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는 외계인 Aug 04. 2024

NDIS, 장애는 내가 책임질게!


내 고객의 반은 에이지드 케어 고객이고, 반은 NDIS(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장애인 고객이다. NDIS 는 호주에서 실행되고 있는 국가 차원의 장애 보험제도이다. 호주에서는 전체 인구의 5명당 한 명 꼴로 장애인이라고 보고된다. 호주란 국가에 유독 장애인이 많은 게 아니라,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의 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장애 인식이 상대적으로 높고, 서비스와 지원이 풍부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 유무에 무관하게 통합이 강한 나라일 수록 장애인의 수가 상대적으로 높다.  


“처음에 호주로 이민 오고 깜짝 놀랐잖아. 한국에 비해 장애인이 너무 많은 거야. 어디를 가든 장애인들이 있는 거야. 그 시대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지.”  


30 여년 전에 이민 오셨다는 이민 선배의 증언이다. 그 분의 말씀처럼 호주의 장애인들은 오래전부터 지역 커뮤니티에서 생활한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장애인들도 당연히 참여할 수 있는 나라다. 문밖에 나가면 전 세계의 모든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를 접하는 일상이 디폴트인 사회여서 그런지 다양한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섞여 생활하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은 국가다. 모든 인종이 잡탕처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나라에 좀 살다 보니 나 답지 않은 일도 생긴다. 한국에서 징글징글했던 동질성이 그리워질 때가 있을 정도다. 장애를 다수에서 벗어난 소수란 다양성으로 본다면, 다양성이 근간이 나라에서 장애가 뭔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탈시설화 논의가 현재 진행형이라면, 호주의 탈시설 논의는 과거형이다. 한국의 장애계, 특히 발달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거리에서 삭발을 하고 오체투지를 하며 “발달 장애인 국가 책임제”를 외친다면, 호주는 이미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시행국이다. 아니, 발달장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애를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다. 그래서 어쩌면 호주는 한국의 미래다.  


                                                                NDIS 홈페이지 스크린샷



그 중심에는 NDIS 가 있다.  

NDIS는 2013년 시행되어서 10 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제도이니 이해를 돕자면, 한국의 의료 보험제도를 떠올리면 된다. 한국 사람들이 K- 의료로 자부심이 대단한 배경에는 한국의 의료 보험제도가 있다. 한국에서 의료보험 가입자라면 각종 질병에 걸려도 국가가 방치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고, 국가차원에서 이와 관련한 예산, 관련된 의료계 인력 및 행정, 그리고 질적 관리를 책임지고 관리하고 감독할 것이란 신뢰가 깔린다.  


호주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를 장애계에 도입한 제도가 NDIS다. 각 주(State, 호주는 연방국가다) 마다 각양각색으로 난립하던 장애 제도를 국가 차원으로 일원화하여 각 주에 따른 격차를 해소하고, 장애 당사자들에게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한마디로 장애에 관한 장애를 위한 장애인에 의한 제도다. 이 제도의 중심 철학은 만국 장애인들의 숙원을 관통한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선택권(choice)과 통제권(control)을 극대화 한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과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알맞은 방식의 서비스와 지원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고, 본인들이 배당 받은 연간 예산 안에서 예산의 사용과 관리, 그리고 어떤 서비스와 지원을 누구에게서 언제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대한 일련의 통제권을 당사자에게 보장한다. 권력의 주축이 서비스 제공자에서 서비스를 사용하는 당사자들에게 이동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장애인들을 수동적이고 시혜나 연민의 대상으로 보던 사회적 시선을 장애 제도와 서비스의 주체로 격상 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이끈 제도다. 잘난 제도 하나가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을 견인한다. 말 그대로 장애 분야의 바이블이 현실이 된 제도라 하겠다.

   

“NDIS 는 사랑이죠.”  


NDIS 를 경험한 한국 지인들의 증언인데 좀 서글프다. NDIS의 혜택을 경험 하면서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이민 생활을 해 보니 상상력도 국경을 넘기 힘들 때가 있는데, 한국에서 박한 장애 관련 복지만을 보고 듣고 경험했기 때문일 게다. 내가 종종 하는 말, 장애는 국가를 차별하지 않지만, 장애복지는 국가마다 차이를 동반한다.  


NDIS는 사회적 약자만을 위한 비용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공격적인 투자다. 각종 치료사, 각종 장애 관련 보조 기구 및 의료적 의류, 서포트 코디네이터, 장애 전문 회계사, 장애 전문 클리너(Cleaner), 장애 전문 가드너(Gardner), 장애 전문 숙박기관, 장애관련 에이전시, 장애인들을 위한 지원 그룹 홈,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한 전문화된 택시, 장애 전문 각종 캠핑 시설, 활동지원사… NDIS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업을 양산한다. 이들이 서비스와 노동과 지원을 제공하고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이 세금은 다시  NDIS의 예산으로 간다. 가히 선순환의 최고봉이라 칭하지 않을 수가 없다.  


NDIS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 내 수입의 반은 NDIS에서 오니 내 밥줄이다. 장애 고객들이 개인별 연간 예산으로 나를 고용하고 내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으니 나 또한 NDIS의 수혜자고, 장애인들이 내 고용을 책임지는 소중한 고객이다. 어쩜 이렇게 모두가 윈윈하는 신통 방통한 제도를 만들었을까? 누군가 내게 호주에서 가장 수출하고 싶은 제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손을 번쩍 들고 외칠 게다.  


“NDIS요!”     

이전 04화 아들, 엄마 돈에선 똥 냄새가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