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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Nov 11. 2019

세상 모든 노동에 바치는 그림시

꽃보다 아름다운 <밥. 춤> 추는 사람들, 그대에게

사라락 사라락
사라락 사라락
춤을 춰요
휘리릭 휙 휙
차라락 착 착
두 발을 폴짝
그리고 살짝
리듬에 맞춰...
「밥. 춤」
정인하 글 그림, 고래뱃속(2017)




먼데이 모닝 현실 인트로

Real Intro on Monday Morning


폰 알람 소리, 월요일 아침의 창을 두드린다.

- 액정화면에 뜨는 ‘다시 알림’을 터치한다.

5분 뒤, 다시 알람이 울린다.

- 또 한 번 ‘다시 알림’ 터치.

“이제 일어나... 알람 두 번 울렸어... 늦겠어...”

(남편을 깨운다)

- 끄응.... 극세사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꼬물거린다. 최후를 잘 아는 어른이 애벌레의 마지막 격렬한 무언의 항변 끝에 이불 킥 차는 소리에 이어

“쏴........”

- 샤워기 물줄기 터지는 소리.

드디어 힘겹게 월요일이 열렸다.


남편 출근 후 30분 뒤,


“아가들,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 새우처럼 온몸을 구부리고 이불을 칭칭 감아 남아있는 온기 깊숙이 파고드는 아홉 살, 다섯 살 꼬마 애벌레 두 마리와의 아침 전쟁이 시작된다.

달콤한 주말은 끝났단다!! 두둥!!!





그림책 Intro


표지를 장식한 두 사람이 춤을 춘다. 한 사람은 빵모자와 앞치마를 두르고, 다른 한 사람은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서 두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채 높이 도약!
 
면지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옷걸이, 신발, 빗자루, 다리미, 손장갑, 무, 수저, 고봉밥 한 그릇...
 
새 하얀색 종이 바탕에 무채색과 살구색 빛이 어우러진 그림과 흑백의 두 글자 ‘밥. 춤’이 선명히 새겨지니 마치 무대 위 조명이 켜지고 시작되는 모노드라마처럼 인트로가 주는 임팩트가 꽤나 강렬하다.





' 밥. 춤'

제목이 참 재미지다. 두 단어의 합이 생경하면서도, 단순하다. 흑색의 묵직함에서 단단하고 강함도 느껴진다. 너무 지나친 감상이었을까.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지 궁금하기만 한데, 첫 장을 열고 마지막 장까지 이르면 작가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헤아려진다. 책장을 덮고도 제목에서 느낀 묵직함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예술, 춤곡이 된 그림책

두 면을 가득 담아 펼쳐지는 그림은 각자의 생계가 걸린 일터에서 몰입해서 일을 춤추듯 해 내고 있는 사람들의 한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야채장수, 택배 배달원, 호떡 장수, 세신사, 고층빌딩 청소원, 건설 노동자 한 명 한 명 따로 인터뷰를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관찰하고 바라보면서 그림책 속의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한다. 한 장면이지만 저마다의 일, 일의 특징, 일에 집중하는 자세와 태도가 경건하게 느껴진달까. 짤막한 글도 효과음처럼 생생하게 들리는데 인물들의 움직임과 생각이, 수고로움이 묻어나고 글의 생김새 또한 너무 잘 어우러진다. 그림과 원래 짝꿍인 것처럼 소울 풀한 글꼴이다. (타이포는 아니고 작가가 나무로 직접 썼다고 한다)


노동하는 사람들 모습을 그렸으면 했고,
그걸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발레리나는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발레 동작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랄까. 여성노동자로만 한정하게 된 건 그림책을 만들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남자를 배제했다기보다는 여성을 그리고 싶었어요. ‘구두 수선하는 노동자'를 그릴 때도 아저씨로 해야지 했는데, 생각해 보니 '왜 굳이 남자여야 하지?'라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 정인하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사람도 춤을 추고, 글도 춤을 춘다. 글꼴이 아주 여리게 시작해 점점 크게 표현되기도 하고, 밀가루 반죽과 함께 팡! 하고 아래로 내리치는 글도 보이니 그림과 글이 참 세심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림책에서 춤과 예술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과장일지... 아니, 오히려 과장이 아니라 그러한 생생함이 그림책에 구현되어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장면 장면에 인물의 움직임의 리듬과 움직임, 박자까지 전해질 정도이다 보니 그림책을 보면서 발레와 난타, 마임 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밥벌이를 위한 노동에 대한 헌사


일상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고된 노동을 하는 중간에 밥 먹을 때가 오면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밥 먹고 합시다!'라고도 하고, '밥심으로 산다'라고 하고. 노동을 하지 않고 축적된 부를 통해 더 큰 부를 이루는 상위 계층을 제외한 일반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매일 일터에서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 위해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해 내기 위해 또 밥을 먹는다.

삶이 있는 한 반복되는 이 과정에 즐거움도 흥도 없다면 얼마나 처연하고 재미없을까. 옛날에도 땡볕 아래 농사일을 할 때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노동요를 불러가며 흥을 돋우고 즐거움을 찾지 않았던가. 그런데 힘이 드는 일이지만, 이왕 하는 일 조금 더 힘을 내어 신나게, 즐겁게 춤을 추면서 해내는 사람들을 그림책에서 만나서일까. 어쩌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은, 이상적이고 그림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더 뭉클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림책에 등장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같이 모여 함께 "춤추고 있어요" 할 때, 군무의 에너지가 응집되는 그 현장에서 응원과 위로의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것 같다.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감내하고
일하는 당신은 이미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자신이 살고, 또 가족과 누군가가 살아가기 위해서. 그게 밥. 춤 아닐까요, 라고...





달고 쓰고, 아리고, 애증의 관계로 삶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밥벌이와 노동. 그 가치를 그저 그런 반복된 흔한 일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이어주는 의미로 확장시켜 준 책인 것 같아서 감사하다.

다시금 들여다봐도, 소장가치 있는 명작이다. 혼자 책을 보았을 땐, 어릴 적 목욕탕의 세신사 아주머니를 떡하니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었던 그림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쿡 새어 나왔다. (입고 있는 레이스 속옷 묘사가 꽤나 디테일하고 실제처럼 여겨져서)

그다음 아이들과 같이 읽었을 땐, 반죽을 내리쳐 수타면을 만드는 아저씨를 보던 네 살 아이가 "줄넘기를 하나 봐"라고 해서 웃음이 빵 터졌고. "경찰 아저씨다! 아니 경찰 아줌마...?!" 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덟 살 큰 아이 반응도 재미있었다.

춤이라곤 1도 모르고 몸치인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 - 초긍정 에너지는 기본이요, 춤 잘 추고, 건강하고 탄력 넘치는 '딴딴한' 몸을 가진 - 을 만나 건강미와 강인한 마음을 전수받아 나도 그러한 몸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폭풍처럼 일어난다. 건강하게 '밥. 춤'을 추기 위해 신남도 멋짐도 스웩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일!! 마녀 체력부터 기르자고 다짐 또 다짐을 해 본다.



p.s

월요병을 훌훌 털고,

아니 온몸에 덕지덕지 월요병 흔적을 붙이고

현관문을 나선 모든 그대들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따로 또 같이, 우리 밥. 춤을 춥시다.




(위 글은 제 개인 블로그,

Like A Fermata 일상의 늘임표

hj-logue.tistory.com

(2018. 10. 5) 작성글을 다듬고

그림책 스케치를 덧붙여 재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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