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42화
회사의 안 좋은 모습들을 줄줄이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더더욱 이 일에 회의감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즐겁던 직원들과의 스몰토크들도, 직원이 많은 만큼 가십도 많은 곳이다 보니 점점 입을 열기가 두렵기도 했다. 워홀을 와서 이렇게 안정적인 직업을 얻은 것도 쉽지 않다 보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나에게는 큰 사건이 터졌다.
어지간히 책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나름 책임감을 가진 한두 명의 사람들에 속했다.
마감을 해야 하는 스케줄을 받은 날,
그래도 일 좀 잘하는 사람들과 배치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고, 최소한 4명은 해야 하는 일을 오늘의 우리는 3명뿐이었다. 시간 내에 끝내야 했고, 꼼꼼히 하지 않으면 내일 오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마감에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는 각자 구역을 나눠 마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일 안쪽, Ardita는 중간, 그리고 Rohan은 밖을 맡았다.
마감 시간이 중간을 지나갈 때쯤, Ardita가 갑자기 나타나 큰 소리로 말했다.
"혜주, 지금 다른 부서 슈퍼바이저가 Rohan을 데려갔어.
그럼 우리 2명인데 어떻게 이 일을 다 끝내지? 큰일 났어."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물었다.
"누가 봐도 우리 팀 지금 사람 부족한 거 보일 텐데, 어째서? 너한테 물어봤어? 뭐 금방 데려온대?"
"아니, 묻지도 않고 그냥 데려갔고, Rohan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와서 말해줬어. 오늘 다시 안 온대."
그 말에 나의 당황은 짜증으로 변해갔다.
나는 마감하던 손을 내려놓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상황을 먼저 확인하려고 했다.
밖을 마감해야 하는 Rohan은 보이지 않았고, 그가 끝내놓은 일은 없었다.
남은 시간 고작 1시간 반.
내부도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2명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곧장 사무실로 누군지도 모를 그 슈퍼바이저를 찾아갔다.
일단 Rohan이 보였다. 그는 다른 팀 마감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야, 장난하냐? 너 왜 여기 있어?"
그는 미안함에 웃으며 "슈퍼바이저가 말해서 어쩔 수 없었어. 알잖아."라고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래서 슈퍼바이저 찾아온 거야. 어딨냐?"
내 말에 사무실 안쪽에서 그녀가 나왔다. Marcela.
난 그녀와 대화를 해본 적이 많이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필요해서 데려왔어? 왜?"
"너 우리 매니저한테 우리 사람 써도 되는지 물어봤어? 그가 허락했어?"
"아니? 나중에 말하면 돼."
"우리 오늘 마감 3명밖에 없고, 네가 쟤 데려가서 이제 2명이야. 2명으로는 마감 불가능해.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쟤 데려갔으니까 뭐 다른 방안 있을 거 아냐?"
내 말에 Marcela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너 일 아니잖아?"
나는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슬슬 내 목소리에 화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 일이 아니야? 나는 마감조에 있어 오늘.
그 말은 오늘 마감은 내 책임이라는 거야.
우리는 다 같이 일하는 팀이고, 한 팀원이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하면 그 마저도 내 책임인거지.
그러니까 서로를 도와서 일하는 거고. 안 그래?
너 슈퍼바이저잖아. 근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그럼 그냥 이렇게 더러운 채로 두고 집에 가란 말이야?"
그녀는 나에게 두 손을 내 보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가 우리 쪽 사람 하나 시켜서 Rohan일 하게 할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 후,
내 구역을 마감하러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에서 몇몇 사람들이 말을 했다.
"혜주, 신경 쓰지 마. 너 그렇게 책임감 가질 필요 없어. 네가 안 하면 누군가 하겠지."
"그래, 스트레스받지 마. 그냥 대충 하고 가자 집에."
그들의 말이 나는 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들을 참으려고 입술에 힘을 주어 꾹 닫으며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마감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내 구역을 끝냈다.
그리고는 Ardita를 확인했다. 그녀도 일을 끝냈고 역시 완벽했다.
