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아주 오래된 동네 병원에서
좋은 의사샘 한 분, 열 의사 부럽지 않다
큰 아이 서너 살 무렵까지 아플 때마다 가던 소아과가 있다. 지하철로 20분 거리 친정 근처에 자리한 병원이다. 가깝지도 않은데도 굳이 거기까지 찾아간 건 할아버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있어서다(동네에선 그분만큼 믿고 의지할 만한 의사 샘을 만나지 못했고 ,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정보로 검증된 소아과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내가 어릴 적 동생이 수두에 걸려 안쓰러워하던 친정 엄마의 걱정을 한 시름 내려놓게 한 분이 바로 그 의사 선생님이다.
그 인연의 힘 때문인지 몰라도 내 마음속엔 그분에 대한 신뢰감이 매우 깊이 자리하고 있다. 40여 년간 병원 이전이나 확장, 그 흔한 리모델링 한 번 없이 같은 자리에서 업을 이어오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아이의 진료를 보고 나올 때면 의사라는 직업으로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한 인간을 대면한 기분이 든다.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연륜과 여유, 조용하고 부드러운 아우라. 여느 보통의 소아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기가 그곳에 흐른다.
30일 모유 먹는 아기,
감기 걸리던 날
아기가 생후 한 달 되던 무렵, 온전히 나의 부주의로 여름 감기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당시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친정에서 산후 조리 중이었는데 한여름용 바디 슈트를 딱 한번 입혀본 게 화근이었다. 땀 많은 아기에게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면사가 시원하지 않을까. 코끼리 무늬도 귀엽고 예쁘니 한번 입혀보자. 난 여동생과 작당을 하고서 아기가 입고 있던 상하의 내복을 벗기고 얇은 바디슈트를 입히고는 예쁘다 귀엽다 칭찬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철없는 초보맘 시절이다.
바로 그날 밤, 생애 첫 기침이 시작됐다. 신생아는 면역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보통 생후 6개월까지는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 하더니 웬걸. 책은 현실 육아와 거리가 멀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와 우리 엄마는 동네 소아과 한 곳을 찾아갔지만 어린 신생아에겐 조금 과한 약 처방이 의심스러워 내내 찜찜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미용실로 외출한 줄 알았던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급하게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정말 무슨 큰일이 생 긴 줄 알았다) 엄마는 얼른 외출 채비를 하라며 재촉했다. 난 영문도 모른 채 가방을 급히 챙기기 시작했다. 외출 준비를 다 하고 조금 진정이 된 후에 들어본 엄마의 이야기.
엄마가 미용사에게 어린 손자가 감기 걸렸다고 말하니 불광동 먹자골목 근처에 아주 괜찮은 소아과가 있다고 추천을 해주더라는 거다. 초등생인 자녀를 둔 그분 말이 자기 아이도 아플 때마다 가는 병원이 있는데 건물 외관이나 내부가 좀 옛날 스타일이긴 하지만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 아주 잘 본다고. 미용사가 소아과명을 말하는 순간, 엄마의 기억은 30여 년 전으로 훌쩍 뛰어넘었다.
응답하라 1990, 시간을 되돌리며
어릴 적 우리 가족은 구파발(지금의 은평 뉴타운)에 살았다. 여동생이 수두를 심하게 앓아서 학교도 못 가고 집에 있던 날, 엄마는 불광역에 위치한 소아과가 잘 본다는 소문을 듣고 병원을 찾아갔다. 점잖고 정말 잘 생긴, 요즘 말로 훈남 의사 선생님이 주사 한방을 놔주면서 "이거 맞으면 딱지가 곧 앉을 겁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 갈치 하나 사서 구워주세요. 애가 입맛이 없을 테니 짭짤한 게 그래도 먹힐 겁니다." 하셨단다.
엄마의 뇌리를 스쳐간 옛 기억이 바로 이 장면이다. 파노라마처럼 훑고 지나간 과거의 기억을 재생 플레이에서 잠시 멈춤으로 두고 딸과 손자가 있는 당신 집으로 급하게 뛰어오셨던 것이다.
Back to the future
20여년 시간의 강이 흐르고,
마침내 엄마와 함께 아이를 안고 소아과 병원에 들어섰다. 유리문 위쪽에 달린 풍경이 딸랑거리며 맑고 청아한 소리를 냈다.
풍경 소리 끝에 펼쳐진 그곳은 아주 고요했다. 접수처 간호사 말고는 손님이 없어 적막했다.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과 천장에 달린 환풍기 팬에서 돌아 나오는 바람소리가 짝이 되어 적적함만이 감도는 공기를 채웠다. 병원 내부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고 단정한 회색톤의 일색이다.
