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홉 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자기 꿈이 무엇인지 숙제로 글을 써갔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불쑥 묻는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도 한번 받은 질문이다. 그땐 글쎄, 뭐였을까 하고 되받아치며 웃으며 슬쩍 넘겼다. 그런데 이번엔 유난히 심장이 쿵! 내려앉다 못해 찌릿하게 무언가가 콕콕 가슴을 찌른다. 말로 풀어내지 못하는 감정이, 응어리진 무(無)의 언어가 응집되어 먹먹한 기분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 사이 아이의 꿈은 여러 번 바뀌었다. 일곱 살엔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고 그림을 그렸던 녀석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을 좋아하면서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글을 썼다. 바로 얼마 전만 하더라도 태권도 관장님을 꿈꾸다가, 며칠 뒤엔 ‘윤 TV' 채널을 진행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며 혼잣말로 멘트를 읊어댔다. 나의 꿈은 뭘까. 무엇이었나.
이력서, 신발 이(履), 다닐 력(歷), 기록 서(書).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한 장의 종이에다 기록하고 이것을 '이력서'라고 부른다. 신발을 끌고 다닌 역사의 기록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웅진닷컴(2000) p. 40중에서
이력을 적어 내려간 문서, 입사를 위해 나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쯤으로 단순하게 알고 있었는데 참 귀한 뜻이다. 한 때 회사에 소속되어 살았던 날에 혹은 새로운 회사 입사를 희망하며 고군분투했던 그때 얼마나 나를 증명하고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일까. 직장에서의 나, 사회에서의 내가 얼마나 무장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잠시, 아니 좀 오래도록 ‘무장해제’ 된 삶에 있는데 어떤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의 내 신발은 어느 곳을 향하게 될까. 막상 어딘가에 소속되고 나면, 일 속에 깊게 빠져들어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간간이 찾아오는 기쁨과 만족감도 언제 그랬는지 또 잊어버리고…… 지금 나의 이력서는 과연 안녕한 건지 자가 진단을 내려본다. 나와 남편이 꾸린 소우주 안에 들어와 잠. 시, 일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던 시간이 꽤 많이 흐른 지금. 집 밖이 아닌 집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조용히 해 내는 동안 점차 내 안에서 소멸해 가는, 존재감 제로의 ‘별’을 움켜쥐고 서럽게 울던 날들이 있었다. 타인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는 ‘경단녀’라는 단 세 마디의 줄임말. 타인들은 그 줄임말에 축약된, 많은 여성들의 삶을 알기나 알까. 그걸 알 리가 없는 타자와 세상에 대한 냉소 또한 내 안에서 점점 커져 갔다. 올해 초, 내게 일상의 단비가 되어준 드라마가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 이나영, 이종석 주연의 <로맨스는 별책부록>. 유학 간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11년 전업주부 꼬리표를 떼고 구직에 나선 돌싱녀 강단이. 고학력 고스펙의 잘 나가던 카피라이터였지만, 7년이라는 경력단절 기간은 재취업의 발목을 붙잡는다. 1년간 구직에 도전한 결과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이력서상에 최종학력과 경력을 지우고 지원한 출판사의 업무지원팀 계약직 사원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데. 최종 합격 소식을 듣기 직전, 구직에 도전했던 회사 면접관의 싸늘했던 시선과 냉정한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강단이에게 여성 면접관이 묻는다. 11년 살림 경험이 있는 강단이한테 회사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고. 과거의 경력이 아닌 현재의 강단이로써 말해보라고 그녀는 다. 시. 금. 강조해서 묻는다. 강단이가 호의로 건넨 티슈로 손의 물기를 닦던 그녀는, 젖은 티슈를 내던지며 불쾌감을 꼭꼭 씹어 내뱉는다.
이 바닥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감히 경력단절이니 재취업이니 하면서 뭣도 모르고 소풍 가는 기분으로 올 자리가 아니라고요. 회사란 곳은…… 기분 나쁘게, 내가 어떻게 지킨 직장인데. 이제 와서 기어 나와. 기어 나오길."
재취업에 나선 강단이에 대해 사회의 격렬한 환영을 바란 건 아니지만, 이런 냉랭한 반응을 기대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인데 마치 내가 그 면접관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던 찰나. 독기 품은 그녀의 말 한마디는 나의 뇌리와 가슴을 관통하며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물론 각자 처한 상황과 환경이 저마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버티고 지켜온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까지 강단이 마음에 비수를 꽂아야 했을까. 아니면 시원하게 속내를 내보인 그녀 덕에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을 엿본 것에 만족하는 편이 나을까.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는 주인공에게 현업에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도태된 잉여인간 취급도 모자라 그야말로 피 터지는 구직 현장에서 남의 밥그릇을 앗아가는 존재로 괄시하는 분위기가 내내 몹시 불편했다.
