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게 EP.5

캐나다 워홀 도전기_39화

by 혜주

그렇게 10시간을 날아 독일 브레멘에 도착했다.

그를 만나기 정말 1초 전, 이 문이 열리면 그가 보일 텐데 어떻게 인사를 하지?

어떤 첫마디를 건네야 할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정작 내 머릿속은 비상등이 켜지며 삐용삐용 울리느라, 단 하나의 답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저 멀리 그가 보이는 순간, 이 모든 질문들이 사라졌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고는 나를 꽉 안으며 자연스럽게 뽀뽀를 했다.

순간, '넌 뭐가 그렇게 자연스러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단 4일 만나고, 8개월을 못 봤지만,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어제 본 것처럼.


그는 나를 그의 팀원들이 타고 있는 차로 데리고 가며 물었다.

"따로 가면 40분은 더 걸리던데, 팀원들이랑 같이 타고 가는 거 어때?"

팀원들을 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여태까지 한 번도 그의 친구들, 가족들을 보여주지 않았던 그가 나에게 누군가를 소개해준다는 것에 놀랐다.

하필 10시간 비행 후 꼬질꼬질할 때라는 점이 걸렸지만.

차에 올라타 나는 그들과 짧은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나를 자신의 팀원들에게 소개했다.

그 소개의 문장에서 나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네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여행의 하루하루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둘만의 여행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우리는 항상 팀원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고,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와 팀원들 모두 나를 세심하게 챙겨주었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이곳에 초대했을까?

계속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뭐였든 일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팀원들과 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친해졌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것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 보이면 어딨는지 찾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 그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왜 주변에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지 알 것 같아.

네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어떻게 그렇게 팀원들과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는지 놀라워. 이제는 팀원들이 너를 먼저 찾아.

그리고 네가 편안하게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 같아."

그리곤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너도 이제 내 소속이야. 네가 만난 팀원들은 내 가족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이야."

그랬구나, 그게 네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 보고 싶었던 거구나.

너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내가 그 속에서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의 말에 나는 가볍게 말했다.

"고마워 너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나에게 소개해줘서. 그들은 참 친절하고 반듯한 사람들이야."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나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와 보낸 일주일이 매번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가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을 보였을 때, 나는 관계의 끝을 또다시 고민했다.

나는 화가 났을 때, 일단 머릿속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편이다.

그 질문들 후에도 내가 화를 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느낄 때 입을 연다.

하지만 그와 트러블이 생겼을 때는 그 질문들이 배로 늘어났다.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내가 예민한가, 문화 차이인가,

문화차이라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가 바뀔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설명해야 오해 없이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입과 눈, 그리고 귀를 닫고 그와의 공간에서 멀어졌을 때,

그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만 생각하고 입을 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잠시만 봐도 내 감정과 생각을 알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질문을 스스로 하고 있는지.

문화 차이 이런 거 없다고.

말하라고. 본인이 바뀔 수 있도록 말해달라고.

우리는 하나인데, 자신의 실수는 너만이 잡아줄 수 있다고.

그리고 뭔지도 모르면서 사과를 하며 그의 눈에 눈물이 차 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마음이 아팠다.

'지금 너에게는 헤어짐이라는 선택은 없구나. 그렇다면 어디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자.'

정제되지 않은 내 생각들이 터져 나왔다.

그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해했어, 미안해.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앞으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게."

심플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복잡한 것들에 비해, 그는 심플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느꼈다.

'내가 너보다 더 나를 지키는 벽이 높구나.'


내 기분을 달래기 위해 그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나를 데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올드하고 촌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어찌하면 좋을까.

우리는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역시나 그는 그 뒤로는 한 번도 같은 행동을 보인 적이 없었다.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여태 핸드폰 너머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의 행동들, 말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해가 될수록 그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그는 다정하고, 반듯하고, 세상의 모든 약하고 위험한 것들에 연민을 느끼며, 투박하지만 섬세했고, 고집불통에 단순했고, 하지만 혼자서 생각과 상황을 되새겼고, 작은 디테일을 관찰할 줄 알았다.

그리고 강하게만 보이지만 속은 여린 강아지 같았다.


그는 나에게 매일 갑작스러운 질문과 말들을 던졌다.

어떻게 여전히 아이 같을 수 있는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가 나에게 충분하다고 느끼는지 등을 물어보기도 하고,

나의 작은 행동, 표정, 디테일을 발견하고는 그 속에서 그가느낀 것을 말해주기도 했다.

얼마나 나를 연구하고 관찰했는지, 나 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쏙쏙 집어내고는 했다.

하루는 내 얼굴에 살짝 스쳐간 감정들을 꿰뚫어 본 그의 말에 꽁꽁 저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어두운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새벽의 베르멘 거리를 한참을 내려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벌떡 일어나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고는, 대답하지 않는 나를 본인 겨드랑이에 꼭꼭 숨겨 세상으로부터 숨겨주었다.

그리고는 투박한 손으로 잠이 들 때까지 등을 두드려주고는 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서로에 대한 확신을 얻고, 희망을 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같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조율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그는 우리가 독일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순간부터 마지막 날을 상상했다고 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그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보러 와 준 내 용기에 대한 감사함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며, 내가 조금 더 건강과 삶에 집중하며, 내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랐다.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본인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랐다.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가치를 내가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무슨 의미로 그가 나에게 이야기했는지 너무 잘 알았다.

그는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 마음을 지켜내길 바랐다.

그는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고, 잃고 싶지 않아서 하는 소리였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I promise, Don't worry."

그리고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곧 또 만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이 안개 낀 길 속의 놓인 우리의 관계가 기대가 되기도, 두렵기도 했다.


용기를 내고 내 시간과 마음을 투자한 만큼,

이 남자가 가치가 있기를 바랐다.


길가에 쓰레기를 줍던 그가 발견한 누군가가 만든 꽃, 혹시 찾으러 올까 한참 고민 후 내린 귀여운 선택.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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