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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Nov 18. 2019

겨울이 오는 소리

마음씨 따뜻하고 고운 아이  <애너벨의 신기한 털실>


 On a cold afternoon, in a cold little town
where everywhere you looked was either  the white of snow or the black of soot from chimneys, Annabelle found a box filled with yarn of every colour.
 
어느 추운 오후였어요.
어디를 보아도 새하얀 눈과 굴뚝에서 나온 까만 검댕밖에 보이지 않는 작고 추운 마을에서, 애너벨은 조그만 상자를 발견했어요. 상자에는 갖가지 색깔의 털실이 들어 있었어요.
「EXTRA YARN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
맥 바넷 글, 존 클라센 그림, 홍연미 옮김,
길벗어린이(2013)





가을 빛깔이 가장 무르익은 날의 연속인데 공기부터가 사뭇 다르다. 요 며칠 전부터 불어대는 찬바람이 이제 슬슬 ‘월동 준비하세요’ 메시지를 담아 겨울 예습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중.


상점 곳곳엔 크리스마스 장식이 불빛을 밝히고, 쇼핑몰 안에는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패딩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뽀글이 양털 후리스 차림의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거리에 보송보송한 털을 자랑하는 귀여운 곰들이 활보하는 것만 같다. 패딩과 패딩이 스칠 때 들리는 사각거리는 소리의 틈을 뽀글이가 방울방울 따스한 기운으로 채워주는 느낌이랄까. 트렌드의 기운을 타고 뽀글이 아이템 하나 장만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공상을 떠는 와중에 시골에 다녀오신 친정엄마는 1차로 김장김치를 벌써 끝내셨다고 전화가 왔다. 지인을 통해 주문한 절임김치가 도착해 잉여일꾼인 나를 부르지도 않고 아빠랑 둘이서 일을 뚝딱 해치운 것이다. 정작 김치 도둑은 겨울 낭만이나 떨고 있느라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엄마 손, 엄마 생각을 따라가려면 난 한참이나 멀었다.
 





겨울이라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저만치 앞서가는 자연의 기운에 이끌려 이 그림책이 생각났다.


국내에선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그림책의 한 장면. 영문 원서와 번역본의 표지 그림이 살짝 다르다. (물론 제목도) 가끔은 원서와 번역본을 함께 놓고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먼저 생각해 보기도 하고, 거꾸로 원래의 영문이 어떤지 짐작해 보기도 한다.
 
겨울이면 꼭 한 번은 들여다보게 되는 작품. 원 제목에는 없는 ‘신기한’이라는 단어와 털실의 주인 ‘애너벨’을 넣어 내용이 더 궁금한 이야기로 와 닿는다. 내용에서도 따뜻한 감성을 한층 더 깊이 아우르는데, 아무래도 우리말의 다양한 표현력과 한 단어에서도 느껴지는 온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새하얀 눈과 굴뚝에서 나온 그을음 탓에 온통 무채색인 마을 풍경이 작은 털실 상자 하나로 뒤바뀌는데...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지난해 1학년 친구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는데, 남자 친구 여자 친구 모두 다 골똘히 집중하며 애너벨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림작가 존 클라센의 신간 「네모」를 함께 본 기억을 떠올리자 누구 할 것 없이 책이 학교 도서실에 있냐며 폭풍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리딩맘 하면서 제일 뿌듯한 시간! 그림 속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친구들 찾아보는 재미도 있는 사랑스러운 그림책.
 




글: 맥 바넷 Mac Barnett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한 농업 공동체에서 태어나, 퍼모나 대학교를 졸업했다. 존 클라센과 함께 만든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과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로 칼데콧 아너 상과 E. B. 화이트 상을 수상했다. 잡화점 ‘에코 파크 타임 트래블 마트’를 열고, 글쓰기와 학습을 도와주는 비영리 단체 826LA의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림: 존 클라쎈 John Klassen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나 셰리든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그림을 그리고 아트 디렉팅을 하다가 2010년부터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다. 첫 그림책 『내 모자 어디 갔을까?』는 2011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 TOP  10'에 선정되었고,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는 2013년 칼데콧 상, 2014년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모자 이야기인 『모자를 보았어』는 2016년 10월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에 그림을 그렸다.


모양시리즈 - 『세모』, 『네모』, 『동그라미』 또한 맥 바넷과 존 클라쎈의 합작품으로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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