밖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겠지 싶어 밖으로 나갔을 때,
나는 핸드폰을 들어 매니저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시간 밤 11시였다.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봉투들, 더러운 바닥, 테이블 등등 한숨이 절로 나왔다.
늦은 시간이라 매니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문자를 남겼다.
-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해. 오늘 1시간 반 남았을 때, Marcela가 Rohan을 데려갔고,
그쪽에서 다른 사람이 일을 끝내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전혀 되어있지 않아.
15분 남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겠지만 마무리는 불가능할 것 같아.
오늘 근무하는 당직 매니저에게 말해놓을게.
그리고 나는 여전히 Marcela가 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우리 사람을 데려간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해. 우리 팀을 얕보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 잘 자고 내일 연락 줘.
문자를 남긴 후, 나는 다시 Marcela를 찾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도 안되어있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역시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너 일 아니야."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당직 매니저를 찾아가 말을 했고, 당직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에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Ardita와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열받아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느 포인트에서 열이 받은 걸까? 인원이 적어서? 마감을 못 끝내서? 아니었다.
내가 화가 났던 포인트는 그녀의 태도였다.
슈퍼바이저가 매니저에게 확인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팀 사람을 마음대로 이동시켰다는 것.
그리고, '너 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책임감 없는 말도 슈퍼바이저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된다지만,
내 머릿속으로 이해되지 않고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될 거라면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단 매니저의 연락을 기다렸다.
이른 새벽, 매니저가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 어제 상황 전해 들었고, 나는 괜찮아. 아침에 잘 마무리해 줘.
나는 그 문자를 보고는 사직서를 작성했다.
매니저는 괜찮으면 안 됐다.
본인은 괜찮을지 몰라고, 마감이 일처리가 제대로 안되어있으면, 아침에 일하는 사람들은 해야 하는 일이 두 세배가 되고, 가뜩이나 인원도 부족한데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더더욱 의욕을 잃어갈 것이고,
그 누구도 책임감 없이 일하는 이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갈 것이다.
그는 상황을 정리해야 했고, 앞으로 이런 상황일 때는 이렇게 대처하자는 말이 나왔어야 했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고, 나는 다시 출근했다.
매니저를 거치지 않고 나는 바로 HR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굳이 대화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매니저가 출근하자마자 나에게 찾아왔다.
대화하자고. 사직서 제출한 거 메일로 받았다고.
나는 우리 팀 매니저와 슈퍼바이저와 함께 처음 면접을 봤던 공간에 앉았다.
매니저는 왜 사직서를 제출했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 내가 보아 온 여기는 엉망진창이다.
슈퍼바이저가 나에게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이곳에서 누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겠는가.
나는 대충대충 일 못한다. 작은 일을 해도 책임감 가지고 팀 사람들이랑 으쌰으쌰 하는 재미로 일하는 건데, 이렇게 시간만 버리다 갈 거면 왜 굳이 여기서 일하냐.
그리고 너도 그렇게 대처하면 안 된다. 나는 내가 속한 팀이 무시받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근데 무시받지 않도록 만드는 건 매니저의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안하무인하게 행동하면 우리 팀 답 없다. 일하고 싶지 않다."
매니저는 내 말에 공감했다.
본인은 당직 매니저에게 전달받아서 상세한 스토리는 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건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해. 난 네가 떠나길 원하지 않아. 네가 원하는 거 맞춰줄게. 남아있어줘"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해야 할까? 이건 매니저의 몫 아닌가?
한참 생각 후 나는 입을 열었다.
"매니저들을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 대화하고 싶어.
Marcela가 한 행동에 대해 경고를 받았으면 좋겠고, 그녀가 행동하기 전 생각해야 한다는 것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팀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했으면 해. 매니저가 네가 직접 해줬으면 좋겠어.
조금 더 일 하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긴장할 수 있도록 격려도 하고 교육도 했으면 해."
매니저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나는 최고 책임자와 직접 대화를 나눴고, Marcela는 경고와 교육을 받았다.
나는 조금 더 남아서, 이곳이 정말 바뀔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