어로 떠들었다.
그렇게 꽤 친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그는 내 번호를 물어보았다.
"핸드폰 줘. 찍어줄게"
그는 말을 더듬으며 사라졌다. 어디선가 달려오는 그는 나에게 펜과 휴지를 건넸다. 그 문 틈사이로 들어오는 다급한 손과 그 손에 들려있는 휴지가 어찌나 웃기는지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렸다. 나는 그가 전해 준 휴지에 번호를 적어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문자 할게."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온 문자에는 인사와 함께 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Miguel.
그날 이후 그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고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영어는 서툴렀고 대화는 엉망이었지만 집요했다. 답을 하지 않으면 몇 시간 뒤 또 연락이 왔다. 이때쯤 아 얘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선을 그으며 많은 대화를 삼갔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답답했는지 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나 너 좋아해."
그 문자를 보자마자 답장을 던졌다.
"응 나도, 친구로서.^^"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고, 계속 나에게 Baby, My Love 등을 사용하며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고, 나는 또다시 칼을 들었다.
"미안한데 나는 로맨틱한 관계에는 관심이 없어. 특히나 너는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리고 이모부에게 그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이번엔 이름을 아니까. 이모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걔 나한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 대머리에 뽀뽀도 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원래 약간 사랑을 던지는 스타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친구로서 아침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날의 그는 ‘사람 참 착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길에 누가 버리고 간 깨진 병을 손으로 야무지게 주워 버리기도 하고, 매너가 몸에 베인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보통 굉장히 조심성 없는 나지만 왠지 이 사람은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Sanjay와 이야기를 나눴다. Sanjay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강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걔 유부남이야."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날, 퇴근길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빨리 그치기를 바라며 일터를 나설 때쯤, 그의 차가 보였다. 그는 "네가 비 맞고 갈까 봐. 그냥 기다렸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질문했다. "너 유부남이라며?"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맞아.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언제나 진실해야 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순간 어이가 없어서 소리를 내 웃으며 말했다.
"아내가 있으면 그 어느 누구에도 Baby, My Love 같은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던 어느 날, Ava의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날 이디엠 페스티벌을 갈 예정이었지만 어차피 파티 장소는 클럽인지라, 페스티벌이 끝나고 잠시 들리기로 했다.
그렇게 간 라틴 클럽에서 만난 그는 계속 조용히 날 챙기고 쳐다봤지만, 플러팅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잘 마무리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그는 갑자기 물었다.
"키스해도 돼?"
이 당황스러운 질문에 내가 한 대답은 “뭐라고?”였다.
그렇게 그는 내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날렸다. 급하게 밀치며 입을 닦는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밖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미친놈.'
그는 반대편 창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 안 더러운데. “
그 말에 짜증을 내며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냐? 이 문제아야."
그의 태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