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21화
그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신입이었을 때, 그는 나에게 감자튀김이 들어가는 음식들을 조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만드는 법부터 청소하는 법까지 정말 말 그래도 손가락 열개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열개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꼼꼼한 그의 방식에 섬세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와 나의 사이에는 쉽게 친해질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언어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수염이 있어 위생상 입을 커버하고 있어야 했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더욱 그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예의를 차려 'sorry?'라고 되물어보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미친 듯이 들어오는 주문과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서로 열받기 시작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우리의 소통에 그는 점점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쉬었고, 결국에는 내 앞에서 고개를 젓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내 귀가 썩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고, 그는 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네가 헤드폰을 많이 착용해서 그런 거라고 노래 듣는 걸 줄여보는 것이 어때?"라고 말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순진한 대답이었는데, 그때는 그 대답이 나를 더 어이없게 만들고는 했다.
그가 조금 더 발음을 정확하게 하거나, 하다 못해 말을 웅얼거리는 것만 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그의 태도였다. 감자튀김이 들어가는 음식들을 조리하고 있을 때는 이미 규칙대로 무게를 충분히 재고 두세 번 확인했음에도 그는 '적다 또는 많다'는 둥의 말을 하며 다시 만들기를 명령했다. 그의 무례한 명령조의 말투에 화를 꾹 참으며 나는 '이미 무게를 충분히 쟀고 여러 번 확인했다'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고개를 내젓거나 내 손에 든 것을 말도 없이 빼앗아가고는 했다. 만약 내가 사회경험이 없는 아이였다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옳고 잘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더욱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굳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새로 들어온 내가 성질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주먹다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하지만 그는 멈출 줄 몰랐다. 이제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혜주, 그거 그만하고 이거 해! “
나는 그의 무례함에 화가 나면서도 일이 돌아가려면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빠르게 움직여 일을 끝내고는 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신입이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매니저는 내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니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하려는지 알 것 같아. 근데..."
생각하지 못한 반응에 살짝 놀라면서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꽤 많은 컴플레인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기도 전부터 입을 막으려고 하는 매니저의 행동에 나는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내며 말했다.
"나 마저 이야기할게."
내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매니저는 또다시 내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아니 잠깐만, 근데 그건 네가 이해해야 해. 그건 그의 문화야. 그는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랐어.”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내 표정에 매니저의 설명이 뒤를 이었다.
"그가 자라온 환경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환경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나는 그 말에 살짝 미소를 띠며 반박했다.
"나도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야. 하지만 엄격하고 단호한 거랑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거는 엄연히 다른 문제야. 그리고 여기서 문화 이야기가 왜 나와? 지금 우리 같이 일하는 사람들 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인데 누구 하나 존중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 없어. 그리고 너 말처럼 문화 차이라면 그와 같은 문화권 사람들은 왜 무례하지 않아?"
매니저는 내 말에 더 이상 '문화'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주의를 주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나는 점점 화가 쌓이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문 넘버를 부르고 손님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몸으로 나를 밀치며 내 자리를 뺏은 후 손가락질을 하며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의 반복된 행동에 꾹꾹 눌러놓은 화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야. 난 내가 하던 일을 마저 할 테니까 나한테 명령하지 말고 네가 해. “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주문번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한번 더 그의 팔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야. 안 들려? 너 나한테 예쁘게 이야기하라고. “
그는 내 말에 “싫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결국 꾹꾹 눌러놓았던 화의 뚜껑이 열려버렸다.
나는 손님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주문번호를 외치려는 그를 붙잡아 내 얼굴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쏘아붙였다.
“너 방금 뭐라고 말했어? 싫어라고? 그럼 나는 너랑 더 이상 너랑 일할 생각 없으니까 네가 다 해.”
그는 처음 보는 내 화난 얼굴에 당황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아 나는 네가 손님에게 예쁘게 이야기하라고 하는 줄 알았어.”
나는 그가 나에게 손가락질하듯 그의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 진짜 많이 참고 있는 거야. 너 행동 똑바로 해.”
그렇게 우리는 첫 싸움을 했다.
