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46화
여행 일정은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원래 정했던 날짜에는 나를 포함해 셋이서 가기로 했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새로 온 우리 팀 매니저가 스케줄 조정해 실패하여 갑자기 다른 날짜로 스케줄을 옮길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그 바람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결국 우리는 둘이서 떠나게 됐다.
우리가 Algonquin Provincial Park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캐나다 하면 대자연이 생각나고, 또 마침 가을이었기에 보러 갈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를 빌려 언니와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나는 보통 여행 갈 때 계획을 거의 세우지 않는 편인데, 언니는 달랐다.
가기 전에 챙겨야 하는 것들, 가는 길에 대한 정보 등등 꼼꼼했다.
출발하기 2주 전쯤, 언니가 미리 온라인 사이트에 차량번호와 주차구역을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주일 전에 신청하는 것이 열렸다. 듣기로는 신청하는 게 콘서트 티켓만큼 쉽지 않다고 해서 우리는 신청하기 위해 아침부터 눈에 불을 켜고 도전했다.
하지만 역시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살짝 걱정이 들었으나, 뭐 가면 다 방법이 있겠지 싶어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당일 아침, 이런저런 이유로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언니 말에 나는 알람을 새벽 5시로 맞췄다.
근데 신이 나 있었는지 이상하게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초고속으로 준비를 마치고 토론토로 언니를 태우러 갔다.
푸른빛을 띠고 살짝 어두운 새벽하늘을 보며 운전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언니를 태워 그대로 북쪽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두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혼자 오타와에 차를 몰고 갔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는 시간이 가는 매 순간을 그대로 느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을 느낄 새도 없이 벌써 이만큼 온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언니가 알아본 중간에 유명한 햄버거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가게 이름은 Webers로 정말 큰 도로 중간에 있는데, 이 가게에 버거를 먹으러 길을 건너다가 사고가 많이 나서 가게에서 돈을 모아 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가게 문은 아직 열지 않아,
우리는 대신 언니가 사 온 빵을 먹으며 주변을 잠깐 산책했다.
꽤나 쌀쌀했고, 춥게 느껴졌다.
내가 덜덜 떨기 시작하니, 언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따뜻하게 입으라니까.” 그렇다. 출발 전부터 언니는 계속 말했다.
알곤퀸은 토론토나 미시소가보다 훨씬 춥다고, 꼭 따뜻하게 입으라고.
그런데 내가 너무 ‘여름 인간’이었나 보다.
캐나다의 겨울을, 잠시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걸.
그렇게 다시 한 시간 반쯤 더 달려 Algonquin 안내 데스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더 추웠다. 후다닥 안으로 뛰어들어가 설치되어 있는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때 언니가 다가와 말을 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Algonquin이야. 우리나라 충청도만 하대.”
사실 그 지도는 한쪽 벽면을 다 덮고 있었는데 언니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니 그냥 이 지도 전체가 알곤퀸이었다.
우리는 왼쪽 아래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넓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언제, 어떤 야생동물을 발견했는지 적어두는 곳도 있었는데, 몇 시간 전에 무스를 봤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차량을 등록한 후, 그렇게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알아 온 유명하다는 트레일을 몇 군데 걷는 동안
나는 내 체력이 바닥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그리고 미시소거랑 토론토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가을이 이곳은 조금 더 북쪽이다 보니 이미 끝자락을 향해가고 있었다.
”언니, 우리 단풍 보러 왔잖아. 나무에 하나도 없어, 이파리가. 땅을 봐 땅을. 땅이 가을이네. “
나는 땅에 한가득 떨어진 단풍잎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우리는 상상했던 풍경과는 다른 모습에, 그렇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트레일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자연을 볼 수 있다는 트레일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라가고, 또 가파르게 내려가는 코스였다.
한국에서 친구가 “등산 가라”라고 선물해 준 등산화가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그 신발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정상에 도착하자, 우리 발 밑으로 노란 단풍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너무 예뻤다. ‘우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캐나다 국기가 빨간색이니까 단풍도 당연히 붉은색이 많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캐나다의 가을은, 생각보다 노란색이 많았다.
사진에 그 풍경이 다 담기지 않았다. 사진 속 내 모습은 마치 한국에서 등산 한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이 웃겨 한참을 그렇게 놀았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우리가 사진 찍는 포즈들을 보고는 따라 찍고는 했다.
그 후, 우리는 차로 이동해 근처 마을인 Huntsville로 넘어왔다.
캐나다의 물은 석회수이기에 샤워하고 마실 물도 사고 저녁도 먹을 계획이었다.
언니가 알아봤던 포르투갈 음식점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너무 아기자기 예뻐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음식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나는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접시를 싹싹 긁어먹었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가게 주인에게 너무 맛있었다는 인사를 백번은 한 후,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네시쯤 돼 가고 있었는데, 가게들이 슬슬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아무리 소도시라고 하지만 이렇게 일찍 문을 닫으면 다들 집에 가서 뭐 하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이 지역 맥주가 유명하다고 해던 것이 생각나 근처 브루어리를 찾아 들어갔다.
우리는 여섯 개의 샘플 맥주가 나오는 것을 주문했는데, 너무 씁쓸해서 도저히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쓴 맛에 토끼눈을 뜨고 놀라고 있을 때, 우리 뒤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짝으로 사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한 모금 이상을 마시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해는 완전히 져 있었다.
시간은 다섯 시쯤이었는데, 앞이 너무 깜깜해서 체감은 밤 열한 시, 열두 시 같았다.
숙소 데스크가 여섯 시까지만 운영한다고 해 급하게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달리면 정확히 여섯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미리 전화를 했고, 늦어도 들어갈 수 있게 조치를 해 두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렇게 한밤중 같은 깜깜한 도로를 달려 우리는 정확히 여섯 시에 도착했지만, 이미 데스크에는 사람이 없었다. 문 앞에는 우리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고, 그 종이에는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방 쪽으로 가 보니, 옆방에 묵을 사람들로 보이는 중년 커플이 문을 당기고 두드리며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방도 열리지 않았다.
열쇠는 어디에도 없고, 방 불은 켜져 있으나 창문도 열리지 않았다.
이 추위에 차에서 자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언니는 덜덜 떨면서 근처에 혹시 열쇠를 숨겨두었나 찾기 시작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문을 거의 부술 기세로 다시 잡아당겼다.
그때 정말 다행히도 쿵 하면서 문이 열렸다.
왠지 옆방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듯해 옆방 사람들에게도 알려줬는데,
그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결국 네 명이서 함께 그 방 문을 잡고 씨름을 했다.
다행히 그 방도 열렸고, 모두가 따뜻한 실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언니한테 말했다.
“만약 옆방 방문 안 열렸으면, 우리 방 같이 쓰자고 했어야 했겠지? 큰일 날 뻔. “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난 어떻게 네 명이 한 침대에서 자면 좋을까 생각했어.”
나는 샤워하자마자 그대로 기절했다. 아직 아홉 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하루가 짧으면서도 길었고, 아마 꽤 잘 놀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첫째 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