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웃음을 품은 수영장

캐나다 워홀 도전기_20화

by 혜주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콘도인데, 한국의 오피스텔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층의 중간쯤에 헬스장, 수영장, 이벤트 홀 등이 있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엘리베이터만 타면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설렜다. 하지만 막상 가본 날, 입구부터 충격이었다. 샤워장인지 탈의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어지럽혀져 있었고, 수영장 안에는 열댓 명이 반팔 티셔츠와 속옷 차림으로 놀고 있었다. 뭐 동네 계곡도 아니고, 아이와 어른이 뒤섞여 물속을 가득 메운 풍경은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기대하던 수영장이었지만, 나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물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물이 그리웠다. 새로운 운동도 찾아봤지만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물속에 들어가지 못한 허기가 점점 커졌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물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온몸을 감싸는 압박감이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프리다이빙을 즐기는 사람이 드물었고,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따져보아야 했다. 나에게는 단순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스쿠버 다이빙은 멀고 비쌌다. 공공 수영장은 깊이가 얕고 거리가 멀었으며, 호수나 해변은 차도 없는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게다가 한여름에도 물은 얼음장 같아 선뜻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갈증을 풀지 못하고 매일 끙끙 앓고 있을 때쯤, 집 앞에서 매 주말마다 열리는 이벤트장에 참석했다. 간단하게 점심이나 때우려고 음식을 사 벤치에 앉았다. 그때 한 여성이 다가와 물었다.

“여기 앉아도 돼?”

그렇게 우리는 각자 산 음식을 먹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고 있는 일, 취미 등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지나 요즘 최대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대 후반인 그녀는 진지하게 만날 남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다양한 앱을 구경하면서 사람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내가 요즘 찾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바로 앞에 있는 YMCA에 가봐!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하지만 너도 꽤 만족할 것 같아.”

그렇게 나는 우리 집 앞에 YMCA가 있다는 사실과 그곳에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등잔 밑이 어두울 수가 있을까. 위치가 정말 말 그대로 집 앞이었다.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사이트를 열어 확인했다. 가격은 좀 있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고 수영장도 꽤 커 보였다. 일주일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글을 확인하자마자 투어를 예약했다.


투어 날, 걸어서 최대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생각했던 것보다 큰 건물이 있어 놀랐다. 이 큰 건물을 여태 못 봤다니. 농구, 테니스,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니 콘도의 세배는 되는 것 같은 헬스장과 그 주변으로 실내 러닝 트랙까지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레일은 두 개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걷기용, 하나는 러닝용이었다. 투어 시켜주던 사람은 레일에 관심을 갖는 내 모습에 겨울에는 밖에서 운동하기가 쉽지 않아서 여기서 뛰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말을 덧붙여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수영장으로 향했다. 깨끗하고 넓은 탈의실, 작지만 알찬 사우나 그리고 넓고 깨끗해 보이는 수영장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사람들도 다들 내가 아는 그 수영복과 수영모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되었다. 이 것만으로도 나는 이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 쉬는 날, 짐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한국처럼 자동키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항상 자물쇠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락커를 열어 옷을 갈아입고 자물쇠로 잠근 후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실 곳곳에 따뜻한 물로 충분히 샤워를 한 후 들어오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여기 물의 온도가 호수처럼 얼음장이라서 따뜻한 물로 씻으라고 하는 건가?' 하는 걱정을 하며 따뜻한 물로 충분히 샤워를 했다.


그렇게 드디어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은 두 레일 정도를 수중에어로빅에 사용하고 있었고, 네 개의 레일을 속도에 맞춰 수영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가장 느린 곳으로 향했다. 반 걱정하며 발끝으로 온도를 체크했다. 세상에, 물 온도가 방금 샤워한 따뜻한 물과 다르지 않았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신남을 추스르며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천천히 물에 떠있음을 인지하면서 편안함을 느껴가고 있을 때, 이 레일의 반 정도는 3미터 정도 되는 깊이로 변한 다는 것을 발견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 몸을 맡기자 오래 잊고 있던 행복감이 밀려왔다.

더욱 좋았던 것은 한 레일에 해봤자 한 두 명 밖에 있지 않아서 내가 꼭 수영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둥둥 떠있더라도 그 누구도 방해를 받거나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만족의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던 어느 쉬는 날 뒹굴 거리다 늦게 수영장을 가게 되었던 날,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아 레일 수영이 끝나는 시간에 가버렸다. 나를 반기던 사람들은 수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그 수업은 아쿠아로빅만을 하는 시간이었다. 건장한 남자 선생님께서 당황한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안녕, 나는 Regan이야. 지금은 레일 없고 아쿠아로빅만 하는 시간인데 이거 함께 들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 대에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미 서로를 아는 사이들이셨고, 한 명 한 명 문을 열고 들어 올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를 치시며 반가운 인사와 함께 끝이지 않은 수다가 이어졌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멀뚱이 서있는 나를 보며 친절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인사를 건네며 준비물을 가져다주셨다. 그건 텔레토비들이 먹는 스마일 쿠키처럼 생긴 스티로폼 도구였다.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몇몇 할아버지들은 운동은 무슨, 노래를 부르고 물에 떠있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선생님은 머쓱해하는 나를 저 멀리서 지켜보며 엄지를 들어 보이기도 하고, 멈춰있으면 계속 움직이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낯선 젊은이가 있는 모습에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어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아쿠아로빅은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다.

그 스마일 쿠키 같은 운동기구는 가볍지만 물속에서는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걸 들고 노래에 맞춰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또 노즐처럼 긴 튜브를 들고 다리를 걸치고 쭉 펼치고 당기는 운동은 꽤나 많은 균형 감각과 힘이 필요했다.


몸치 박치인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따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가 너무 웃겨 계속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한 시간 넘는 운동을 마치자, 늘 혼자 고요함과 평온함을 즐겨오던 이 공간이 뜻밖의 웃음과 만남을 안겨주는 공간이 되었다. 나오는 길, 반대편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배우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수영장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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