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깨비 아저씨

캐나다 워홀 도전기_41화

by 혜주

캐나다 생활이 너무나도 익숙해지고 지루하게 느껴져 가고 있을 때쯤,

갑자기 문득 '왜 재미없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이 속에서 도전을 하려고 온 나는 당연히 재밌어야 하는데,

왜 재미도 없고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캐나다 워홀을 꿈꾸는 사람들, 나처럼 친척이 있어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 등등.

나는 참 감사해야 하는 일 투성이인데 괜히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

-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지?

이 질문을 맞이할 때마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어떤 걸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함을 느끼고, 어떨 때 즐거우며, 어떨 때 힘들지?

스스로는 그것을 잘 알고 있나, 헷갈렸다.


하루 종일 일하면서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혼자 커피 마시면서도 왠지 목이 메고,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다 '적응 완료'처럼 보일 때,

'왜 나는 그렇지 않지?',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하는 마음이 들고 불안해져만 가면서,

가슴이 해결되지 못한 채 답답함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갑한 마음에 늦은 밤 집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집 앞, 시청 앞 설치되어 있는 무대 위에 앉아 시청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시계를 바라보며 안갯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계단에서 웃통을 벗어던진 아저씨 하나가 푸시업을 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한참을 운동을 하고는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나를 발견하고는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곤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안녕. 너 되게 분위기 있게 앉아있다. 무슨 일 있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처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려고 하니 아저씨는 더욱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나도 그냥 집에 가는 길이었어. 저 콘도에 살고 자식이 둘이나 있어."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입을 열었다.

"별일 없어. 그냥 답답해서."

"왜? 대충 말해봐. 원래 모르는 사람한테 말해야 편하잖아."


그렇게 나는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온 지 몇 개월이 지났어. 근데 한국에서 살았을 때도 답답하고 뭔가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이곳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보고 있었어."

아저씨는 내 말에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말했다.

"나도 어릴 때 너랑 똑같은 생각을 매일 했어. 왜 삶이 재미없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더라고. 왜냐면 딱히 문제가 없었거든.

근데도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어. 그러다가 이 책들을 발견했어."

그러면서 또 주섬주섬 가방에서 책 두어 개를 꺼내 들었다.

거리가 꽤 멀었고, 어두웠기에 어떤 책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꽤나 낡은 책임은 분명했다.

아저씨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스스로 네가 좋아하는 것들, 너를 아끼는 행동들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

삶의 만족은 재미에서 오는 게 아니라,

너를 아껴주면서 찾아가는 소소한 평온 속에서 오는 거야."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 나는 작은 쉬는 시간이 주어져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하루를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어. 쉬는 방법, 즐기는 방법, 네가 말하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찾아가는 소소한 평온이 뭔지 잘 모르겠어."


아저씨는 담배 하나를 더 꺼내 물면서 말했다.

"내가 처음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 중 제일 쉬운 거 하나를 말해줄게.

너, 너를 위한 요리를 하는 편이니?"

"아니. 난 친척집에 살기도 하고, 불편해서 요리 잘 못해."

"그럼, 과일로 시작하자."

"과일?"

"어, 일주일에 한 번씩 마트에 가. 소소하게 네가 좋아하는 과일 조금만 사.

잘 모르겠으면 그냥 제철과일이라도 사. 신선한 걸로. 캐나다는 과일이 맛있는 게 많잖아.

그걸 하루에 한 번씩 널 위해 먹으면서 즐겨봐."

나는 그의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곤 말했다.

"난 한국에서 살 때도 내 음식을 직접 해 먹어 본 적이 잘 없어.

회사에서 주거나, 누군가 나를 위해 요리해 주거나, 아니면 사 먹었지. 과일도 마찬가지야."

아저씨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너 꽤 케어받으면서 살았구나. 이제 스스로 케어해야 할 때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충 네가 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기는 해. 일단 하나씩 해볼게.

요리는 어렵겠지만, 과일 정도야 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너무 늦었어. 집에 가. 내가 멀리서 너 집 들어가는 거 까지 봐줄게.

그리고 이 시간에 나오지 마. 여기 이상한 사람 은근히 있어.

나는 다 늙었고 남자지만, 너는 젊고 여자잖아."

나는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아저씨가 한 이야기를 곱씹었다.

아저씨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 환경이 바뀌어도,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삶의 감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한국에서 13시간이나 날아 이곳까지 왔어도, 여전히 답답하고 스스로에게 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어쩌면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모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나를 잘 돌보고 있었을까.

내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았을까.


다음 날, 일하던 중간에 코스트코를 돌며 눈에 들어오는 복숭아 한 박스를 구매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씻어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달콤한 향과 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이 감정을 느껴보라는 거였구나.'


그 뒤로 몇 번 그 아저씨를 또 볼까 싶어 같은 시간에 나가봤지만, 다시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나에게 왔던 도깨비 아저씨였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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