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나 공휴일에 쉬프트 나오면 무조건 잡아. 시급이 훨씬 높거든.”
요양원의 동료, 요양보호사 샘은 일주일에 4-5일 일을 한다고 한다. 물론 내가 건강하지 않은 몸, 오랜 동안 아픈 몸을 살아 온 사람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요양원에서 주 5일을 일하는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을 보면 마냥 부럽고 신기하다. 내가 평생 가져 보지 못한 건강과 체력,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죽을 때까지도 갖지 못할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요양원의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요양보호사는 호주에서 “3D” 직종이란 사실을 내 몸이 여지없이 투명하게 드러냈다.이틀 연속으로 일하고 반 실신 상태가 된 나의 몸을 애처롭게 여기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주 5-6 일을 하는 동료들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한국에서 교사일 때도 매일 겪던 상대적 박탈감이어서 그러려니 한다.
“난 일이 너무 고되고 피곤해서 일을 많이는 못할 거 같아. 온 몸이 몽둥이로 맞은 듯이 쑤셔.”
“나도 그랬어. 믿기지 않겠지만, 처음엔 4시간짜리 일하고도 나가 떨어졌었어. 지금도 피곤하긴 하지. 근데 Payslip 나오고, 통장에 수당이 입금되는 순간 피곤이 싹 가신다.”
버마 출신인 샘은 뿔테 안경을 쓰고 내 어깨까지 오는 작은 키에 곱슬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일을 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고 따뜻한 샘은 내가 첫 출근할 때부터 나를 가장 반겨주고 슬기로운 요양원 근무에 대해 수시로 설명을 해줬다. 다들 자기 일로 지치고 수시로 요양보호사가 바뀌는 요양원에서 샘은 마음 한 켠을 나에게 내어주고 바쁜 와중에도 수시로 나에게 눈길을 돌려 초보자인 내가 불편함이 없는지 살핀다. 샘의 다정함이 정신없고 혹독한 육체 노동의 현장인 요양원에 마음을 머물게 했다.
샘은 본인의 이메일을 열어 Payslip을 보여준다. 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도대체 일을 얼마나 뛴 건지, 그녀가 보여주는 숫자는 화려하다. 대신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이 만큼의 숫자를 모으려면 이 작은 체구의 샘은 얼마나 엎드려 똥을 닦고 기저귀를 갈고기계를 밀고 당기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어르신들로부터 감정적 노동을 견뎌왔을까?
오해 없길 바라는데, 의사가 벌어들이는 정도의 수입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요양 보호사란 직업이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한 예측보다 훨씬 높다는 뜻이다. 놀란 내 얼굴을 보며 샘이 웃으며 말한다.
“대신 입금이 쌓이는 대신 네 몸이 상한다는 점도 명심하고.”
일을 많이 하라는 말인지 말라는 뜻인지 아리송한 대화였지만, 분명한 건 일하는 만큼 보수도 쌓인다는 뜻이리라. 주변에 한국인 부부가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면서 집을 몇 채 샀다는 말을 반신반의했는데 샘의 페이슬립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나에게 이렇게 친절하냐고, 샘에게 슬쩍 묻자 친절한 샘은 이렇게 답했다.
“넌 따듯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돌봄 일은 따뜻한 사람이 필요하고.”
도대체 주말과 공휴일 시급이 얼마나 나올까 궁금이 극에 달해 샘이 조언한 대로 주말과 공휴일은 물론이고 오후 근무까지 잡았다. 주말과 공휴일 쉬프트 잡기는 심장이 쫄깃쫄깃해져서 긴장이 탄다. 앱에 쉬프트 공지가 뜨자마자 번개같은 속도로 낚아채서 잡아야 한다. 운마저 따라주어야 하는 캐주얼의 운명이다. 물론 나는 샘처럼 많은 일을 할 수 없는 몸이니 잘 분산시켜서 일했다. 짜짠~~ 마침내 나에게도 이주 만에 페이슬립이 날아왔다.
페이슬립을 확인하는 순간, 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실감을 할 수 있었다. 왜 요양원의 파트타임 정규직으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이 허리와 어깨가 아파서 일이 없는 날에는 마사지를 받고 피지오 테라피를 받으면서도 일주일에 5-6일씩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됐다. 쉬프트의 노동 시간이 긴 대신 목돈이 들어왔다. 장애나 에이지드 케어의 가정 지원쪽은 쉬프트의 시간이 보통 2-3시간 짜리가 많고, 주말 쉬프트는 흔하지 않은데 반해 요양원은 24/7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말 근무를 하면 수당이 훌쩍훌쩍 커져 있었다.