접수처 안쪽에 자리한 큼직하고 폭이 넓은 나무 선반 위에는 수기로 작성된 진료기록서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오랜 세월과 함께 빛바랜 회색 대기의자의 행렬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진 듯 보였다. 어느 한 군데 눈에 띄게 뜯어지거나 망가진 데 없이 무척이나 깨끗하게 잘 관리된 모습이었다. 오른쪽 벽으로는 공무직에서나 쓸법한 기다란 사무용 철제 캐비닛이, 그 위엔 지금은 볼 수 없는 ‘GOLDSTAR’ 금성 TV 에어컨이, 아래엔 손으로 쭉 올려서 키를 잴 수 있는 수동식 신장계가 마치 오래된 과거를 인증하는 세트장의 소품처럼 빈틈없이 공간을 채웠다.
80년대 후반, 당시를 기억하는 친정엄마 말씀으론 강남은 물론 서울 여러 동네에서 진료를 보러 온 어린아이와 부모들의 대기행렬로 병원은 항상 붐볐다고. 그 옛날의 영광에 응답이라도 하듯, 소아과는 정확히 80년대 어느 날에 멈추어져 있었다. 우리 엄마의 옛 기억 속 그때, 그 날처럼.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주문대로 나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 영원히 멈춰버린 공간으로 시간 이동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생소한 진료법 타진, 들어는 보셨나요
엄마는 의사 선생님을 보자마자 반갑고 기쁜 마음에 우리의 사연을 짧게 풀어놓았다. 선생님 또한 반가운 기색과 함께 약간 쑥스러워하면서도 인자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의 가슴과 배에 청진기를 대고 유심히 숨소리를 듣고 청진기를 대었던 그 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 보면서 세심하게 관찰을 한다. 이렇게 손으로 톡톡 퉁기는 진찰은 내 평생 처음 보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타진’이라는 신체 내부를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로, 손으로 가볍고 예리하게 두드려서 생기는 소리로 장기의 경계선이나 위치, 모양 등을 알아낸다고 한다. 엄마와 나는 폐렴으로 가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약 처방을 해 주셨고 그 뒤 다행히 감기 기운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후 윤이 두 돌을 넘기고, 서너 살 되어 아픈 기운이 보이면 난 여지없이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곤 했다. 항생제는 정말 증상이 심한 상태 아니고서는 잘 처방해 주지 않고, 견디고 이겨낼 수 있겠다 싶으면 약도 거의 주지 않는다.
한 번은 아이가 발에 땀이 차서 그런지 그 여리고 작은 발가락 몇 군데에 습진처럼 살이 허옇게 벗겨져서, 그 핑계로 친정을 가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 심한 것도 아니니 약도 필요 없고 발 깨끗이 씻겨서 바짝 뽀송뽀송하게 잘 말려주면 금방 낫는다고. 이 날은 진료비도 받지 않으셨다. 그 후 아이에게 운동화를 신길 때 양말은 되도록 장시간 신기지 않고 실내에선 양말을 아예 벗겨놓기를 반복했다. 며칠 후 아이의 발은 약을 바르지 않고도 보들보들 매끈한 피부로 돌아왔다.
- 강아지 콧물 나오네.
할아버지 병원 가야겠다
어? 하비 벼원(할아버지 병원)??
- 응. 외할머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 있잖아” 치치코코 타고?
그럼~ 지하철 타고 가야지.
1인 멀티 시스템, 하비 병원에 가요
이젠 접수 데스크를 지키던 한 분의 간호사도 보이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이 직접 접수를 받고, 진료 기록서도 찾고, 환자를 호명하여 진료를 본다. 말 그대로 1인 다역 시스템. 여전히 병원 내부는 한결같다.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의사, 마치 손자 손녀를 살피듯 세심하고 예리하게, 아이와 엄마의 눈높이에서 보살펴 주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다.
아이가 자주 아파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이 할아버지 선생님이 의사 생활을 아주 오래도록 하셨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큰 아이가 자라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병원에 안착하다 보니 자연스레 할아버지 병원을 찾는 일이 뜸해졌다. 친정 근처에 왔다가 우연히 병원이 있는 길목을 지나갈 때면 여전히 그대로인 병원 외관을 눈에 담고, ‘안녕하세요, 잘 계시죠.’ 하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다. 그렇게 마음으로만 안부를 건네곤 했는데, 얼마 전 친정엄마에게 전해 듣기로 병원 건물의 간판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젠 문이 닫히고 더는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오래된 병원. 40여년간 매일같이 변함없이 지켜온 의사라는 자리에 스스로 작별을 고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작년, 큰 아이가 학교 갈 무렵 즈음 한 번이라도 찾아가 인사라도 드릴걸. 표현하지 못한 마음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서서히 몰려왔다.
기억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닿는 그 차분한 회색톤의 소아과.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홉 살 큰 아이는 기억한다. 손가락으로 톡톡 튕겨서 진료를 보던 할아버지의 손을. 그 감촉과 온기를.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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