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45화
내가 이곳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 있다.
사는 동네도 다르고, 일하는 곳도 다르고, 쉬는 날도 제각각이라 마음먹지 않으면 다 같이 모여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중에서도 내가 사는 곳이 제일 멀어서 나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가을이 다가와서 그런지, 다들 이유 없이 마음이 좀 헛헛해져 갔다.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다운타운으로 모이게 됐다.
이제는 꽤 익숙해져 버려서 종종 처음 왔을 때의 그 낯선 도시가 주던 설렘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날은 유독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토론토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말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그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우리는 도시의 한복판이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펍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각자 하루를 마치고 흘러나온 얼굴들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맥주잔이 놓였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아, 나 지금 토론토다.' 같은 감정을 기대했지만
막상 그런 특별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 각자의 근황을 나누고,
요즘 일이 어떤지, 언제 한국 들어갈 건지 같은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새벽이 넘어가자 슬슬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밀려 나왔다.
우리 동네와는 다르게 역시 다운타운이라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길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쉽게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누구 하나 집에 갈 생각 하지 않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못다 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근처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근처에 홈리스들이 다가왔다.
그 들은 자신의 얼굴을 우리들 얼굴에 가까이 들이밀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인 미시소거에서 홈리스를 볼 일이 정말 드물기 때문에,
토론토에서 볼 때마다 여전히 흠칫 놀라며 거리를 과하게 두는 편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익숙해진 걸까.
우리 중 누구 하나 놀라거나 당황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시선을 맞추지 않았고, 말을 끊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은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치 그들이 거기에 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홈리스들은 우리의 그런 모습이 답답한 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며 주변을 맴돌다 사라졌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속으로 '우리 이제 진짜 토론토 사람 다 됐네.'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아무도 반응을 안 해.
심지어 '쳐다보지 말자.'라는 이야기도 안 해.
이 도시에서 배운, 아주 도시적인 태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문 닫기 직전인 피자집을 찾아 급하게 피자를 주문했다.
직원들은 이미 꺼버린 오븐을 다시 켜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구워놓은 남은 피자를 판매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졌다.
웬만하면 먹겠는데, 쇼윈도 안에서 파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완강하게 새로 구워달라고 이야기하며 파리를 가리켰다.
직원들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새로 피자를 구워줬다.
우리는 피자 상자를 들고 Harbourfront로 향했다.
밤의 Harbourfront는 조용했고,
물은 낮보다 더 크게 소리를 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피자를 벤치에 펼쳐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한 친구는 휴대폰으로 감성에 젖은 노래를 틀었고,
우리는 그 친구의 노래 선곡에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나는 벤치에 몸을 길게 눕혔다.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달이 보였다.
달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러면서도 아주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계속 떠들다 보니, 시간에 대한 감각이 점점 사라졌다.
지금이 몇 시인지, 내일 출근을 하는지,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 같은 것들이 하나씩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 벌써 이렇게 됐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라는 현실이 밀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버를 불렀다.
나는 안녕 인사를 나눈 후,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고, 대단한 일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밤이었다.
이런 잔잔한 기억들이 쌓여
내가 여기서 보낸 시간에 대한 추억이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