캐주얼로 일하는 나는 내 기본 시급의 1.25% 를 올려 받는다. 평일 오후에는 오후 근무 수당으로 하루 당 $30이 가산된다. 토요일은 1.75%, 일요일은 2.5%, 공휴일은 2.75%를 기본 시급에서 올려 받는다.
그러니 일요일에 7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한화로 오십만원이 넘는다. 캐주얼로 일하는 학생 비자나 젊은이들은 더블 쉬프트(오전과 오후)를 뛰는 경우도 있는데(젊음과 건강이 부러울 뿐이다) 기본 시급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하루 수당이 한화로 백만원을 훌쩍 넘는다. 주말에 몰아서 일을 하면 주중에 일하는 시간의 반만 일해도 수입이 같다. 주말과 공휴일 근무에 요양보호사들이 벌떼처럼 모여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리다. 수당을 높이면 힘든 일이라도 노동자가 몰린다. 특히 멜번의 요양보호사들은 젊은 연령층의 유입이 높은데, 이유는 학생비자 소지자나 경제적으로 기반을 마련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꿈꾸는 젊은 이민자들이 대거 몰린다는 뜻이다.
“호주는 육체 노동자들에게 입금으로 보상을 해주네요. 땀 흘린 대가를 수당으로 확실하게 보상해 주는 거 같아서 일은 힘들어도 좋아요.”
병원에서 간호사의 일을 보조하는, 나와 비슷한 육체 노동을 하는 지인이 돈 버는 재미에 폭 빠져서 말했다. 그녀의 시급도 나의 시급과 대동소이 하다.
샘의 말대로 페이슬립을 받고 입금이 통장에 꽂히니 은근슬쩍 일에 대한 욕심이 앞선다. 워낙 건강약자여서 그런지 샘처럼 입금을 보고 피로가 싹 사라지지는 않으나, 또 일터로 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계속해서 앱을 확인하며 가능한 쉬프트가 있는지 확인하고 전투적으로 달려드는 나를 발견한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인간을 길들인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이 이런 식으로 일에 중독이 되는가 보다.
많은 요양보호사들에게 페이슬립은 자양강장제다. 마사지와 피지오 테라피로도 풀리지 않은 어깨와 허리, 다리를 이끌고 오전 근무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고, 오후 근무를 마치고 밤에 지친 몸으로 귀가를 하고, 밤을 새며 야간 근무로 발걸음을 옮기는 원동력은 뭐니뭐니 해도 입금의 힘이다. 사명감과 열정은 정신적 만족을 채우지만, 입금은 굶주린 배를 채우고 편히 쉴 안식처를 제공하며 통증을 잊게 한다.
부지불식간에 노동이 아닌 입금에 중독이 되어 무리를 했는지, 어깨가 아프기 시작한다. 샘의 말은 진리였다. 입금이 쌓일수록 나의 몸이 축나고 있다. 요양원의 돌봄 일은 거의 모두가 매뉴얼 핸들링이다. 양말을 신는 일은 고사하고 기저귀나 바지도 못 올리는 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본인의 신변처리를 전혀 할 수 없는 입주자도 수두룩하고(그런 상태이니 결국 요양원에 오셨을 게고), 한 발짝 움직이기도 어려운 분도 많고, 각종 기계들을 많이 쓰니 하루 종일 엎드리고 굽히고 밀고 당기니 몸이 축나지 않을 수가 없다. 체력이 국력이라면 돌봄에선 체력이 수당이다.
“이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지 않기!”
누가 시키지 않는 대도 알아서 내 노동의 적정 시간을 책정했다. 노동과 입금에 중독이 되지 않으려면 나만의 방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시일에 내가 요양원에서 후배 요양 보호사들에게 내 몸을 맡기고 돌봄을 받고 있을 게다. 그 곳에서 일을 해보니 크리스탈처럼 확실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건강 관리 잘해서 요양원 입주는 최대한 늦추는 것이 최선이란 것. 그러려면 일과 건강의 균형을 잘 조절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일관성 없는 나를 발견한다.
“언제 다음 페이슬립 나오지?”
*Payslip: 수당 명세서, 호주에서는 보통 이주마다 지급 됨.