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23화
캐나다에 오기 전에 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캐나다 입국과 동시에 90일이 지나면 운전면허증을 교환하기가 힘들다는 글을 보았었다. 운전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도 해서 한 번은 운전할 기회가 오겠거니 하는 마음에 오기 전에 영문 운전면허증도 받고 혹시 몰라 국제운전면허증까지 새로 발급받아 들고 왔다. 하지만 막상 캐나다에 오니 게으른 내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생각이 나서 날짜 계산을 해보니-세상에, 90일이 이틀도 채 남지 않았다. 너무 놀라 세상 초조한 마음으로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람들이 쓴 글을 읽어보았다. 영문 운전면허증, 캐나다 입국할 때 받은 비자 등등 사람들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서류를 준비해서 서비스 온타리오로 향했다. 오픈하자마자 가야 덜 기다린다는 글을 많이 봤지만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좀 기다리면 어떠할까 하는 마음에 눈 뜨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서비스 온타리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은 점심시간을 향해가고 있을 때였다.
문을 열자 직원 네 명이 앉아 있었고, 공간은 생각보다 작아 그냥 동네 사무실 같았다. 그 좁아터진 공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안쪽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좁은 공간을 뱀처럼 감아 돈 줄이 벌써 네 바퀴나 되었다. 그 광경에 놀라 얼른 그 뒤에 붙었다.
그렇게 10분, 15분, 30분이 지나니 겨우 나는 한 바퀴 반 정도를 돌아있었다. 원체 한국보다야 느리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서비스 온타리오에서 많은 것들을 처리하고 있어 체감되는 속도가 더욱더 느렸다. 어떤 것들은 직원조차 여기서 이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지 서로 상의하고 전화하고 확인한 후에야 처리해 주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또 15분, 30분.. 그리고 1시간 정도가 지나자 겨우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곳에 도착한 지 벌써 거의 두 시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가온 내 차례에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하자, 그 직원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내가 준비한 서류를 보지도 않은 채 '여기서 처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젠장. 여기까지 오는 길과 두 시간 넘게 선 줄까지 합쳐 다섯 시간이 통째로 날아갔다.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영문 운전면허증을 다시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더 물어봤다.
"한 번만 더 확인해 줄래? 내가 알아보고 왔을 때는 여기서 바로 바꿀 수 있다고 했거든."
그러자 직원은 내 영문 운전면허증을 확인하더니 옆자리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작은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서 바꿔 줄 수가 없대. 이곳에 한번 가봐."
그 직원이 건넨 종이에는 Drive Test Centre라고 적혀있었다.
허탈하게 문을 열고 나와 '나중에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90일이 다가온다는 현실이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을렀던 나를 반성하며 우버를 불렀다. 우버 기사는 나에게 운전시험을 보러 가냐고 물어보았다. 내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이야기하자 우버 기사는 아침부터 내가 헛걸음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비치며 나를 내려주면서 말했다.
"집에 돌아갈 때 전화해. 공짜로 태워줄게."
갑작스러운 호의에 '어? 진짜?'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순간 친구가 항상 했던 말이 생각났다.
친구는 돌다리를 두드려 아예 부숴버리는 스타일이고, 나는 돌다리가 없어도 있겠거니 하고 뛰어드는 스타일이라고. 그만큼 세상 사 의심 따위 하지 않는 나에게 항상 잊지 말고 두 번, 세 번씩 생각해봐야 하는 건 낯선 사람의 호의였다.
"괜찮아. 하지만 고마워."라고 말하며 나는 Drive Test Centre에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 들어가니 나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바로 운전면허증을 교환하려면 예약이 필수라는 것이었다. 예약 페이지를 확인하며 밀려오는 피곤한 마음에 '내일 해버릴까'라고 또 고민을 했다. 하지만 90일이라는 압박에 못 이겨 1시간 뒤로 예약을 잡았다. 근처 식당에서 허겁지겁 밥을 때우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죽였다.
드디어! 예약한 시간이 되어 직원에게 찾아갔을 때, 직원은 내가 가져온 서류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서류가 부족해."
하… 역시 쉽지 않았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또 반성하며 물었다.
"뭘 더 챙겨 와야 해?"
직원은 이번엔 길쭉한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6개월 동안의 운전 경력 증명서가 필요해. 토론토에 있는 총영사관에 가면 받을 수 있어."
이제 진짜 답이 없었다. 거긴 오늘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조건 예약이 필요했으며,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문 닫는 시간 안에 도착할 수도 없었다. 남은 이틀은 풀 근무 일정이 잡혀있어 90일 안에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한 마음이 밀려와 직원에게 말했다.
"나 이틀 뒤면 여기 온 지 90일인데, 그 안에 못 바꾸면 어떻게 되는 거야? 운전 시험 다시 봐야 해?"
직원은 내 질문에 잠시 당황하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90일 넘어도 교환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서류받아서 다시 와."
그 말에 나는 안심하며 그 직원에게 내가 얼마나 오늘 똥줄이 탔는지 이야기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음 주 회사 쉬는 날로 예약을 넣었다. 총영사관이 있는 동네는 Avenue Road인데 이 주변에는 큰 건물들이 많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주택들이 보이는 그런 동네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작성해야 하는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에 나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는 서류를 집어 내 차례가 오기 전에 미리 서류를 작성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내 이름이 불려 총영사관 직원에게 가자마자 나는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며 물어보았다.
"원래 서비스 온타리오에서 교환 안 되는 게 맞아요?"
직원은 내 영문운전면허증을 확인해 보더니 당황하며 말했다.
"아뇨, 보통 영문운전면허증 있으면 그냥 해주기도 하는데.."
그 대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쩌겠는가. 이미 여기까지 온 걸.
그렇게 나는 운전경력증명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또다시 나는 Drive Test Centre를 방문했다. 드디어 모든 게 완벽한 서류들을 가지고.
나를 알아본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서류를 다 받아 온 것에 대해 기쁨을 표현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어색한 웃음의 얼굴 사진을 촬영한 후 임시 운전면허증을 받아내었다.
2주 뒤, 우편함에 꽂힌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만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카드 한 장에 내가 기다린 시간, 줄 선 발바닥의 통증, 우버 기사의 말, 총영사관의 허탈한 미소까지 다 눌어붙은 것 같았다.
면허증을 지갑에 넣으며 생각했다. 사실 캐나다에서 운전할 날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곳에서 조금은 더 내 자리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제일 좋은 건 신분증 보여 달라는 말에 더 이상 여권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작은 카드 한 장이 나를 이곳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