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15
Miguel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연락했고, 일터에서도 나를 찾아다녔다. 피하려 해도 그의 시선은 늘 따라왔다. 그러던 중, 또 다른 불쾌한 경험이 찾아왔다.
동료와 함께 휴게실에 앉아 신나게 떠들고 있던 내 옆에 그가 앉았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 스페인어로 뭐라고 떠들고 웃고 있는 그가 짜증 났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내 동료가 먼저 쉬는 시간이 끝나 복귀했을 때 멀리 잇는 그의 친구가 핸드폰을 들어 나와 그의 사진을 촬영하려는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너 내 사진 찍냐?"
그의 친구는 놀라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고 그 내려놓은 핸드폰 화면은 카메라가 켜져 있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가 내게 귀띔해 줬다.
"휴게실에서 네 얘기하고 있더라. 불쌍한 동양 신입 여자애라고"
동료가 멀리서 손으로 집어준 사람들은 다 그의 친구들이었다. 웬만하면 화가 잘 안나는 나도 이쯤 되니 화가 치밀었다. 다음 날 출근하며 그들의 일터를 지나갔다. 흘끗 곁눈질로 쳐다보는 그들을 놓치지 않고 나는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당황하며 인사를 받던 그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휴게실에서 내 이야기했다며?"
동공이 흔들리던 그들은 ‘자신들이 아니다. 너 이야기가 아니다.‘ 등등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재밌는 이야기인데 그래?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와서 직접 물어봐도 돼."
그 뒤로 그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가 받아주지 않는 나에게 속상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선을 넘는 문자를 보냈다. 성적인 문자에 나는 짧게 답을 보냈다. “선 넘었다. 너.”
그의 사과에도 나는 답하지 않았고 계속되는 거절에도 달라지지 않는 그의 모습에 결국 이모부에게도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매니저이자 오래 일한 그에게 상황을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이모부는 그와 직접 대화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순식간에 자세를 낮추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 이 사람은 권력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나에게는 그렇게 집착하며 무례했던 사람이, 이모부에게는 순식간에 순한 양이 되었다.
며칠 뒤, 그는 나에게 다시 다가와 말했다.
"나는 널 케어해 줬을 뿐인데, 왜 네 이모부가 화난 건지 모르겠다."
그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을 움직이는 건 권력과, 그리고 성별이라는 것을.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신입이고 여성이라서, 나를 무시하는 그에게 전보다는 더 강하게 나가야 했다.
나는 조목조목 하나씩 강하게 따져가며 그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며 말했다.
"한번 더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꼭 널 이곳에서 잘리게 하겠다."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 너에게 하는 행동, 달라질 거야.”
그 말이 어찌나 웃기는지, 나는 깔깔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아내에게 충성심을 보여줄 거야? 네가? 퍽이나.”
그는 내 말에 동공이 흔들리며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하하하 웃으면서 어깨를 강하게 툭 치며 말했다.
“야. 열심히 기도해. 너 죄 많다.”
일터에서 이런 시선은 사실 Miguel와 그의 친구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손님들 속에서도 꽤나 많았다.
어떤 날에는 자신이 키오스크를 통해 핫도그 두 개를 주문해 놓고 자신은 핫도그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는데 기계가 잘못 인식한 거라고 박박 소리를 지르며 우기는 손님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우리는 기계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손님이 직접 고른 거다. 맘에 안 들면 환불하고 다시 주문해라.'라고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고 계속 소리 지르고 우기는 모습에 남자 동료를 불렀다. 그는 내 남자동료가 말한 '우리는 주문대로 만든다.'라는 한마디에 바로 사과를 하고 핫도그 두 개를 받아 돌아갔다. 정작 나에게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또, 하루는 한 중년의 남성 손님이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일어났다.
그는 내 옆에서 일하고 있던 남자동료에게 정중하게 캐러멜 시럽을 많이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 동료는 나에게 주문을 넘겼다. 그 손님은 나를 보며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캐러멜 시럽 많이 주면 내가 너랑 결혼해 줄게."
이쯤 되니 신입, 여성, 동양인. 그리고 늘 웃고 있는 서비스직, 이 조합이 나를 약하고 흥미로운 대상으로 만든 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매일 점점 더 디폴트로 달고 있는 웃음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고, 웬만하면 화내지 않고 넘어가던 내가, 이제는 아주 작은 행동에도 가시 하나쯤은 세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다음 타자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른 건 한 인도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이곳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3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녔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던 아니던, 분명한 건 이곳은 내가 알던 질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더 이상 순한 웃음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도 나는 혼자라는 게 외롭지만 조금은 안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