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40화
오늘은 출근 시간이 늦었다. 오후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마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요즘은 그 사실만 남고 의미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은 하기 싫고, 회사에 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회사에 방문하는 무례한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도 지겨워지고, 적응이 되면 될수록 알게 되는 조금은 받아들일 수 없는 회사의 은밀한 상황들과 무례한 직원들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텃새인지 모를 기분파 시니어들에게 지쳐갈 때쯤이었다.
이제는 너무나도 많이 듣게 되는 다양한 가십거리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조차 지겨워지고 있었다.
몸은 이미 익숙해졌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래도 늦은 출근 덕분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대충 머리를 말리고 모자를 눌러쓴 채 밖으로 나섰다.
여름은 아직 완전히 물러나지 않은 듯했다. 공기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나쁘지 않았다. 어젯밤 지도를 보다가 집 근처에 트레일이 있다는 걸 발견했고, 오늘은 출근 전 그쪽으로 잠깐 걸어보기로 했다.
가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 앞을 지나가는 루트였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말차 라테를 하나 테이크아웃했다. 손에 컵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도로 옆으로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렸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버스들이 연달아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이런 곳에 무슨 산책로가 있을까’ 싶었다. 기대는 점점 낮아졌다.
그런데 입구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길이 보였다.
잠깐 망설이다가 발을 들였다.
조금 들어가자 풍성한 숲이 나타났다.
콘도들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이곳에 이런 숲이 숨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치 도시가 잠시 나를 놓아준 느낌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이런 곳이 있었는데, 아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 공간이 나에게 주는 행복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이것 봐."
나는 핸드폰을 좌우로 돌리며 공원을 보여줬다.
"어머, 여기 그 공원 같네. 좋다."
엄마는 나랑 같은 공원을 생각했다.
물이 잔잔히 흐르는 곳 옆, 바위에 앉아 엄마, 아빠랑 인사를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올라다 보니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고, 개울이 흐르고,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떠다녔다.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잔디 냄새까지 더해지자, 아침부터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산책로 옆길로 빠지니 학교가 하나 있었고,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발견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그네를 탔다.
점점 얼굴에 삼킬 수 없는 웃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치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그네를 탔다.
행복했다.
출근 전인데도, 잠깐 세상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로 향했다.
상황이 바뀐 건 없었다.
일은 여전히 의미를 찾기 어려웠고, 매니저도, 근무 시간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가벼웠다.
정말 별거 아닌 산책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나를 잠시 숨 쉬게 해 줬다.
잔잔했고, 여유로웠고, 그래서 그날은 조금 덜 힘들었다.
그런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