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잠시 숨을 고르다 EP.3

캐나다 워홀 도전기_19

by 혜주

몬트리올을 가기 얼마 전 코스트코에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었다. 몬트리올 스모크 미트 샌드위치, 깨가 뿌려진 나름(?) 건강한 빵에 후추시즈닝이 된 스모크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로 항상 냄새만 맡아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피클과 함께 서빙되는 음식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음식을 제대로 먹어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나는 몬트리올에서 스모크 미트 샌드위치가 유명하다는 가게를 찾아갔다. Schwartz’s Deil. 1928년 생겼다는 이 건물은 허름하고 바랜 주황빛 컬러의 외관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온 고수의 가게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벽을 한가득 메운 각종 신문에 나온 기사들이 마치 하나의 벽지처럼 보였고, 그 안에 촘촘하게 앉아있는 사람들과 웅성거리는 소리가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바 석에 앉아 다양한 메뉴들을 뒤로하고 스모크 미트 샌드위치와 콜라 하나를 주문했다. 직원은 나에게 비계가 있는 부위를 먹을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당연하게 예스를 외쳤다.

5분도 안되어 나온 몬트리올 스모크 미트 샌드위치는 코스트코에서 판매하고 있는 샌드위치보다 심플해 보이고 두툼했지만 작았다. 퍽퍽해 보이고 구워지지도 않은 것 같은 호밀빵에 머스터드가 발라져 있었고, 그 사이에 두꺼운 고기가 잔뜩 들어있었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들고 베어 먹은 나의 첫 한입의 인상은 “어? 별론데?”였다.

코스트코 호밀빵은 조금 더 촘촘하고 부드러운데 이 호밀빵은 너무 퍽퍽해서 먹기 싫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찌나 느끼한지 고기 육즙인지 기름인지 모를 정도의 기름기가 줄줄 흘러 한입 먹고 나서 콜라 반 컵은 마셔야 했고, 머스터드는 향과 맛이 너무 강해 함께 먹으니 머스터드 맛 밖에 나지 않았다. 결국 한 두 입 더 먹다가 다 먹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나가려는 내가 목격한 건 작은 입구 밖으로 끝이 안 보이게,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었다.


기대한 스모크 미트 샌드위치를 실패한 후, 푸틴으로 유명하다는 Patati Patata 가게로 이동했다. 캐나다 온 지 꽤 됐지만 아직도 푸틴을 먹어보지 않았는데, 하루에 내가 만드는 푸틴은 최소 100개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감자튀김 위에 올라가는 치즈 커드, 그리고 그레이비. 맛을 알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를 모르겠는 이 음식은 퀘벡에서 시작된 캐나다 대표 음식이라고 한다. 모두들 먹어보라고 제안했었지만 그다지 당기지 않았고, 이왕 이렇게 푸틴이 시작된 곳에 오면서 내 첫 푸틴을 여기서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게는 정말 작고 허름한, 좋게 말하면 빈티지하고 힙한 느낌의 가게였다. 역시나 바 자리에 앉아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내가 코스트코에서 미친 듯이 만들어 냈던 푸틴을 주문했다. 기름진 감튀와 삑삑 소리 나는 치즈 커드, 그리고 뜨거운 그레이비. ‘와-’ 소리가 나올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맥주 안주로 최고였다. 하지만 이게 한 번에 2-3개씩 사갈만큼 그렇게 인기가 있을만한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꽤 많이 푸틴을 사 먹었다. 심지어 하도 만들어 감튀기름에 절어질 때도 푸틴이 먹고 싶을 때가 있을 정도다. 이렇게 중독되는 것인가.


그렇게 첫 푸틴에 성공한 나는 기분 좋게 사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 나와 걸어가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해 들어갔다. 여기도 벽면은 신문에 실린 가게 이야기와 함께 아빠와 아들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먹으며 성장한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사진을 한참 구경하다 주문을 하러 카운터에 가니 방금 사진에서 발견한 사춘기 아들이 성장하여 아저씨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사진 속의 사람보다 훨씬 더 커버린 아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도 모르게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마지막 사진 속에서는 18살 정도 되어 보이던데..! 업데이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들은 나랑 같이 웃음을 터트리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 멀리 하얀 머리를 휘날리는 아버지도 웃고 계셨다.

아이스크림을 추천받아 동그란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며 이 작은 가게와 내 손에 든 이 시그니처 아이스크림은 이 부자의 일생의 추억이 담겨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 잔잔하고 길게 이어져 온 사랑이 부러우면서도 흐뭇한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짐을 챙겨 우버를 타고 조금 더 외곽으로 움직였다.

내가 발견한 내추럴 와인만을 판매하는 카페 겸 와인바는 내가 몬트리올에서 갔던 어느 식당보다 좋았다. 단순한 메뉴판과 함께 벽면 가득한 다양한 내추럴 와인들.

사장님과 함께 내추럴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추천해 준 와인 3잔과 함께 야채수프, 미트로프로 만든 햄버거, 그리고 루바브 야채가 들어간 티라미수를 맛보았다. 음식들은 모두 편안하고 가정식 같은 맛이었다. 튀는 맛없고, 특이한 맛없는 그런 잔잔하고 따뜻한 음식. 하지만 나에게 재미 었던 것은 바로 루바브 야채였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루버브는 교재에 자주 보이는 야채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야채라 아이들에게 사진을 많이 보여주며 설명해 줬지만, 나도 사실 실제로 어떤 맛이 나는지 알지 못하는 야채였다. 근데 여기서 발견하다니. 캐나다 마트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야채지만 아직까지도 먹어본 적이 없던 때라 고민하지 않고 주문했다. 딸기콤포트와 함께 조리된 루바브는 예쁜 붉은빛을 내며 케이크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입에 넣어보니 딸기 콤포트의 달콤한 맛과 루바브의 새콤한 맛이 아주 잘 어울렸다. 내가 루바브를 처음 먹어본다는 이야기를 하자 사장님은 캐나다에서는 루바브는 봄-여름에 많이 먹는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알고 보니 여기서는 봄의 상징 같은 그런 채소였다.

흘러넘치는 만족감을 뒤로하고 ‘다음번에 몬트리올에 또 오게 된다면, 무조건 이곳에 먼저 오리라.’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문을 나섰다.


기차를 타러 가기 전, 나에게 남은 몇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가 생각했다. 따뜻한 햇살 그리고 살살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던 올드 포트 공원이 생각났다.

우버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에서 캐리어를 끌고 며칠 전 앉았던 벤치로 향했다. 그곳에 앉아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과 몽글몽글한 구름, 그리고 따뜻하다 못해 내 뼛속까지 뜨겁게 만들어주고 있는 햇빛을 맞으며 요즘 빠져있는 노래를 들었다.


몬트리올. 어떤 계획도 없이 도피형 여행으로 방문한 곳이었지만,

정신없이 새로운 나라와 일터, 그리고 치고 올라오는 감정들에 적응하느라 잊고 있던 내가 사랑했던 내 모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꼭 얼굴 가득 웃어야만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잔잔하게 밀려든 평온한 미소같았던 이 여행은 나에게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여유와 내가 워홀을 온 이유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속에서 가까워지는 나의 동네와 내일 만나게 될 동료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질 일상이 반갑게 다가왔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