그 싸움 이후로도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점점 더 이런 문제들로 인해 그와 일하는 게 즐겁지 않았고, 그와 일하는 시간이 겹칠 때면 괜히 기분이 먼저 상하고는 했다. 최대한 그와 대화하는 것을 피했고, 다른 동료들이 알려주는 그들만의 그를 다루는 방법들을 따라 하고는 했다. 예를 들면, 그에게 질문하지 않기, 그가 명령조로 시켰을 때 못 들은 척한다거나 싫다고 이야기하기 등 그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그의 무례함을 견뎌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와 맞지는 않았다. 똑같이 무례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항상 화를 참거나 'please‘를 붙여달라고 이야기하거나 가끔은 그냥 도망가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퇴근길에 집으로 데려다주던 친구가 없어 그에게 가는 길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그와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그에게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들을 질문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그도 나의 다가감을 거부하지 않았다. 20대 중반인 그는 자신이 캐나다에 온 목적과 지금 현재 어떤 공부를 하고 있고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또, 자신이 굉장히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며, 친구가 없어 여기에 온 지 꽤 되었지만 그 흔한 관광지도 못 가본 채 매일 일, 집만 반복하며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상황에 공감하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그날 조금 함께 웃고,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눴지만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조금 좋게 보이다가도, 언제나 무례한 그의 태도에 주먹질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관계를 뒤바꿀 사건이 일어났다.
물이 고인 바닥에서 마무리 청소를 하고 있을 때,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와 무거운 물건을 바닥으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 무거운 물건은 물 위로 떨어지며, 고여있던 물이 내 얼굴과 옷으로 튀었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조심성 없고 배려심 없게 행동한 그의 행동에 화가 다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곧장 뛰어가 세수를 한 후, 친한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화가 주체가 안 돼서 머릿속이 하얘.”
내 메시지에 언니는 당장 그에게 돌아가 이렇게 이야기 하라며 적절한 단어들을 다시금 집어주었다. 너무 화가 나 몸이 덜덜 떨렸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화장실에서 언니가 보내준 단어들을 달달달 입에 붙도록 빠르게 연습하며 화를 삼키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했다.
“이건 진짜 부주의한 거야. 내가 여기 앉아있는 걸 알면서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
씩씩 거리며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그는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함께 집에 가야 하는 길, 그는 이어지는 적막 속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정말 실수였어. 너도 아마 내가 싫겠지. 내가 너에게 많은 실수를 했으니까. “
나에게는 이 한 문장이 꽤 크게 다가왔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마음을 열었는지, 그리고 또 다른 팀원들이 그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속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외로움과 상처, 속상한 마음이 느껴졌다. 20대 초반에 타지에 와서 쉽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여태까지 버텨내며 꽁꽁 싸맸을 그의 속이 잠시나마 보이는 듯했다. 그 속이 너무 여리고 어두워서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조용히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난 네가 싫지 않아. 다만 이런 실수들이 계속되는 것이 싫을 뿐이야. 나는 너랑 잘 지내고 싶어."
그리고 이어서 그에게 내 마음을 조금 더 드러냈다.
"나도 알아.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어떻게든 일 하지 않으려고 계속 남에게 일을 떠넘기거나 일이 들어와도 못 들은 척한다는 거. 그리고 그들이 하지 않은 일을 소수의 사람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 소수에는 너랑 내가 있지. 하지만 우리의 다른 점은 나는 부탁하거나 아니면 말하지 않고 처리해 버리고, 너는 그들이 일을 하게끔 만드려고 한다는 것. 그래서 자꾸 사람들이 네가 명령한다고 하는 거야. 실제로 명령조이기도 하고. 너 마음 나도 알아. 그래서 너가 무례해도 웬만하면 너가 필요한 거 다 해주잖아. 다만 조금 더 부드럽게 이야기 했으면 해."
그 날, 우리는 일하는 환경에 대해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과 제법 비슷한 일처리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감과 함께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나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종종 투닥거리고, 서로에게 화를 낼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부딪히는 건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어서가 아니라, 같은 마음, 같은 곳을 바라보다 보니 속도가 맞지 않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 속에 깔린 마음을 알기에 결국은 웃으며 넘어가게 된다.
그 이후로 나는 팀원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안좋은 소리를 할 때, 한 마디씩 하고는 했다.
"걔 요즘 많이 변하고 있어."
"노력 중이야."
"근데 알고보면 착해."
그리고 그도 실제로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please'란 단어. 그리고 전보다 더 환하게 웃고, 종종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편안하고 마음을 연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 배우고,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