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22화
요즘 주기적으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언니들이 있다. 처음 언니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 속에서 만난 언니들은 제법 둘이 친해 보였고 함께 웃으며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 후에 우리는 몇 번 더 사람들과 함께 만날 기회가 있었고 만날 때마다 즐겁고 좋았지만, 크게 친해질 순간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점점 함께 만나는 사람들이랑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언니들이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그렇게 언니들과 나는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언니들을 만날수록 마음이 갔다. 둘 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보이는 튀는 매력들과 가끔 언니가 맞는지 의심이 가는 예상치 못한 귀여움(?)까지. 그런 언니들은 나에게 새로운 재미를 알려주기도 하고, 긍정적이고 단순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주기도 했다.
매번 태워 말릴 것 같은 햇볕이 이어지던 한여름 어느 날, 오늘따라 햇볕이 조금 부드럽고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벤치에 앉아 날씨를 만끽하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수영이 하고 싶었고, 수영장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쯤 한 언니가 퇴근 후 야외에 있는 공공 수영장을 제안했다. 우리는 서로 사는 곳이 멀어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이동하는데 대략 한 시간 정도 잡아야 했고, 수영장이 문 닫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애초에 야외 공공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터라 알게 된 사실 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소식이었는데 이렇게 니즈가 맞아 함께 갈 수 있음에 더없이 행복했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 짐을 챙겨 택시를 불렀다.
Christie pits park로 향하는 동안 '그 공원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왜 여태 수영장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택시에서 내려 저 멀리 보이는 언니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나왔다. 언니들은 배가 고픈 나를 위해 떡볶이와 김밥, 그리고 맥주를 사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원 안에 야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꽤 큰 공원이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공원 한 귀퉁이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딘가에 있을 수영장의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수영장을 보니 왜 내가 여태 몰랐는지 이해가 되더라.
수영장은 공원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멀리서 보면 그저 한 건물처럼 보였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니 수영장의 입구가 나왔다. 무료로 운영되는 곳이라 입구를 통해 들어가 탈의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넓은 탈의실 안에는 3개의 찬물만 나오는 샤워장이 있고, 수많은 락커들이 있었다. 항상 그렇듯 이곳도 자물쇠가 필요하지만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자물쇠를 챙겨 온 사람은 없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돗자리를 펼 자리를 찾아 나섰다. 날이 더운 것을 가만해 조금 그늘진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수영장은 두 개로 나눠져 있었는데 하나는 얕은 곳, 하나는 깊은 곳이었다.
한동안 YMCA를 다니며 수영장의 온도가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당연히 여기 물도 온수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햇볕이 평소에 비해 덜 뜨겁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물이 생각보다 너무 차가웠다. 그래도 언니와 함께 깊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대략 3~4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물도 너무 차가운데 떡볶이랑 김밥, 맥주가 위에서 출렁거려 수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난간을 붙잡고 매달려 연신 '배불러.'를 주문처럼 외쳤다. 그 모습이 서로 얼마나 웃기는지 매달리는 것도 힘들고 배에서 음식은 출렁대고, 발은 땅에 안 닫고 아주 총체적 난관이었지만 이 모든 상황이 재밌고 행복했다. 얕은 물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 햇볕 밑에서 피부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고 있는 부모들 등등 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도 우리의 방식대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슬슬 더 추워지는 것 같아 우리는 정리하기로 했다. 샤워장의 물이 찬물 밖에 나오지 않아 나는 샤워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밖으로 나오니 공원 한편에서 야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아마추어 경기 같았지만 생각보다 관중도 많았고, 작은 함성들이 공원 전체에 퍼져 있었다.
우리는 넓은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핫도그를 나눠 먹으며 경기를 지켜봤다. 야구 규칙은 잘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기가 배경이 되어주고,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언니들은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순간, 이렇게 평온한 행복이 또 있을까 싶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잔디밭 위의 웃음과 맑은 공기, 차가운 물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여름 한가운데에 박제된 듯 선명했다. 이제 가을바람이 흩날리는 요즘, 캐나다에서의 여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 순간이 떠오른다.
평온하고도 가득 차오르는 그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