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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Nov 13. 2019

걸어볼까? 따로, 또 같이

<곰씨의 의자>에 앉아보고 싶은 날에

*cover image _ 노인경 그림책 <곰씨의 의자> 면지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제 꽃을 살살 다뤄주세요.


「곰씨의 의자」
노인경, 문학동네 2016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조용조용 가만가만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길 줄 아는 곰. 그런 곰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갔다. 차를 끓이고 책을 준비하고 자신의 의자에 앉아서 누리는 면면의 모든 과정이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한 의식처럼 여겨진다.

‘이 시간만은 철저히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이야..'

그렇다고 처음부터 남에게 선을 긋는 차가운 인상은 아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와 어깨가 축 쳐진 토끼에게 휴식을 먼저 권하고 탐험 담을 늘어놓는 토끼 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곰씨다. 탐험가 토끼에게 여자 친구가 생겨 둘이 결혼할 때도 마음에서 우러나도록 축복을 다 해주는 곰씨.

그런 곰씨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토끼 부부의 아기 토끼들이 줄줄이 태어나 곰씨의 자유시간을 점점 빼앗기 때문. 이제 혼자 차를 즐길고 책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진 곰씨.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보고 여러 특단의 조치를 내려보지만 눈앞에 당도한 결과들은 참혹하기만 할 뿐이다. 큰 좌절에 빠진 곰씨는 시름시름 아파가고. 하고 싶었던 말이 분명 있는데 하지 못해서 결국 화병이 생기고 마는데...

그림책 모임에서 '친구'라는 주제를 놓고 이 책을 나누었다. 어느 한 분의 말씀이 기억난다. 아이를 낳고 나서 겪었던 시간이 스친다고. 인생이 계획대로, 아니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라며. 힘들어하는 곰씨를 보니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지 못하는 말들로 인해 결국 마음을 다치고 몸마저 상한 곰씨를 보면 어쩐지 우리 엄마도 생각나고, 엄마가 된 이후의 내 모습도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그동안 내가 좀 힘들었다고, 말로 표현하지 않고 주위 상황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못난 감정을 분풀이하듯 쏟아냈던 시간도. 좀 더 지혜롭게 표현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짠한 나 자신은 물론 안타까운 주변인들도.

쓰러진 곰씨를 보살피며 곰씨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린 토끼 가족들 앞에서 몸을 추스르고 마음도 진정된 곰씨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나직하게 울리는 속마음의 말들에 귀 기울여주는 토끼 가족들...

'따로, 또 같이'의 황금비율을 찾는 건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지. 사람과 사람, 혹은 삶과 일이라는 관계에서도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을 테니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나 희생이 따르는 삶이 아니라 따로, 또 함께 걸어가는 삶이 자연스레 어우러지기를. 곰씨의 의자는 그렇게 비워지고 또 채워질 것이라 믿는다.

곰씨, 오늘 하루는 어떤가요?
문득 곰씨의 의자에 앉아보고 싶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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