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동사다. 신체 장애, 정신 장애, 발달 장애처럼 의료적 관점에서 장애라 명명 받을 때는 당사자 개인의 영구적인 손상을 의미하는 명사로 인식되지만, 막상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장애는 명사보다는 동사다. 장애는 한 개인이 장애와 비장애의순간을 끊임없이 경험하는 “동사”의 모습에 가깝다.
이민생활은 협소했던 나의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시각을 갖게 했다. 국경을 넘어 사는 일은 경계를 넘어 사는 일이기도 하고, 새로운 국가에서의 경계들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민생활은 참을 수 없이 얄팍하고 가볍던 나의 장애 이해와 인식을 타파하는 일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가끔 극한 경험은 인간을 극적으로 변하게 하는 강력한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자주 만나면 알게 되고 앎은 이해의 필수 조건이고 이해는 사랑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가령, 내가 한국에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던 다운 증후군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애초에 불을 붙이기 어려웠고, 무관심은 몰이해를 동반했고, 자연스럽게 이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란 사실을 인식하는 기회를 박탈 당했다. 반면에 현재는 다운 증후군을 지닌 고객이 여러 명이고 같이 시간을 정기적으로 보내다 보니 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우선 심리적 거리감이 제거되었다.
장애를 사회적 관점에서 명명하자면, 비장애인라면 겪지 않을 “도전(challenging), 장벽(barriers), 그리고 장애물(obstacles)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비휠체어 사용자처럼 계단을 걸어 갈 수 없다. 시각 장애인은 특별한 보조 기구 없이는 비시각 장애인처럼 일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청각 장애 학생은 보조 기구없이 교사의 수업을 듣기 어렵다. 해당 직업에 아주 고도화된 기능(skills)과 지능(intelligence), 재능(talent)을 겸비한 자폐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비자폐인과 동일한 조건과 환경에서 면접을 통과하기 어렵고, 가령 취직이 된다 해도 자폐인의 요구(needs)에 맞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민 생활은 장애다. 의료적 관점에서 나는 비장애인이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나의 이민 생활은 장애다. 끊임없이 장애를 경험한다. 한국 지인들의 책모임에 가면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장애를 당하지 않는데, 오지 로컬들만 모인 모임에 가면 내내 장애를 당한다.
8년이 다 되어 가는 이민 생활 중 하루에도 수 없이 도전을 받고, 일상적으로 장벽과 장애물을 경험한다. 호주에서 태어난 오지(호주인을 일컫는 말)들이라면 경험하지 않을 어려움들을 이민자인 나는 매일 밥 먹듯이 경험한다.
가령, 운전 중에 타인의 실수로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면 영어로 처리하기가 골치 아파서 너그러운 척 가장하며 보내기도 하고, 로컬들보다 탁월한 경력과 학력, 기술과 재능이 있음을 알면서도 똑같은 조건의 일에서 열세에 몰린다. 영어로 상대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백퍼센트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기점검을 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고, 영어로 이어지는 상대의 농담이나 은유와 비유를 이해할 수 없어서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뻘쭘하다. 가령 자폐 당사자들이 비자폐인들의 비언어적 표현들이나 농담, 은유나 비유 등을 이해할 수 없어서 대화 중에 길을 잃는 것처럼 이민자인 나도 영어의 대화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자폐인들이 사회적 번아웃을 자주 겪듯이 나도 영어 홍수 대란 속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집에 오면 두통이 동반되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 번아웃이다.
“회사 동료들은 내가 내성적이고 말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해.”
호주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오지들 틈에서 씩씩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지인은 책 모임에만 오면 봇물 터지듯 말이 터졌다. 호탕하고 유머가 넘치고 막걸리를 즐기며 스몰 토크를 사랑하던 그녀는 회사에서는 잔뜩 긴장하고 본인의 정체성을 맘껏 드러내지 못하고 산다. 오지들끼리의 빠른 대화와 농담에 끼지 못해서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일만 하다 집에 오면 미친 듯이 한국 드라마에 집착하곤 한다는 그녀는 수시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본인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목격한다고 했다. 심지어 캐주얼로 일하던 그녀에게 사장이 정규직 자리를 제안 했지만 그 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을 더 많이 하다가는 더 우울해질듯해서 일주일에 3-4일이 적당하다고 했다. 재밌게 말하고 성격 좋아 인기 많은 그녀는 오지들 속에서는 “바보”가 되는 느낌이라고, 씁쓸하게 말하곤 하던 그녀는 더 이상 “장애”를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 역이민을 택했다. 부디 똑똑한 그녀가 한국에서는 더 이상 “바보” 된 느낌으로 살지 않기를!
이민 생활 덕분에 장애와 장애인의 처지를 이해하기 수월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나 우영우처럼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고 기능이 좋아 자폐 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몸과 마음 근육이 빵빵하게 자랐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애인들이라 여긴다. 개인적인 조건에서는 지능은 높고 기능도 좋은데 사회적 관계에 놓이면 끊임없이 장애를 당하며 위축되고 불편을 겪는다는 점에서. 그래서 멜번의 책모임에 한 멤버의 말은 나같이 성인이 되어서 이민 온 사람들에겐 진리다.
“이민 생활이란, 언제나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는 소통의 모호함을 안고 사는 거죠.”
세상에 자폐인들이 모인 곳에 갔더니 내가 장애인지 그들이 장애인지 모르겠는 거야, 라고 말하는 지인. 한날 우연히 자폐인들이 독보적으로 많은 모임에 참석을 하고 왔다는 그녀는 충격에 휩싸인 듯하다. 자폐인들끼리는 아무 문제가 없이 평온한데 비자폐인 본인만 당황하고 생소하고 놀랐다는 증언. 혁명적인 경험이었나 보다. 그랬겠지, 저런 혁명적인 경험을 나도 여러 번 해봤다. 가령 내 장애 고객 중에 신체 장애만 있는 오지 성인들은 나에게 좋은 영어 교사다. 신체적으론 고객이 장애를 경험하지만, 언어적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내가 장애를 경험하기에 고객이 내 영어를 교정해 주기도 하고 사회적 정보들도 준다. 그래서 장애는 상대적이고 교차적이며 상황과 주변인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동사다.
“난 자폐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게 아니라, 날 둘러싼 주변의 환경들 때문에 장애인(Being dis-abled)이 된다.”
25살이 되어 자폐 진단을 받고 자폐학 박사를 공부한 Jac Den Houting 박사가 Ted 강연에서 한 말을 사랑한다. 그의 말은 이민도 또 하나의 장애라 여기는 내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끌어 올리며 살아갈수 있는 이민 생활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 난 이렇게 되 뇌이며 오늘도 호주 이민 생활을 즐긴다.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게 아니라, 호주란 국가가 한국인들의 정체성에 맞는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나는 장애를 경험한다.”
*Jac Den Houting 박사의 테드 강연 주소: https://youtu.be/A1AUdaH-E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