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 된다는 것

캐나다 워홀 도전기_16

by 혜주

나는 원래 스포츠 경기를 보지 않았다.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무슨 재미인지 알지 못했다. 내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야구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만의 대화에 낄 수 없는 나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내 관심 밖의 일이라 한 번도 봐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따라 몇 번 가본 야구장에서도 저 멀리 보이는 선수들과 좁은 자리, 그리고 경기를 보는 건지 먹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흥미보다는 오히려 나랑 맞지 않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농구를 보는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별생각 없이 보러 간 곳에서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가까이 보이는 선수들의 모습과 빠른 경기 전환, 순간순간의 긴장감. 그곳의 모든 것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 후로 응원하는 선수와 팀이 생기고,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지만 꾸준히 보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기분을 느껴보니 왜 다들 그렇게 챙겨보고 간절히 응원하는지 알게 되더라.

캐나다를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다음 시즌을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밀려올 정도였다.


"이왕 가는 거 NBA를 보고 오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같은 농구니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캐나다에 도착하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했던 건 단순히 ‘농구 경기’가 아니라, 내가 응원하던 팀과 선수가 해내는 모습 그 자체였구나. 시즌을 함께 할 수 없음에 헛헛함이 밀려왔다.


그런 나에게 이모부의 영향은 꽤 크게 다가왔다. 이모부는 하키 아마추어 경기들을 직접 뛰는 사람이었고, 그 외에도 야구, 피클 볼 등 정말 많고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마침 하키 시즌이었다. 이모부는 매 경기마다 중계방송을 틀었고, 나는 이모부와 이모의 응원 소리에 자연스럽게 거실로 나와 흥미를 가지고 함께 경기를 보고는 했다.

처음 본 하키 경기에서 내가 느낀 것은 생각한 것보다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선수들끼리 감정이 상하거나 조금만 틀어져도 정말 말 그래도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이 너무 자주 나왔다. 그 모습에 너무 놀라 "재네 싸운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이모와 이모부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여기서는 저 정도 싸움은 합법이야."

그리고 이모는 덧붙였다.

"심지어 싸움을 잘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기도 해. Enforcer라고."

그 말은 이해가 잘 가지 않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싸우면서 경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경기를 보며 관찰해 보니 언제나 이 싸움들은 약간 팀에 대한 의리와 분위기를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툭툭 부딪히다가 결국 몇몇 팀원들이 단체로 싸우게 되며 팀원끼리의 끈끈함을 보여주기도 했고, 상대의 기를 꺾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종종 이거는 격투기라고 할 정도로 과격한 싸움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익숙해지고, 하키의 공인 작은 퍽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쯤, 몇몇 선수들이 앞니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모부는 이야기했다.

"나도 전에 경기하다가 앞니가 나간 적이 있어."

퍽이나 스틱에 맞아 앞니가 나가는 일이 흔한 일이라 선수들 중에는 종종 이가 없는 채로 시즌을 보내고 시즌이 지나고 난 후 이를 맞춘다고 한다.

이 과격한 열정과 투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규칙들이 이상하게 굉장히 섹시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도 이 의리 넘치고 가끔은 섹시해 보이기도 하는 싸움에 매료되어 이모와 이모부와 함께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어느 정도는 아마 헬멧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마법의 헬멧'이라고 불렀는데, 평범해 보이거나 눈길이 잘 가지 않다가도 이 마법의 헬멧을 착용하는 순간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다. 갑자기 사람이 잘생겨 보이는 마법. 심지어 골을 담당하는 골 리의 헬멧은 특별하게 꾸며져 있는데 그 헬멧은 치트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외모지상주의였던가.


어느 날은 친구를 만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과 함성 소리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했다. 그곳에서는 정말 많은 푸른빛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응원을 하고 있었다.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들에게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티켓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앱을 깔아 확인해 보니 이 응원을 'Tailgate Event'라고 불렀다. 하키경기는 자리가 꽤 멀리 있어서 화면으로만 봐야 하는 자리의 티켓 가격도 최소 30만 원 정도는 하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서 모여 응원하는 것이 은근 잘 되어있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입장하지 못했지만, 멀리서도 느껴지는 그 열기만으로도 충분히 심장이 뛰었다.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팀이 플레이오프에 왔을 때는 그야말로 매일 같이 경기를 봤다. 우리는 이모의 밴쿠버팀과 이모부의 위니펙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토론토팀 이 세 개의 팀을 중심으로 경기를 봤는데, 미국이랑 붙는 날에는 눈에 불을 켜고 응원했다. 마치 한일전을 보는 기분이랄까.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도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스포츠 바, Tailgate, 직장, 또는 각자의 집에서 하나 되어 응원했던 기억은 나에게 스포츠를 보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기든 지든, 그 안에서 진심을 다한 선수와 팬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조금 더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한국에 있는 내 선수들과 팀이 그립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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