드라마에 너무 과 몰입한 탓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화’라는 감정으로 똘똘 뭉친 방어기제가 작동해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극 중 강단이는 어쩌면 상상 속의 내 모습이기도 해서. 꼭 재기해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기를 열렬히 지지했다. 끝내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은 내게 긴 여운과 큰 자극을 남겨 주었다. 타자의 눈으로 현재의 나를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도록 거울이 되어준 셈이다. 돌이켜보면 나를 아끼고 보듬어도 모자랄 시간에, 나를 비하하고 평가절하하며 어둠의 터널로 기어들어갔던 주체는 사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독기 품은 면접관이 나의 내면 안에도 존재했던 것이다. ‘엄마’라는 역할의 옷을 입는 동안 나의 어린 왕자 둘은 차츰 성장했지만 그 누구의 역할도 아닌 온전히 나로 돌아가 보면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무(無)의 공간에 선 자아를 바라볼 때마다 내세울 수 있는 게 없어서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그런 작은 목소리가 점점 내면에 차오르면 이름을 잃은 자아는 내가 선택한 길에 비난의 화살을 내리꽂았다. 일의 끈을 무작정 놓았던 게 잘못이라고, 그래서 남들보다 뒤처져 있는 거라고, 무색무취 존재감 제로, 그저 현실에 안주한 아줌마일 뿐이라고. 그렇게 거짓 소설을 써가며 학대한 건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늘 나에 대한 불만과 악감정 보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투명하지만 내 눈에는 시커먼 욕망 덩어리를, 그걸 깨달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루하게 물고 늘어지는 출구 없는 우울감은 내가 아니면 끊어낼 수 없다는 것. 결국 내가 출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새해에 떠오른 태양은 내게 묻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불평불만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 분명 작년과는 다른 새해의 시작이었다. 더는 흔들려서는 안 되었다. 아니, 더는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생각은 그만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조금씩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유를 대지 않고 ‘그냥’ 해 본다는 정신 무장이 내겐 큰 무기였다. 결과야 어차피 예측 불가인 걸.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계획대로 착착 굴러간 게 아니었기에 결과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기로 했다. 알 수 없는 미래, 불안한 감정을 쫓기보다는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책 읽는 엄마(리딩맘)’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띄엄띄엄 가던 화실에도 규칙적으로 나가 그리고 싶은 주제의 오브제를 정해 주어진 시간을 채색해 나갔다. 그리고 글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소하고 사사롭게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유일하게 ‘아무것도 아닌 나’로 돌아갈 수 있던 시간이기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을 읽고 리뷰를 쓰다가 사적인 나의 이야기와 감정, 생각들을 드러내게 되었다.
호퍼가 조세핀과 자신을 그린 몇 장의 캐리커처가 전시돼 있는 것을 보았다. 눌변의 호퍼는 달변의 조세핀과 다툴 때면 말없이 그림을 그려 식탁 위로 놓아두는 것으로 의견을 표했다고 했다. 그림 중 거미줄로 뒤덮인 이젤 앞에서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줍고 있는 조세핀을 그린 것이 있다. 그 그림 아래에 호퍼는 다음과 같이 썼다. She wants to paint but she HAS to pick.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주워야만 합니다) 가사와 육아에 치여 재능을 접어두고 있는 몇몇 친구들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졌다.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곽아람, 아트북스 (2018), p.65중에서
호퍼의 글과 저자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괜스레 코끝이 시렸다. 너무 다 내려놓고, 묻어놓고 온 지난날을 후회하진 않는다. 한 때는 워킹맘이 아니어서 불안하고 자책하던 날들이 있었다. 엄마라는 삶을 살다 늙겠구나 싶어 헛헛한 날이 이어졌다. 결국엔 나를 강하게 하기보다는 비교의 채찍을 휘둘러 나를 학대한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일기 같은 부끄러운 글로 하루를 기록하고, 아이들의 말을 담고, 책이든 영화든 그 누군가가 남긴 말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림을 배우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나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림책이 좋아 그림책 모임에 나가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원래 내가 하고팠던 일들에 점점 가까워지려 아주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
예열을 하는 중이랄까. 그래, 뭐든 워밍업이 필요하듯 잊고 있던 내 색깔의 온기를 차분히 모아보려 한다. 그렇게 리뷰 안에 나의 감정, 나의 사색을 꾹꾹 눌러 담았다. 진솔한 내 이야기가 들어간 리뷰 몇 편이 선정되어 웹상에 공개되었을 때 느낀 설렘과 기쁨을 기억한다. 특별한 공모전도, 거액의 상금이 걸린 일도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책을 읽는 재미와 끼적이는 즐거움을 알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엄마 꿈은 뭐야?
아이가 내게 다시 묻는다면, 이번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을까.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엄마 꿈은 뭐야? #2019 #아홉 살 #윤‘s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